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아웃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다시 보다가 샌프란시스코를 떠올렸다. 미네소타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 온 라일리가 정신적 혼란을 겪고 가출을 하려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골목 저편 하늘을 완전히 가려버린 안개. 그녀의 암울한 상황을 샌프란시스코와 완벽하게 맞물려 표현하는 장면이다.
나 또한 샌프란시스코 여행 중 아침마다 암울한 하루를 통보받곤 했다. 바다와 가까운 도시, 샌프란시스코의 여름은 내내 안개와 함께였으니까. 도시의 열기가 태평양의 차갑고 축축한 공기를 만나면 여지없이 생성되는 샌프란시스코의 안개는 맑은 하늘을 순식간에 가려버리고 엄청난 냉기를 뿜어내는 거대한 에어컨과 다름없다. 책에 필요한 예쁜 사진들을 찍어야 하는데 뿌옇게 도시를 가린 안개는 가뜩이나 빠듯한 일정에 쫓기는 나를 괴롭혔다.
길 위에서 보낸 시간이 일 년의 반절씩은 족히 되었으니, 여행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뻔하면서도 아이러니한 일이지. 하늘길이 끊긴 후에야 그 시간을 곱씹어볼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
나쁘고 힘들었던 기억은 왜 금방 사라지는 걸까. 패딩을 겹쳐 입어도 부족하던 칼바람의 두드림도, 갑작스레 찾아온 무더위에 숨을 몰아쉬며 겨우 겨우 걷던 기억도, 희미해졌다.
이제 남은 것은 트랜스피라미드를 온전히 담겠노라 뜨거운 태양 아래 교차로에서 고군분투하던 우리 모습과
랜즈엔드의 코스탈 트레일 너머로 신기루처럼 모습을 드러낸 골든게이트브리지의 전경.
베이커비치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안개처럼 피었다가 바싹 마른 연보랏빛 종이 꽃밭.
기적처럼 안개가 걷히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록한 사진.
내 걸음의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