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9일의 하루
“꼼꼼하게 잘봐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이제 고기를 씹을 수 있어요”
내가 최근에 받은 카톡 내용들이다. 이제 반 년만 지나면 정식으로 치과의사가 되는 터라, 더 이상 실습이 아닌 “진짜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교수님의 지도 하에 철저하게 교과서적인 과정에 따라 치료하는 ”원내생 진료“를 했었기 때문이다. 원내생 진료는 스케일링, 충치치료, 발치 등 각 치료의 분야마다 최소로 수행해야하는 환자 수가 정해져 있는데 나는 얼마전 최소 임상 진료 케이스를 다 수행하여 진료를 마무리하였다.
사실 치과대학을 다니는 4년 내내 원내생 진료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최소 임상 케이스를 다 채우지 못하면 졸업을 안시켜준다던데…. 대개 지인들을 많이들 데려와 치료하는데. 전주라곤 입학할 때 처음 와본 내게 지인이라곤 거의 학교 사람들이었고 5시간이 걸리는 도로를 와달라고 하기엔 가족들에게도 부담이 될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터져 원내생 진료가 계속 연기되기도 하였다.
그렇게 미뤄지던 원내생 진료가 시작되던 5월 초, 샌드위치 연휴에 휴가를 쓰고 서울에서 와준 친구가 내 첫 환자가 되었고 본인은 별로 불편한 건 없으니 검진만 해보라던 친구의 생애 첫 스케일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구강건강이 아주 엉망이었다. 20대인 친구의 잇몸뼈는 치주병으로인해 50대만큼 내려가 있었고 깊은 충치에, 이갈이로 인한 턱관절질환까지 있었다! 그 날로 서울로 돌아간 친구는 결국 치과에서 견적만 100만원이 넘게 나왔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자기도 모른채 방치했던 치아상태를 내 덕분에 알 수 있었다며 친구는 연신 고맙다고 했다. 사실 나는 한 것도 없는데... 고맙다는 말을 듣는 동안 친구를 향한 걱정어린 마음과 함께 뿌듯함도 느껴졌다.
다른 환자는 치아가 깨진 채로 1년을 지냈다고 한다. 부러진 틈으로 충치가 크게 생겨서 음식을 씹기도 불편했다고 했는데 충치치료한 이후에 통증이 말끔히 사라졌다고 했다. 이제는 고기를 씹을 수 있다며 장문으로 날아온 카카오톡 메시지에 그 친구의 기쁨과 고마움이 잔뜩 묻어나왔다. 원내생 진료를 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었다. 나에겐 고기 반찬이 그저 맛있는 반찬 정도에 지나지 않는데 누군가에겐 먹고싶어도 아파서 먹지 못하는 그림의 떡이 될 수도 있구나, 일상 속에서 환자의 입장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의식주衣食住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나는 치과대학을 4년 동안 다니면서도 치과치료의 목적은 ‘이가 아프지 않게’라고만 생각했었다. 물론 통증 조절도 치과치료의 우선적인 목적이지만 나는 이번 진료를 하면서 치과치료를 통해 의식주 중 ‘식食’을 가능하게 하여 인간의 기초적인 삶을 더 편안하게 해주는 것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공부한 학문에 대한 보람과 내가 진료했던 경험들에 대한 뿌듯함을 느꼈다. 책으로만 읽어오던 의료인의로서의 사명감이 이런 걸까 하고 내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