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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성환 Jul 04. 2022

헤어질 결심은 누가 했을까?

디자이너는 영화 속에서 이런 것을 본다 : 헤어질 결심 속 이미지들

피의자로 다시 만난 두 남녀의 차 안 풍경은 안도의 공간
연인의 차안은 터질 것 같은 긴장감으로 가득찬 공간

포스터가 준 기시감과 그 차이

오랫만의 극장관람 영화인 <헤어질 결심>을 보기 전의 포스터는 내게 기시감을 불러 일으켰다. 1992년 개봉한 장자크 아노 감독의 <연인>의 도입부 장면이 그것이다.

두 사람의 손을 보면 두 영화의 장면이 정말 유사하게 보인다. 손끝이 간신히 닿아 있는 느낌이 그렇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나면 보이는 것과 내용은 전혀 상관없다. 

영화 <연인> 속의 차 안은 마른 침을 삼키게 되는 터질 것 같은 긴장감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헤어질 결심> 속의 차 안은 수갑으로 묶여 있음에도 너무도 편안함과 안도의 순간이다. 서래와 헤어진 후 불면증이 더 심해진 해준이 짧은 이동시간에도 잠에 골아 떨어질 정도로 이완과 신뢰의 공간이다. 미쟝센은 비슷하나 감정선은 전혀 다른것이다


포스터 속의 사진은 뒤바뀐게 아닐가?

남녀 포스터 - 뒤러의 자화상과 다빈치의 모나리자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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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해준이 등장하고(그래서 배경이 산) 바다에서 헤어질 결심을 실행하는 서래(그래서 배경이 바다), 초반에 서래의 거실을 가득채운 벽지의 무늬는 일본의 다색 목판화를 연상시킨다. 초반의 스릴러 무드를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바다에서 끝날 것이라는 암시처럼도 보인다

벽지는 산처럼도 보이고 바다처럼도 보인다

포스터 속의 서래_탕웨이 사진은 르네상스 초상화의 전형의 구도다. 관찰자, 화가, 촬영자의 시선을 응시하고 있다. 원망이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는 서래의 표정이 웬지 영화 전체를 암시는 포스터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서래의 결심을 알아버렸기에). 

반대로 해준_박해일의 시선은 화가의 눈이 아닌 그 뒤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먼 바다를 바라다 보는, 서래를 놓아버릴, 헤어질 결심한 뒤의 표정이다. 이 또한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그가 어떤 붕괴를 반복할 지 알아 버렸기에) 포스터 속의 남녀 표정은 오히려 반대였어야 하지 않았을까? 


남자의 말, 여자의 말

남자는 자신이 지켜온 품위의 기반인 자부심이 붕괴된 순간 그녀와 헤어질 결심을 하며 그녀를 안전한 곳으로 떠밀어내고 물에 빠져 포기한 사람처럼 일상이 무기력하게 반복되는 안개의 도시, 아내가 있는 이포로 전근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 순간을 녹음한 남자의 한국말을 헤어진 후에도 반복해 들으며 남자를 그리워 한다


한국어, 중국어

한중일의 말은 한자표현에 많이 기대어 있기에 때로는 공통된 기표와 기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래서 파파고 같은 번역기가 가끔 웃픈 번역을 하기도 해서 주의해야 한다.


극중에서 먹이를 주는 고양이가 가져다 놓은 까마귀를 보며 서래가 중얼거린 말을 녹음한 해준은 번역기로 해석을 해보고 놀란다. 네가 선물을 주고 싶다면 "그 남자의 심장을 가져다 줘"

살인 피의자 여자의 독백에 아주 어울리는 듯하지만 중국어로 마음을 心肠_Xinchang이라고도 한다. 그것을 정말 인체기관 心脏_Xinzang이라고 잘못 알아 들은 번역기의 실수가 절묘하다


남자는 자신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 한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 남자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밖에 내뱉은 적이 없다. 다만 "자신이 붕괴되었다"고 했을 뿐이다. 여자는 붕괴라는 단어 속에서 남자가 미처 설명하지 못한 사랑을 느꼈고 그 크기를 체감했다. 그래서 다시 "만날 결심"을 했다


남자는 재회가 또 다른 살인으로 이어지자 절규한다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여자는 받아친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我有那么坏吗?"

우연일지 모르겠지만 중국어 나쁘다의 "_huai"는 붕괴崩坏에서의 괴坏다. "나는 당신때문에 붕괴 되었어". "내가 그렇게 당신의 붕괴의 원인입니까?"처럼 느껴졌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억양의 낯섬, 새로움

일때문에 파파고를 통해 중국어로 대화를 한 경험으로 영화를 보니 일상 속 한국어에서는 너무 평범할 말과 의미들이 이 영화에서 새롭게 보이고 들리는 순간들이 많았다. 우리는 중국어에 4성이 있어 배우기가 어렵다지만 중국인들은 4성이 있어서 한국어를 배우기 어렵다. 그들이 아무리 어휘가 유창해도 억양에서 4성을 아예 배제하기는 어렵다. 한국의 표준말은 억양이 매우 적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인들에게 영원한 이방인 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그 의미와 느낌이 이미 휘발되어 건조한 단어도 다시 설레이게 들린다. 마치 그녀가 겸연쩍게 웃으며 혀를 쏙 내밀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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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기표를 내뱉지 않았기에 자신의 사랑이 정리된 줄 알았던 남자. 그 기의를 일찌감치 깨달았기에, 뒤늦게 그것을 깨달은 남자가 다시 붕괴될까봐 여자는 다시 "헤어질 결심"을 한다. "한국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결혼하면 사랑도 멈춥니까?"라고 생각했던 여자가...

서래가 헤어질 결심을 실행하는 바닷가의 바위들은 어쩐지 영화가 처음 시작한 산처럼도 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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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음악 정훈희와 송창식이 듀엣으로 부르는 노래 <안개>가 액자소설 처럼 또 다른 이야기를 애절하게 들려준다

https://youtu.be/w38nt1jq-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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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decision_to_leave #Chanwook_Park #헤어질결심 #박찬욱감독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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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the Cannes Film Festival, director Park Chan-wook won the best director award. For the first time since the pandemic, I watched his new movie "Decision to Leave" at the cinema. From the designer's point of view, a few things were unique




필자 소개 : 장성환(pigcky@gmail.com)

현재 203인포그래픽연구소 대표 | <리더스다이제스트>, 연합뉴스 그래픽뉴스팀 창설, <주간동아>, <과학동아> 등에서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다가 2003년 홍대앞에서 203 X 디자인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이후 2009년 홍대앞을 기록하는 동네잡지 <스트리트H>를 창간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12년 인포그래픽 연구소를 설립하고 <윤디자인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웹매거진 <타이포그래피 서울>에 "디자이너는 영화 속에서 이런것을 본다" 시리즈 컬럼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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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20 말로피에 국제 인포그래픽 어워드 3년 연속 동상

2019~2020 싱가폴 아시안 미디어 어워드 인포그래픽 금상, 동상 수상

2020 레드닷 브랜드&커뮤니케이션부분 위너

2020 디자인대상 공로부문 대통령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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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X 인포그래픽연구소 http://203x.co.kr/

홍대앞 동네잡지 <스트리트H> http://street-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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