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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과의사 닥터몰라 Aug 14. 2020

어느 노부부 이야기

2020년 6월 25일의 하루

 대학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다양한 범주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어린 아이가 조금만 아파해도 맘 졸이며 바라보는 비교적 젊은 보호자, 베드에 링거를 달고 누운 채로 끌려온 의식이 없는 환자, 가정 불화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서 잠은 잘자냐는 교수님의 말 한마디에 눈물 펑펑 흘리는 환자 등 참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문제를 갖고 병원에 온다. 그런 환자들 중에도 유독 그날 그날 내 마음을 콕 찌르는 환자들이 있다.


 구강외과에서 신환차팅을 하는 날이었다. 환자 이름을 불렀을 때, 할머니가 타고있는 휠체어를 할아버지가 밀면서 노부부가 함께 들어왔다.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하셨기에 한 눈에도 마르고 등이 굽은 모습이 도드라지던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번쩍 들어 유니트체어에 앉히셨다. 의자 끄트머리에 앉은 할머니는 스스로 자세를 고쳐앉지도 못하셨다. 그런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할 뿐 아니라 전신병력 또한 갖고 있어서 뿌리만 남은 치아를 함부로 뽑지 못해 동네치과에서 의뢰되어 오신 분이었다. 어렵사리 할머니를 앉히고 나서 할아버지게 내게 건넨 서류뭉터기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주름만큼이나 꾸깃꾸깃 접혀있었다. 그런 서류들의 모습이 왜인지 마음이 시렸다. 의사소통이 어려우신 할머니를 대신해 할아버지가 내게 바싹 당겨 앉아 할머니의 상태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코로나로 인해 코 끝까지 마스크를 고쳐 쓰고서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었다.     


 2주 전 식사하다 치아가 부러졌고 그로 인한 통증으로 동네치과에 갔으나 전신질환으로 인해 당장에 발치는 못하니 신경치료를 임시로 해놓고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들으셨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조금이라도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려 애쓰셨다. 그러면서 드시는 약들을 복약 지도서 설명 옆에 알알이 테이프로 붙인 것을 가져오셔서 이 약을 먹지말라고 해서 일주일동안 먹지 않고 왔다는 것도 알려주셨다.(혈전용해제는 지혈이 잘 되지않기 때문에 이 약을 복용중인 환자는 외과적 시술을 진행할 수 없다.) 알약이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어있는 그 종이를 보며 할아버지의 정성이 전해졌다. 이런 사소한 데에서 나타나는 거면 일상 속에서도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정말 많이 사랑하신 것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지금 거동도 불편하고 건강도 좋지 않지만 할머니를 위해 정성을 다하는 할아버지의 정성이면 할머니의 삶에 행복이 필연적일 것만 같았다. 원칙적으로 당일 발치는 흔치 않지만 마침 오전 환자도 적어서 약을 끊고 오신 김에 바로 발치를 진행하였다. 그러는 내내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기다리셨다. 기다림 내내 할아버지의 진심어린 걱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 SNS에서는 나를 진심으로 위해줄 사람이 1명만 있어도 성공한 삶이라고 하는 말이 돌아다닌다. 오늘 본 환자분은 그 기준에선 성공한 삶이 아닐까. 사실 오늘 그 할머니가 부럽기도 했다. 잠깐의 대화만으로도 느껴지는 할아버지 진심의 깊이를 감히 가늠할 수도 없었다. 과연 나는 저렇게 나의 아픔에 같이 아파하고, 나의 건강을 위해 같이 애써줄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나의 짧은 경험으로는, 마음을 다해 사랑한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사랑이 바래고 사라지는데 그런 사랑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 회의감밖에 없던 내게 그 노부부는 그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언젠간 우리 모두에게도 그러한 진심 가득한 동반자가 찾아오겠지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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