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초판 1쇄 2024년 6월 30일 | 판형 121*185mm | 가격 14,000원
분량 285쪽 | ISBN 9791198363831
작가 서찬휘 010-9422-7506 iam@seochanhwe.com
출판 출판사마저 대표 오현지 bookmz2021@gmail.com
“이 책은 오덕 서찬휘가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풀어낸 자기기술지이면서
오덕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본 지난 30여 년의 한국 문화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창남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
한국산 오덕, 생성에서 현재까지를 증거하다
오덕(또는 덕후)는 일본의 오타쿠에서 유래한 표현이지만 이제 한국에서의 맥락이 덧붙어 발전하며 우리만의 맥락을 갖추어가고 있다. 더 이상 별도의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널리 쓰이는 ‘덕질’이라는 표현을 보면, 이제 이것은 우리의 일상이자 우리의 문화 한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오덕이라니》는 저자 서찬휘가 한국 오덕 문화의 형성에서 현재에 이르는 30년 가량의 과정을 본인 삶의 궤적 속에서 보고 경험하고 또한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온 바를 통해 생생하게 드러내는 에세이다.
《오덕이라니》의 특징
한국의 오타쿠 이야기는 그간 《오타쿠학 개론》의 오카다 토시오, 또는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아즈마 히로키 등 일본의 오타쿠 문화 연구 또는 담론을 답습하는 데에서 머물러 왔다. 하지만 저자는 《키워드 오덕학》을 통해 일본의 영향권을 넘어 한국에서 자생한 오타쿠인 오덕들이 만들어낸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데 이어 《덕립선언서》를 통해 이제 2020년대에 접어든 시점에서 우리가 일본에서 덕질 면에서 독립, 즉 ‘덕립’했음을 선언한 바 있다. 《오덕이라니》는 이제 오타쿠와 오덕의 정의와 차이에 대해 반복해서 이야기하지 않고, 대신 우리의 오덕 문화의 형성과 진행 한가운데를 관통해 온 저자의 경험과 관점을 좀 더 내밀하고 농밀하게 풀어낸다.
이 책은 특정 키워드에 대한 해설이나 정보를 전달하기보다 실제 있었던 일들과 그에 관해 발언하거나 적극적으로 행동했던 저자의 행보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특정한 덕질 문화 깊숙한 곳으로 침잠해 들어간 이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고 즐길 법한 키워드들을 늘어놓거나 해설하지 않고, 저자 개인이 좋아했던 작품이 왜 재미있는지를 설파하지 않는다. 다만 그 문화의 흐름이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어떻게 흘러 왔는지, 또한 그것이 비단 우리나라라는 사회 환경 안에서 어떻게 조응하였기에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는지를 저자의 인생 속 풍경과 함께 지켜보게 한다.
언제부터 오덕이었는가, 오덕의 연애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에서부터 비수도권에서 덕질하기라는 정보 비대칭의 한계, 한국 오덕 문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블로그 서비스 이글루스의 종막에 대한 감회까지 다소 예민할 수 있는 이야기들, 네이버라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만들어내고 있는 웹툰이 덕질하기 어려운 까닭, 국내 만화 지원 기관에 얽힌 비사와 직접 만화를 만들어 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 결심하는 대목, '여는 노래' '마무리 노래'라는 표현을 만든 사람으로서의 소회, 지금까지도 멸시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한국어 더빙과 한국 성우 덕질에 대한 관점 등등! 이 책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오덕 문화의 피상적인 분석이 아니라 오덕으로서 덕업일치를 통해 ‘업계인’이 된 입장에서 겪는 충돌점과 우리 오덕 문화가 지향해야 할 지점에 이르는 깊고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
작가는 “제가 한국 오덕의 대표는 아니지만, 적어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내어놓고 있는 오덕으로서 '지금'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덕질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과 화두들을 이해하고 싶다면 서찬휘의 《오덕이라니》는 그 연원과 핵심을 알아보기에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오덕이라니》를 보아야 할 사람
첫째. 오덕인 사람, 또는 나는 오타쿠가 아니라 부인하는 오타쿠3원칙 해당자
둘째. 한국 오덕 문화의 근원과 미시사가 궁금한 사람
셋째. 덕질 최대의 적이 누구인지 궁금한 사람
넷째. 나무위키 따위로는 찾을 수 없는 덕질 정보가 알고 싶은 사람
다섯째. 오덕은 어떻게 연애를 할 수 있을까 궁금한 사람
여섯째. 이글루스 회원이었던 사람 (특히 김구 선생 사진 보면 흠칫하게 된 사람)
일곱째. 덕질하면서 흑역사 한둘쯤 쌓은 사람
여덟째. 노래방에서 애니메이션 주제가 좀 불러 본 사람
아홉째. 한국 성우 목소리에 끌려 본 사람
열째. 덕질하고픈 대상의 자료 구하기 어려워 봤던 사람
주요 내용 발췌
“언제부터 오덕(혹은 덕후)이었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이 궁하다. 아침밥을 몇 시 몇 분 몇 초에 먹었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비슷한 기분일까. 비슷한 질문을 곧잘 받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모범답안 같은 답변을 준비하게 됐다.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오덕이었습니다” (p12, <언제부터 오덕이셨어요?> 중)
“막상 덕질의 파트너이자 인생의 파트너가 된 아내가 BTS 덕질로 진입해 들어가는 모습, 그리고 BTS와 그 팬덤인 아미들의 활화산 같은 영향력을 보고 있노라면 만감이 교차한다. 내가 좋아한 우리의 만화와 애니메이션들이- 정확히는 내 어린 시절의 우리 만화와 애니메이션들이 저럴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 좋았을 텐데” (p20, <우리 안의 이율배반> 중)
“나의 성우 덕질은 이렇게 한국 성우 참여작 목록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공고해졌다. (중략) ‘시장’이 넓지 않은 상황에서 자리는 좁아져가고, 그렇다고 실력이 낮지 않음이 분명한 이들을 팬 입장에서 소개하고 조명하고 싶어하는 마음들이 알게 모르게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어떤 작품에 어떤 성우가 나왔는지조차 나를 비롯한 팬들이 각자 공간에서 자체 구축해 게시판에 쟁이는 게 고작이었던 상황이니 더 절실하고 절박한 느낌이었던 것이다.” (p39, <한국어 더빙과 성우 덕질> 중)
“고집의 결과물 가운데 성공한 사례가 하나 있다. ‘여는 노래’와 ‘마무리 노래’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내가 만들었던 말 가운데에서 이 두 표현만큼은 현재까지도 각종 애니메이션 채널 등에서 화면에 등장하고 있는데, 처음 표현을 쓴 입장에서는 너무나 즐겁고 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p55, <텔레비전에 내가 만든 말이 나오다> 중)
“한데 오덕질에서는 이러한 소멸의 위협보다도 더욱 무서운 장벽이 있다. 돈? 시간? 아니, 궁극적인 장벽은 다름아닌 부동산이다. 일단 자기 집이 없는 사람은 보통 2년, 길어도 4년에 한 번은 이사를 치러야 한다. 어째서 이사를 한 번 하고 나면 멀쩡히 있던 책이 몇 권쯤은 사라지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데, 이빨 빠진 책을 비롯해 분명 샀던 물건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일들을 왕왕 겪곤 한다” (p82, <덕질 최대의 적은 무엇인가?> 중)
“불법복제자들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만 돈을 써야 하는 우선순위에서 콘텐트 ‘소비’를 빼놓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오타쿠고 마니아고 팬이라 하기 이전에 그냥 범죄자일 뿐이지만 단죄받지 않은 채 시대를 고스란히 흘려 보냈다. 나 역시 그 시기를 지나 보내왔던 입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고작해야 애먼 소리들을 늘어놓는 자들과 충돌하고 매체 기고에 언급하는 것 말고 더 없긴 하였으되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더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는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다” (p96, <문화 소개자와 도둑놈 사이> 중)
“당시의 나는 국내에 나오는 만화 잡지 대부분을 실시간으로 읽었고, 국내 TV에 방영되는 한국 애니메이션과 일본 애니메이션의 한국어판, 극장 상영되는 국산 애니메이션 대부분을 봤다. 나름대로 많은 양이었지만, 그래도 한 사람이 애를 쓰고 돈과 시간을 쓰면 습득할 수 있는 수준의 양이었다. 그래서 집적도 가능했고, 그렇게 집적한 게 나의 재산이자 무기가 되었던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 이게 200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게 됐다.” (p122, <일찍 시작하길 잘했어> 중)
“그러니 ‘잘못된’ 행태를 지적할지언정 전체를 부정하려 들어봐야 어차피 꼰대 덕질(꼰덕질?) 소리 안 들을 도리가 있을까. (중략) 그래도 지금에 맞는 작품들을 읽고, 지금에 맞는 덕질의 형태를 좇아 보지 않는다면 나는 더 이상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더 쳐다보고 있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p149, <덕질세대론> 중)
“‘만화는 문학의 재미난 부업이다’ (중략) 우리는 문학 아래 취급을 당했고, 영상화의 소스일 뿐인 무언가 취급을 당한 것이다. 물론 영상화가 유일한 성공의 지표로 작가들 사이에서 인식되던 때도 있었고, ‘우리는 영상 아래지’란 말은 책으로 수익이 잘 나지 않던 시기에 작가들이 자조적으로 읊조리던 말이긴 하다. 하지만 대표 격인 업체가 그 말을 직접 이 시점에 했단 사실은 꽤 고약하다. 여전히 ‘너 그런 소리 하다가 네이버가 웹툰 접으면 어쩔 건데?’라는 관계자 사이의 불안 섞인 협박이 유효한 마당에, 그런 시장지배적 사업자에게서 나온 일종의 정의란 게 이렇다” (p165, <포털님, 만화 무시하지 마> 중)
“작가가 무너져도 다 작가 책임이고, 인셀들이 준동해도 어쩔 수 없는 걸 넘어, 이제는 인셀이 만화를 그리는데도 쳐내긴 커녕 오히려 스타 대접을 하는 마당이며, 언론에 나오는 뉴스는 작품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상장이니 인수니 하는 게 대부분이다. (중략) 규모를 유지하기 위한 규모 키우기가 어디까지 유효할까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업계가 이렇게 매력 없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만화라서’ 보는 사람들을 넘어섰기에 키울 수 있었대도, 이제는 ‘만화라서’ 선택할 사람들을 만들어야 할 때가 아닐까. 웹툰도 좀 덕질 좀 하게 해 달라. 제발” (p180, <웹툰, 덕질하기 참 어려운> 중)
“덕질을 위시한 감상 행위는 그 자체로 깊숙한 욕망의 결과일 수밖에 없고, 그 욕망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가 관건이다. 압도적인 분량을 짧은 시간 안에 맞춰내야 하는 창작자에게 인간으로서의 순수함(?)만을 요구하거나, 간편하게 인공지능 이미지로 채우고 싶은데 그림체는 선택하고 싶어 창작자에게 ‘제출’을 요구하거나 하는 건 생성형 인공지능 개발진들 상당수가 기술적 성취를 앞세워 저작권을 무시한 것과 거의 동등한 수준의 민폐다” (p196, <인공지능과 덕질의 상관관계> 중)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에게 매우 자주 듣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이거다. (부인을) '어떻게 만나셨어요?' 남의 연애담이 궁금하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오덕은 오덕끼리 만나야 한다’라는 사례 가운데 하나여서기도 할 터다. 아내는 만화가 지망생이었고, 만화가 어시스턴트를 했으며, 동인지를 내기도 했던 동인녀, 즉 여성 오덕이다. 나와 아내는 아마추어 만화인들이 모여 동인지를 삳고 파는 행사장에서 판매자와 구매자+취재자로 처음 조우했다” (p203, <오덕의 연애> 중)
“그런데 개중에 내 <동경 바빌론> 덕질의 극단을 달린 건 다름 아닌 이름이다. 주인공의 한국식 이름인 황찬규와 장준휘에서 한 글자씩 따서 필명을 지었다” (p213, <CLAMP, 이 죄 많은 사람들 같으니!> 중)
“이를 바꿔 이야기하면, 서울에서 ‘내려보내지 않으면’ 물품을 구하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도 된다. 대원씨아이에서 한국판 뉴타입이 발행되기 전에 많은 이들이 관련 정보를 입수하는 경로는 일본 수입잡지들이었고, 이렇게 접한 정보들이 PC통신 동호회 등지를 통해 전파되면서 복제에 복제를 거듭했다. (중략) 지금 같이 네트워크가 전방위로 발달한 상황도 아니었으니만큼 당연히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는 이들과 아닌 이들의 정보 격차가 컸다” (P221, <비수도권에서 덕질하기> 중)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포털도 아닌 블로그 전문 서비스가 버텨낼 수는 없었을지라도, 거들떠볼 가치도 없게 되어서는 재활용할 여지조차 없다. 2023년 6월 13일자로 이글루스는 끝났지만, 사람들이 이 비참한 끝에 서서 함께 기억하길 바란다. 온 힘을 다해 위선이라도 떨려 하지 않으면 사람은 얼마든지 개가 된다. 이 땅의 오덕문화를 이대로 나무위키의 사관 나으리들과 일베, 여성들 이야기만 나오면 악다구니를 무는 게임 커뮤니티에 두면 더 이상 이 땅의 만화와 애니메이션, 게임 문화에 미래는 없다” (p244, <디 엔드 오브 이글루스> 중)
“나의 경우 오래된 정보 집적형 오덕이긴 하지만, 이와는 다른 오덕질을 하는 사람들 또한 사실은 마찬가지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각자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해체와 재조립이라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에 자신의 잉여 시간과 노력(사실은 주/부가 바뀔 지경이거나, 아예 주가 될 만큼)을 들이길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덕은 사실상 세계관 내 최강이자 최악의 사랑꾼들이다. 일차원적으로는 그 모든 것이 자의적인 판단에서, 그리고 단지/오로지 내가 보고 싶어서라는 데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p250, <덕질은 결국 사랑이다> 중)
“드물게 좋아하는 작품을 그렸던 작가의 밑바닥을 확인하게 되는 경우에도 덕심은 식는다. 업계인으로서가 아니라 팬이라도 작가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닌데, 그렇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작가의 기저 의식들이 말 속에 튀어나오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를테면 특정 장르를 향한 몰이해나 LGBTQ에 대한 비하, 여성 혐오나 역사 의식 부재 등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고, 내가 직접 겪은 바로는 잘못된 노동관, 연하를 대상으로 대뜸 말부터 놓는 태도 같은 것이 드러나는 순간 아무리 좋아하는 작품을 만들었던/작품에 참여했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만화 창작자나 성우 같은 이들을 직접 만나는 건 정말 일이 아닌 이상 삼가게 된다. 일말의 팬심이 무너지는 경우가 생각보다 잦기 때문이다” (p262, <오덕의 흑역사> 중)
“그런데 문제는 그런 관념적인 부분보다 현실적인 부분이다. 책은 그나마 내보낼 걸 내보내고 나서 남은 수천권을 책장에 어떻게든 욱여넣고 있지만, 비디오테이프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사를 거듭하며 버렸음에도 남은 분량이 이불을 포장하는 데 쓰는 큼지막한 상자 하나를 가득 채운 채 광에 처박혀 있다. 사정상 인코딩을 따로 하고 있지도 못하지만, 더 큰 문제는 다시 재생하기도 두려운 상태라는 점이다. 보관을 잘 한다고 했는데도 출력해 붙여놓은 라벨에 검은 반점들이 쭉 번져 있는 걸 발견한지가 오래 전인데 차마 떼지도, 플레이어를 꺼내어 연결해 확인하지도 못하고 끙끙대며 닫아두고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보나마나 곰팡이인데, 어떻게든 꺼내어 백업을 하고 폐기하자고 마음 먹기가 쉽지 않다. 한 시기의 나를 만들어주었던 원천들이, 이렇게 어떻게 해 보기가 어려운 형태로 뭉개져 있다” (p269, <추억도 경험도 부식한다> 편)
작가 소개 : 서찬휘
본명 임채진. 만화 칼럼니스트, 만화 창작자 그리고 자생형 한국산 2세대 오덕. 1998년부터 만화와 그 주변 문화들의 흐름을 역사적 맥락에서 탐색하고 정리해 왔다. 다양한 저술 활동과 더불어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상지대학교, 중앙대학교, 백석문화대학교 등에 출강하며 학생들에게 만화를 읽어내는 데 필요한 다양한 관점을 가르치고 있다.
단독 저서
《키워드 오덕학》(2017)
《나의 만화유산 답사기》(2018)
《(만화·웹툰 작가 평론선) 윤승운》(2018)
《(만화·웹툰 작가 평론선) 김진태》(2019),
《(만화·웹툰 작가 평론선) 한혜연》(2019)
《덕립선언서》(2020)
목차
프롤로그 3
오덕 1. 언제부터 오덕이셨어요? 12
오덕 2. 우리 안의 이율배반 16
오덕 3. '한국적인 것'의 정체 21
오덕 4. 한국어 더빙과 성우 덕질 30
오덕 5. 누구나 가슴에 애니 노래 한 곡쯤은 있는 거잖아요 40
오덕 6. 텔레비전에 내가 만든 말이 나오다 52
오덕 7. 이제는 사라진 성지들 59
오덕 8. 덕질 최대의 적은 무엇인가? 75
오덕 9. 문화 소개자와 도둑놈 사이 87
오덕 10. 덕업일치 97
오덕 11. 오덕과 전문가의 차이 110
오덕 12. 일찍 시작하길 잘했어 116
오덕 13. 튜닝의 끝은 순정, 덕질의 끝은 직접 하기 125
오덕 14. 결국은 남 아닌 '우리' 이야기 136
오덕 15. 덕질 세대론 142
오덕 16. 오덕은 만화업계인 하지 마 150
오덕 17. 포털님, 만화 무시하지 마 158
오덕 18. 웹툰, 덕질하기 참 어려운 166
오덕 19. 인공지능과 덕질의 상관관계 181
오덕 20. 오덕의 연애 197
그리고, 에필로그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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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이란 특정한 문화 영역에 몰입해 수용하며 그에 대해 깊이 있는 정보와 지식을 소유한 사람들을 말한다. 다분히 경멸적인 뉘앙스를 가졌던 일본어 ‘오타쿠(おたく, お宅)’에서 온 말이지만 오타쿠에서 오덕으로 진화하는 사이에 경멸적인 의미가 많이 희석되는 대신 자기 취향에 대한 자부와 구별짓기의 의미가 덧붙여 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오덕이라 불릴 만한 집단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건 대강 1990년대 초반부터라 할 수 있다. 대중문화 전반에 대해 정치권력의 통제가 압도적이었고 그만큼 대중이 접할 수 있는 시장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던 권위주의 시절에 오덕 집단이 형성되기는 쉽지 않았다. 당시에도 자신의 취향을 깊이 있게 추구하는 마니아들이 없지 않았지만 이들의 문화는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렀을 뿐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존재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오덕이라는 사회 집단의 등장은 그 자체가 정치권력의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문화시장의 폭이 넓어지고 다양해지는 민주화 과정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서찬휘는 바로 그 시절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탐닉하면서 PC통신과 인터넷을 무대로 자신의 취향과 지식을 적극 펼치며 전형적인 오덕으로 성장했고 지금은 만화 컬럼니스트로서 나름의 영역을 일구며 활동하고 있다. 자신이 좋아서 몰입하던 대상이 직업이 됨으로써 행복한 ‘덕업일치’를 이룬 흔치 않은 경우인 셈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오덕의 길을 걷기 시작한 시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경험과 과정을 담담히 회고하며 오덕에 관련된 다양한 논점과 논란에 관해 기술한다. 저자 개인이 경험한 오덕의 역사는 단순히 개인사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거기에는 민주화 이후 지난 30여 년 간 한국 사회와 문화가 겪은 변화와 역사적 굴곡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를테면 VCR에서 모바일에 이르는 미디어의 진화, IMF사태와 일본 대중문화 개방, 다양한 인터넷 플랫폼들의 흥망성쇠, 페미니즘의 부상과 혐오 문화의 확산 등 한국 문화사의 중요한 계기들이 오덕의 역사에 흔적을 남겨 놓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오덕 서찬휘가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풀어낸 자기기술지이면서 오덕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본 지난 30여 년의 한국 문화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정 분야에 대해 마니아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취향과 관점에 대해 배타적으로 집착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문화산업의 획일적인 틀을 벗어난 주체적 문화 실천을 통해 스스로 문화자본을 축적하고, 이를 토대로 문화 지형을 풍요롭고 다양하게 만드는 항체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서찬휘의 경우가 바로 진정한 오덕의 긍정적 역할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키워드 오덕학》(2017) 《덕립선언서》(2020) 그리고 《오덕이라니》(2024)로 연결되어 온 그의 작업이 앞으로도 한국 문화담론을 풍부하게 만드는 중요한 성과들을 낳으며 끊임없이 이어지리라 믿는다.
- 김창남(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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