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엄마 연대기 Ep. 10
세상에 나쁜 엄마는 없다.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문구가 있다.
“Good girls go to heaven. Bad girls go everywhere.”
직역하면 ‘착한 여자들은 천국에 가고 나쁜 여자들은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라는 뜻이지만, 좀 더 해석해 보면 ‘착하고 모범적인 여자들은 천국밖에 못 가지만 주도적이고, 개성 강한 여자들은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1997년에 미국에서 발간된 여성들을 위한 자기계발서의 제목이기도 한 이 문장에서 나는 엄마의 역할과 가치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가 말하는 ‘좋은 엄마’, ‘나쁜 엄마’는 도대체 또 어떤 엄마인가. 좋고 나쁨과 잘하거나 못하는 것을 누가 어떻게 구분할까. 아직 열다섯 살 아들을 양육하는 중인 나 또한 그에 대한 답을 온전하게 찾지 못했다. 그러나 최소한 ‘하면 안 되는 것’ 또는 ‘하면 도움되는 것’ 정도는 희미하게나마 아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좋은 엄마’는 엄마가 속한 커뮤니티의 성격에 따라 과학고나 영재고, 명문대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킨 엄마이기도 하고, 아픈 자식을 정성스럽게 희생하며 돌보는 엄마이기도 하다. 때로는 매일 아침 메뉴를 바꿔가며 도시락을 싸서 보내는 엄마, 아이에게 절대로 화를 내지 않는 참을 忍 (인) 천 개를 쓰는 엄마이기도 하다. 이 기준으로 보면 나야말로 ‘좋은 엄마’보다는 ‘나쁜 엄마’ 쪽에 가깝다. 나는 아들을 명문 학교에 입학시키지도 않았고, 아이가 감기에 걸리면 그저 해열제 정도 먹이는 엄마이다. 그리고 도시락을 싸가야 하는 캐나다에서 학교에서 파는 점심을 먹으라고 주문해 줬으며, 나의 컨디션이나 기분에 따라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짜증이나 화를 낼 때도 많았다.
그렇다고 내가 스스로를 ‘나쁜 엄마’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15년간 아들을 키운 나를 어떠한 엄마로 정의내린다면, 현 시점 기준으로 ‘부족하지만 반성하고 나아지려는 엄마’이다. 3년여 전부터 사춘기를 만난 아들과 일상을 함께 하면서 엄마로서 나를 돌아보고 반성할 일이 자주 있었고, 그때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와 ‘어떻게 하면 나쁜 엄마가 되지 않을 수 있나’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인생의 모든 일이 그렇듯, 자녀를 키우는 데도 정답은 없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엄마의 역할이 가감되거나 재정의된다 해도, 엄마라는 사람은 아이의 시작이자 끝인 동시에, 안식처나 비상구가 되어야 한다. 비슷한 의미에서 사춘기 자녀에게도 엄마는 심리상담 선생님의 역할에서부터 단골 밥집 이모, 아이돌 매니저 등처럼 매우 다양한 역할들을 수행해야 한다. 매일 밥해서 먹이는 것도 힘든데 그 많은 일들을 다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일들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의 지원을 해줄 마음과 태도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말이 없다. 특히 아들은 말이 많던 아이도 변성기가 오고 사춘기에 접어들면 말수가 확 줄어든다. 그 변화의 시점이 오면 대부분의 엄마는 자꾸 아들에게 말을 건다. 심지어 개방형 질문이 아니라 듣고 싶은 답이 정해져 있는 폐쇄형 질문을 던진다. 엄마가 질문에 질문을 보태면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아들이 어쩔 수 없이 말을 하거나 아예 입을 닫아버리기도 한다. 만약 심리상담 선생님이라면 억지로 아이에게 말을 걸거나 대답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말할 준비가 되고 말하고 싶어 할 때까지 기다려준다. 나는 상담가는 아니지만 스스로 훈련하고자 규칙을 정했다.
‘아이가 말할 준비가 될 때까지 다그치듯 질문하지 말 것.’
‘아이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면 개방형 질문을 할 것.’
‘아이가 말을 시작하면 ‘그랬구나’로 시작하며 더 말을 끌어내려고 할 것.’
어떤 엄마들은 ‘나는 집에서 식당 아줌마 같다.’고 서운해하며 스스로를 연민한다. 아이가 엄마가 해준 밥만 먹고 대화도 없이 방으로 쑥 들어가 버리면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사춘기 엄마들은 아이가 맛있게 잘 먹고 제 방으로 들어가면 밥집 이모가 식사를 끝낸 손님이 가게를 나갈 때 하듯 감사 인사를 전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나 역시 아이가 밥먹고 나서 말없이 제 방으로 들어가면 살짝 화가 나기도 하고 아쉽다. 밥먹으며 더 이야기 나누고 싶고 궁금한 것도 많은데, 무뚝뚝한 아들은 엄마와의 대화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럴 때면 나는 마주앉은 식탁에서 혼잣말을 한다.
“아들이 엄마가 만든 밥 맛있게 먹으니 기분이 좋구만.”
“요즘 갈치가 철이라서 반찬 만들었어.”
“우리 아들은 소고기 미역국을 역시 잘 먹는구나.”
아들은 듣는 둥 마는 둥이지만 나는 아무도 묻지 않는 내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단골 밥집 이모님이 그러듯이.
마지막으로 아이돌 매니저처럼 아이의 스케줄을 관리해 주고 운전을 해준다. 필요하면 간식과 음료수, 필요한 물건들을 신속하게 챙겨주는 역할도 엄마가 하는 중요한 업무다. 매니저 없이 연예 활동하는 아이돌을 상상할 수 없다.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일할 때 아이돌 옆에서 그림자처럼 손발이 되어 챙겨주는 매니저들을 많이 봤다. 그들은 아이돌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미리 움직인다. 생각보다 매니저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러나 24시간 자기의 아이돌을 위해 대기한다. 때로는 아이돌의 불평이 나올 때도 있다. 그러나 매니저는 거기에 일희일비 반응하지 않는다. 연습, 방송, 녹음, 촬영 등 모든 일들이 스트레스의 연속이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돌의 성공과 실패를 묵묵히 함께 나눈다. 사춘기 아이들이 엄마에게 고맙다고 말 한마디 없이 짜증을 내거나 늘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더라도 우리는 매니저처럼 옆에서 챙겨주며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봐야 한다. 그 모든 것이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므로.
나는 평생을 성실하고 모범적이며 원칙에 맞게 살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학교나 회사에서는 어느 정도 나의 성실함과 노력이 통했다. 사람은 배신해도 일은 배신하지 않는다던데,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로서는 그 기준이 통하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내가 성심성의껏 아이를 돌봐도 아이는 예측하지 못한 행동을 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원칙에 맞게 아이를 훈육하려 할 때마다 생각지 못한 반응으로 내 원칙을 흔들어 놓는다. 게다가 아이는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나는 노력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는 엄마가 노력하지 않고 달라지지 않는다고 느끼면 곧 갈등이 시작된다.
세상이 미리 정해 놓은 잣대와 논리로 엄마들을 평가하고 비판할 수는 없지만, ‘하지 않았으면 좋을’ 말과 행동들은 많다. 그래서 좋은 엄마로 인정받아 천국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주관대로 하되 때로는 부족하더라도 아이와 함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도전하는 엄마가 되는 일은 중요하다. 출산 후부터 지금까지 아들을 어떻게 키우고 돌보고 지도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저 ‘사랑해주면 된다.’, 사춘기 아들은 내버려 두면 된다.’, 내지는 ‘아들은 때가 되면 철든다.’ 등의 애매한 조언뿐이었다. 나는 나와 내 아들에게 맞는 ‘아들 잘 키우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했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매일 다르게 노력하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그래서 앞에서 소개한 문구를 다음과 같이 바꿔보고 싶다.
“Good moms make kids go to IVY league schools. Bad moms go everywhere with their kids.”
‘좋은 엄마들은 자녀들을 아이비 리그 대학으로 보내고, 부족하지만 노력하는 엄마들은 아이들과 함께 원하는 것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