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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아래 Apr 17. 2024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어떤 기분에 대하여

숲마마키친 갤러리 전시 노트 - 반주영 작가 

    우리는 아무 생각이 없을 때에도 늘 무언가를 생각한다. 요즘같이 부지부식간에 접하게 되는 수많은 이미지들과 소리들 사이에서 숨쉬듯 무언가를 주제삼아 생각의 가지를 넓혀간다.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해보자고 요가매트를 깔고 파드마사나 가부좌 자세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어 본다. 아무생각도 하지 않게 다는 생각과 함께 눈앞에는 암흑이 아닌 별처럼 시신경의 우주들이 펼쳐진다. 공기가 맑고 고요한 숲에 들어서 본다. 그 동안 무작위로 스쳐가던 무수한 상념들이 차분히 가라앉으며 형언할수 없는 감정이 소록히 올라와 작고 섬세한 가지 펼쳐 나가는 것 만 같다. 어깨와 머리 위로 마치 아주가늘고 긴 아지랑이들이 자라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특별한 어느 곳에 가지않아도 그냥 내가 머무는 일상의 공간에서 우리는 문득문득 형언할 수 없는 간직하고 싶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아마도 그 순간은 너무 많은 생각의 고리들을 이어가다 잠시 쉬어가는 찰나일지도 모른다. 그 잠깐의 순간은 사실 너무 특별하고 동시에 평범하기때문에 그냥 잊고 마는 그런 순간일 것이다. 

    

    맑고 따뜻한 봄, 지난 토요일 오전 그림을 들고 반주영 작가가 찾아왔다. 여유있는 토요일 아침에 손님을 아니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담소하는게 얼마만인지. 일상과 다른 공기에 기분이 그 날의 봄공기처럼 살랑거리는 것 같았다. 미리 작가님 인스타그램을 통해 작품을 봐두었는데 첫 그림의 포장을 벗겨내자마자 실물을 본 나는 "어머!"하고 작게 감탄했다. 화면으로 보는 것과 다른 '밝은 무게감'에 무척 설레었다고 해야할지. 무엇에 대한 표현인지 사전의 정보없이 보았던 그림들은 형태도 색감도 "참 곱기도 하였다." 

섬세함. 그림에 대한 첫 인상이어서 작가님에게 질문을 쏟아내본다. 학생때 부터 이런 섬세한 작업을 해왔는지, 평소의 성격이 그대로 반영된건지, 차분하고 정적인 성격이라고 선입견 부터 생겨버린 거 같은 데 맞는 걸까. 아침에 일찍일어나는 거 같은데 그것도 이런 그림 그리는데 영향이 있을것만 같아서 그 얘기도 한참을 했다. (결론적으로 작가님은 아침보다 밤을 즐기는 타입이라고..) 순간, 어느 찰나의 기분에 대한 표구이기도 한 작가님의 그림들은 정말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기억처럼 액자에 담겨있는 것 같았다. 앞서 써내려간 어느 지나치고 마는 순간들을, 작가는 마치 나즈막히 조곤조곤 읊조리듯 한 땀 한 땀, 아니 한 획 한 획, 잘게 이어지는 시신경처럼 얽고 이어 기록해둔 것만 같았다. 

굳이 미술학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이것은  형체와 감각이 없는 그 어떤 난해한 것을 그려낸 추상화이다.

일상속에  쉽게 정의하거나 설명이 어려운 감정이나 상황, 순간들을 추상작가들의 그림을 통해 표현해 내는 것을 보며 '이것이 내가 막연히 갖고 있던 바로 그 느낌이다'라고 말 할수 있게 되는 경우가 있다. 반주영 작가님과 이야기하며 그림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글의 시작에서 써둔 것과 같이 일상속에서 빈번히 나도모르게 느끼게 되는 그 간지럽기도 하고 몸이 둥둥 떠다는 것 같기도 하고, 몸에서 뭔가 자라나는 그런 기분들을 바로 이 그림들의 형태로 대신 발현된 것만 같았다. 한 명 한 명 모든 사람들의 생각의 타래들이 무수한 결들로 커져나가게 되면 결국 다른 사람의 무수한 결과 만나게 되고 보이지는 않지만 이 세계는 모두 작가님의 그림에서 처럼 서로 연결된 상태가 된다. 내가 아니 이 많은 연결들이 너무 꽉 차서 더 이산 서로 연결되어야 할 공간들이 꽉 차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우주로 퍼져갈거라 괜찮다!고 하는 작가님의 대답에 갑자기 이 그림은 작가의 종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흥미진진해져 버렸다.

봄날의 아지랑이 같고, 눈감으면 보이는 시신경 같기도 한  뿅뿅 나타나고 사라졌다가 불어나고 커져서 뻗어나가고 있을도 모르는 그 '신비하고 기이한 무언가들


나의 작업은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것들에 관한 탐구이다. 미국 유학시절 창밖에서 작은 방 안으로 들어오던 햇살과 바람, 흔들리는 레이스커튼을 바라보던 순간 느낀 행복감은 ‘지금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생(生)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였다. 동시에 그 순간의 나의 신체에서는 설레임의 감정과 함께 무형의 무언가가 지속적으로 발산되어 외부공간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듯 했다. 상상해 보건데, 나는 이 신비롭고 기이한 무엇이 시간이 흐르며 광활한 우주 공간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입자들이 되어 공간을 부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공상에 다다르게 되었다.    <작가노트 중에서>


이 신비롭고 기이한 무엇. 광활한 공간, 우주까지 퍼져 부유하는 이 작은 입자들. 

그것이 바로 "누구나 느끼고 알고 있지만 특별히 표현해 내지 못하는 그 무엇"인데 작가는 이 모호한 것을 매우 섬세한 표현으로 감각적으로 그리고 감성적으로 그렸내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작가의 성격을 닮기도 했을 그녀의 일부일지도 모르는 그림들. 종이에 채색으로 표현된 평면위에서 '지속적으로 발산되어 외부공간으로 뻗어가는' 그 생각들과 연결되어 입체적으로 해석하고, 동시에 작가가 아닌 나의 이야기와 감각들을 상상하며 나만의 '신비롭고 기이한 무엇'을 발산하게 해서 서로 연결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다행히도 작가가 선택한 색감들은 부드럽고 가벼우며, 정말 어디든 잘 펼쳐져 날아갈수있을 것만 같아 어두운 감정의 타래들도 함께 그 무게와 색감에 물들게 되는 것만 같다.



숲마마키친 지하 갤러리 전시 전경
숲마마키친 지하 갤러리 전시 작품 3점



전시장 1층의 그림들과는 조금 결이 다른 지하의 세 개의 작품들을 구상하게된 이야기도 재미있다. 지하철 의자 아래 환풍망을 무심결에 쳐다보다 빠져든 생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데 1층의 아지랑이그림들 처럼 마치 어떤 벽지의 문양을 촛점없이 바라보다가 형태위에 겹쳐 나타나는 제 3의 형태를 발견하듯, 환풍망은 초록빛의 윤슬을 머금은 바다같기도 하고 도시의 야경같기도 하며, 또한 별이 쏟아지느 밤하늘 같기도,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어떤 도시의 구획같기도 하다. 작가와 똑같이 지하철에서 환풍망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에 벌어지는 또 다른 상상과 해석들은 작가 노트에 언급된 것처럼 확대되는 생각의 타래들이고 보는 사람들 간의 서로다른 이야기로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뭉글거리며 움직여가는 생각의 흐름 이란 이런 것일까. 
한 톨  한 톨 몽글몽글해지고..
그리고 그 몽글거리는 것들은 또한 연결되어있다.


이후 평범한 일상 속 찰나의 이 경험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자 생에 대한 의미와 비가시적인 물질을 시각화 하고자 하였다. 우연한 순간 체험한 비가시적인 것의 실재(實在)는 개체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성을 지닌 일종의 생 에너지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하였고, 이는 작품 활동하는 시간이 흐르며 점차 더욱 범위를 넓혀가며 잠재성을 지닌 유동하는 무형의 무언가의 흐름으로 확장해나갔다. 작품에서 작은 단위들이 반복, 군집하여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나타나는 추상적 이미지들은 유동하는 생 에너지, 뭉글거리며 움직여가는 생각의 흐름들, 발산되어 뻗어나가는 상상력, 또 개체들 간의  관계적 양상에 관한 관찰이자 탐색들이다.  <작가노트중에서>





나는 작품 속 작은 것들이 만들어내는 유기적이고 추상적 풍경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광활한 우주에 존재하는 미물들, 우리들, 작고 연약한 우리들은 유한한 시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유동하며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풍경을 이루며 살아간다.  나는 우리들이 지닌 이 비결정성을 변화가능한 무한한 잠재적 힘으로 바라보며 반짝이는 작은 존재들이 만들어가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흐름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작가노트 중에서>

그렇게 서로 연결되어 하나가 되어 가는 느낌이 한 작품에 응축된 작품 같기도 한 8개의 구두를 신은 다리가 보이는 이 그림은 마치 전시장인 숲마마키친 매장 조명의 "Love"와 일맥상통 이어져 있는 것만 같다.


다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본다.

우리는 늘 무수한 이미지와 소리, 냄새 모든 감각에 노출되어 끊임없이 생각을 멈추지 않고 살아간다. 그리고 과부하된 그 상태를 벗어나고자 새로이 생각없음이라는 생각으로 생각들을 누르고 다른 결의 감각을 깨워낸다. 일부러 노력해서 그런 무결한 상태에 다다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아주 작고 사소한 계기로, 그런 소중한 순간을 자주 접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너무 사소해서 놓쳐버렸거나, 기억한 필요를 못느낄만큰 자극적인 것에 더 익숙해 져 버렸을 지 모르겠다. 살갗위로 작은 벌레가 지나가는 것처러 간지럽고 뱃속에 나비가 있는 것같은 그 어떤 봄날의 햇살같은 날, 일상의 어떤 소박하고 소중한 순간들을 반주영 작가의 몽글몽글한 그림 기록을 통해 공감하고 교감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오래된 건물 기둥에 한 몸처럼 어울리는 작품 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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