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는 영화 속에서 이런 것을 본다 05 : 키핑 더 페이스
뉴욕의 밤거리를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배회하는 카톨릭 신부. 브라이언 신부(Edward Norton)가 첼시의 아이리쉬 펍의 바텐더에게 고해성사를 하듯이 털어놓은 사연은 바로 기구한 사랑 이야기다.
어린 시절 3 총사로 지냈던 세 아이, 남자 둘, 여자 하나. 당시 유명했던 테이텀 오닐(Tatum O' Neal_동시대 스타였던 브룩 쉴즈와 달리 주근깨 투성이의 친근한 미모를 가졌다)을 닮은 애나는 말괄량이에 곧은 성격으로 또래의 남자애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두 주인공의 복수를 해준 계기로 친해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애나는 아버지의 전근 때문에 뉴욕의 반대편인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가게 된다.
애나가 떠나고 남겨진 남자아이끼리 계속 우정을 이어가고, 한 친구는 신부로, 또 다른 친구는 유대교 랍비가 되어 뉴욕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브라이언 신부와 유대교 랍비 제이크(Ben Stiller)가 그들이다. 서로의 우정만큼이나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며 우정을 다져가는 두 친구에게 과거의 여자 친구 애나 라일리(Jenna Elfman)가 커리어 우먼이 되어 나타나며 상황은 바뀌어 간다.
월 스트리트 금융계의 파워 넘치는 커리어 우먼에다가 멋지기까지 한 애나. 그녀의 등장은 두 친구의 마음을 마구 흔들어 놓는다. 과거처럼 셋이서 틈만 나면 어울리지만, 더 이상 어린애들이 아니기에 마음이 마냥 편하지는 않다. 브라이언은 신부직을 포기할 만큼 애나를 사랑하게 되고, 제이크는 비유대인 아내를 반대하는 홀어머니와 유대교당 장로들 때문에 고민한다. 결국 애나와 제이크는 다른 사람들 몰래 만나며 사랑을 시작한다. 애나는 제이크와의 사랑을 위해 캘리포니아의 본사 직장의 좋은 조건까지 포기하고 뉴욕에 남겠다고 한다. 그러나 즐거운 시간도 잠시, 엄격한 유대교의 종교적 관습에 고민하던 제이크는 애나에게 종교문제를 이유로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며 상처를 준다. 크게 마음이 상한 애나는 신부 브라이언에게 울며 하소연을 한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브라이언은 애나가 자신을 사랑해서 고민하는 줄만 알고, 애나에게 속에 간직했던 사랑을 고백했다가 거절당하고 만다.
대화를 하며 이미 애나가 제이크와 사귀고 있었음을 알게 된 브라이언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애나에게 거절당한 것보다도 절친한 친구 제이크가 자신에게 사실을 숨긴 것이 더 큰 상처였던 것이다. 얼마 후 제이크에게 실망한 애나는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애나와 헤어진 제이크는 브라이언을 찾아와 두 사람의 관계를 고백하며 숨긴 것에 대해 사과한다. 그러나 브라이언은 오히려 망설이는 제이크에게 애나를 붙잡으라고 등을 떠밀며 격려한다.
영화 속에서 두 친구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 장소는 브라이언이 근무하는 성당 근처의 횡단보도다. 언성을 높이는 둘의 주변으로 어느새 사람들이 몰려든다. 브라이언이 행인들에게 “왜 여기 서 있죠?”라고 묻는다. 행인들은 “신호가 바뀌지 않아서”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브라이언이 외친다. “여긴 뉴욕이에요. 누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립니까? 빨리 건너가세요!” (대부분의 뉴욕 도로는 일방통행이기 때문에 한쪽 방향만 주의하면 된다. 그래서 보행자들은 보행 신호가 아니어도 다가오는 차가 멀리 있으면 건너가는 관행이 생겼다.) 옆에 있던 제이크는 이 말을 통해 우유부단했던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애나의 송별 파티장으로 달려가는데….
여기에서 문제의 횡단보도 신호등을 보자. 헬베티카로 붉고 선명하게 “DONT WALK"라고 표시되어 있다. 보행자 신호는 아랫부분에 "WALK"라고 백색으로 표시된다. 이 얼마나 오만한 신호등인가. 영어를 모르면 어쩌란 말인가. 이는 빨강, 파랑의 사람 모양 픽토그램이 들어간 신호등에 익숙한 우리에겐 너무 낯설다. 물론 눈치껏 다른 사람들을 따라 건널 수는 있겠지만, 신호등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목숨을 잃을 만큼 위험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신호등이다. 그만큼 오랜 시간 많은 개선과 발전을 거쳐왔다.
세계 최초의 신호등은 사람이 아니라 운송수단을 위한 신호등이었다. 증기자동차가 거리를 누비던 1868년 영국 런던에서 사용된 가스식 수동 신호등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가스의 폭발로 위험성이 재기되자 촛불, 석유등으로 변화했다.
최초의 전기 신호등은 1914년 미국 디트로이트에 설치되었다. 다만 당시엔 정지를 표시하는 적색 등만 있었다. 1918년에 이르러서야 오늘날과 같은 3색 신호등이 등장해 뉴욕에 설치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교차로 가운데 설치된 교통탑 위에서 사람이 수동으로 조작하는 방식이었다.
<키핑 더 페이스>에 등장하는 횡단보도 신호등은 1952년 2월에 뉴욕에 도입된 것이다. 영화 제작연도가 2000년이니 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셈이다. 그래서 옐로 택시와 함께 뉴욕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의 수도’, ‘다민족의 용광로’라 불리는 국제도시 뉴욕이 이 불친절한 문자 기반 신호등을 50년간 고집해왔다는 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미 오래전 각국에서 픽토그램 기반의 적청 신호등이 사용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문자 기반 신호등은 2004년 2월에서야 픽토그램 기반 LED 신호등으로 교체되었다. 당시 뉴욕시장 블룸버그는 “뉴욕은 전 세계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으로, 비영어권 사람들도 많다. 오늘에야 그들에게 친절하고 안전한 보행자 신호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발표했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그동안의 뉴욕의 보행자 신호가 차별적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뉴욕의 신호등과 달리 서울의 신호등은 개선할 여지가 많다. 적청 신호등은 색맹 또는 색각 이상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다. 그리고 픽토그램도 정지한 사람, 걷는 사람으로 표시되는데, 그 변별성이 미미하다. 시력이 낮은 사람에게는 비슷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뉴욕의 신호등은 정지신호와 보행신호의 픽토그램 사이에 유사성이 없다. 즉, 혼란의 여지가 적다. 정지신호는 적색 손바닥이다. 접근금지, 거부, 정지를 뜻하는 손바닥은 보편적 시각 언어다. 그리고 보행신호는 백색의 걷는 사람 모양이다. 정지 자세로 잘못 인식되지 않도록 몸동작도 역동적이다. 이 두 신호의 색상은 각각 적색•백색이므로 색맹 여부에도 상관이 없다. 매우 유니버설 한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이 신호등은 2010년 8월에 다시 한번 진화한다. 사실 횡단보도에 서면 건널 것인가 말 것인가 망설여지는 순간이 있다. 신호가 교체되는 잔여 시간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위한 신호등에는 이런 기능을 황색 표시가 하고 있다. 이런 기능이 없는 보행자 신호 때문에 교통사고가 빈번해지자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었다. 보행신호에서 정지신호로 바뀌기까지의 잔여시간을 숫자로 표시해주는 기능이다. 이 기능이 탑재된 신호등으로 교체된 이후 실제 사고율이 대폭 낮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새 신호등에도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애써 신호등에서 빠졌던 문자가 다시 들어간 것이다.
과연 신호등의 잔여시간 표시에는 문자적 표시 외에는 방법이 없는 걸까?
서울의 신호등은 잔여시간 표시를 두 가지 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다. 화살표 표시가 줄어드는 비문자적 표시와 숫자로 알려주는 문자적 표시다. 화살표 표시의 장점은 문맹자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잔여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아라비아 숫자가 언어와 상관없이 만국 공통어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 현재로서는 숫자 표시가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세계의 신호등은 진화하고 있다. 모래시계 모양으로 잔여시간을 표현하는 곳도 있다. 이런 시도는 LED 조명의 개발로 인해 가능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친근한 신호등 속 사람 모양 픽토그램은 언제 사용되기 시작했을까? 독일의 신호등에 표시된 배 나온 남자 픽토그램은 암펠만(Ampelmännchen-독일어, 신호등 남자)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녹색은 게어(Geher, 걷는 사람), 적색은 슈테어(Steher, 서 있는 사람)다. 이 암펠만은 귀여운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50이 넘은 아저씨다. 1961년 동독의 칼 페글라우 박사는 동베를린 시로부터 의뢰받아 남녀노소에게 친근하고 교육적 효과가 있는 픽토그램을 만들었다. 시력이 저하된 노인이나 지각 능력이 낮은 어린이들을 위해 발광 부분의 면적을 최대화한 결과 통통한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날씬한 모습의 픽토그램이 대세인 요즘에 역으로 구별되는 귀여운 몸매다.
이 신호등은 아쉽게도 동독이 서독에 흡수 통일됨에 따라 거리에서 사라지고 만다. 구동독인의 향수와 함께 사라졌던 암펠만은 1995년에 조명 디자이너 마르쿠스 헥하우젠에 의해 조명으로 재탄생된다. 이후 다양한 제품으로 탄생되어 통일 이후 상대적 상실감을 느껴온 구동독 사람들에게 향수를 자극하는 마스코트로 사랑받았을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급기야 2005년에는 횡단보도의 신호등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물론 LED 등 신기술로 새단장을 하고서 말이다. 신호등의 디자인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더욱더 진화해서 보행자들이 횡단보도에서 한치의 망설임과 혼란 없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해줄 새로운 신호등을 기대해 본다.◼︎
필자 소개 : 장성환(pigcky@gmail.com)
현재 203인포그래픽연구소 대표 | <리더스다이제스트>, 연합뉴스 그래픽뉴스팀 창설, <주간동아>, <과학동아> 등에서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다가 2003년 홍대앞에서 203 X 디자인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이후 2009년 홍대앞을 기록하는 동네잡지 <스트리트H>를 창간해서 현재 12년차에 이르고 있다. 2012년 인포그래픽 연구소를 설립하고 <윤디자인연구소 갤러리>에서 현직 언론사 인포그래픽 담당자들과 인포그래픽 그룹 전시회를 주최했다
-
2018~2020 말로피에 국제 인포그래픽 어워드 3년 연속 동상
2019~2020 싱가폴 아시안 미디어 어워드 인포그래픽 금상, 동상 수상
2020 레드닷 브랜드&커뮤니케이션부분 위너
2020 디자인대상 공로부문 대통령상 수상
-
203 X 인포그래픽연구소 http://203x.co.kr/
홍대앞 동네잡지 <스트리트H> http://street-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