최근 <검정고무신>의 저작권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나신 고 이우영 작가님 건으로 만화계가 시끌시끌합니다. 여전히 욕심을 놓지 못하고 대책위 바깥에서 본인들이 주도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곳도 보이는 등 난맥상은 여전하지만, 최소한 이 문제를 국회로까지 문제를 끌고 가는 성과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비단 이우영 작가님만의, 그리고 만화 쪽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저작물' '작품'을 창작하는 이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아니하거나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침해하는 일은 왕왕 있어 왔는데요.
어제, 3월 28일 채널A는 백승우 기자 명의로 <'재벌 3세' 갤러리 대표, 신진 작가 명예훼손·불공정 거래 혐의 조사>라는 뉴스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49/0000246484?sid=102
요약하자면, ① LS그룹 회장 장녀인 구 모 씨(갤러리 지오피 대표)가 지난해 한 작가의 미술 작품을 구입해 소장했는데 ② 작가가 개인 홍보용으로 작품 사진을 올리려 하자 막아섰고 ③ 부당하다 말하자 본인의 소셜 네트워크 계정에서 작가를 비방하고 원래 약속했던 전시까지 취소 통보했다는 겁니다. 혐의는 하나가 더 있는데, 전시 취소 통보를 받은 사람이 이외에도 더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와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가 조사에 나섰고 경찰에서도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로 수사 중입니다. 당사자인 구 모 대표는 '법적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는군요.
이 건을 놓고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관행'입니다. 관행적으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 관행적으로 양도 계약을 들이미는 것. 관행적으로 갑질을 하는 것. 이우영 작가가 당한 것도 '관행'이었습니다. 어떻게 원 저작자인 작가가 홍보용으로 이미지 하나 올리는 것도 막는단 말인지요? 그리고 역시, 구두 계약으로 연재를 시작했다가 체불을 당한 이들은 찾아보면 상당히 많습니다. 창작자만이 아니라 평론가, 칼럼니스트를 포함한 주변 직종들까지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글쟁이들은 연재 계약 없이 글을 쓰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또한 많은 글을 계약 없이 써 왔습니다. 하지만 계약서를 썼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엔 다 이렇게 했다, 잘 해 줄게 하는 말은 막상 맘에 안 드는 상황이 오면 다른 말로 바뀌죠.
기분이 태도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분이 나쁘면 뭔 말이든, 뭔 짓이든 합니다. 예전에 키위툰이란 곳에서 고소당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문제 제기로 사업 철수를 하는 와중에도 소셜 네트워크에 관련해 글 올린 사람만큼은 법적으로 엿을 먹이겠다는 심산으로 저를 포함한 몇 명에게 소장을 날렸습니다. 자기 딴엔 '반항'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상을 못 견디는 거죠. 만화 웹진 어느 곳은 맘에 안 든다는 이유로 딴 사람에게 심각한 뒷말을 하다가 저에게 걸렸더랬죠. 이 경우는 과연 어떨까요. 많은 이들은 3자 입장에서 피곤하고 싶지 않아 입을 닥치고 관망을 합니다. <더글로리>의 선생처럼, 그 정도면 너도 문제 있어~ 식으로 나오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당사자들이 심히 외로워지는 까닭입니다.
이우영 작가는 그 외로움 앞에서 죽음으로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통용되는 '관행'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셈입니다. 미술계 쪽은 만화계 이상으로 참 뭉치기 힘들겠지만, 개별 사례라도 좀 더 언론에 부각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죽어야 좀 보도되는 그런 상황은 이제 멈춰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못된 관행을 관짝에 처넣고 못질을 할 때가 왔습니다.
예술품은 소장의 대상이어도, 그 안에 담긴 창의력과 작가의 인격까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애초에 저작권에서도 넘길 수 있는 건 재산권뿐입니다.
이번에 보도된 화가님이 힘 내실 수 있길 바라며.
구 모 대표의 소장품인 고 모 작가의 작품.
구 모 대표는 작가 본인이 이 이미지 하나 소개했다고 그 사단을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