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가장 현명한 멘토, 바로 당신 자신
명상을 공부하다 보면 '상위 자아(참나)'라는 단어를 참 많이 듣게 된다. 말하자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나'라는 사람, 이름은 무엇이고 나이는 몇 살이고 어디 살고 직업은 무엇이며 가족은 누구 누구가 있는, 그런 존재는 '에고(ego)'라고 하는데 이와 구분되는 '진정한 나'를 말한다. 에고는 대개 나 아닌 다른 존재와의 상대적인 관계에서 규정되는 반면(ex. 아무개 씨의 자녀, 누구누구의 엄마아빠, 어느 회사의 무슨 직급 등) 참나는 그런 것과 무관하게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나를 말한다.
명상을 하기 전에는 솔직히 이런 말들이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나는 나지 뭔 상위 자아고 참나가 대체 뭔 소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어느날 작정하고 긴 시간 명상에 집중하다가 아주 우연히 그 '참나'의 언저리를 체험하는 경험을 하고 나서 이를 받아들이게 됐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에고의 온갖 감각, 감정, 고민거리, 잡다한 생각들을 모두 뛰어넘는, 무한한 평화뿐이고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나라는 존재가 있었다. 명상계에서는 이것이 우리의 본질적인 모습이며, 우리의 일상적인 '에고'로서의 나는 현실 세계에 미혹돼 있는 일시적인 모습일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24시간 내내 명상 상태로 살 수는 없다. 우리는 소위 말하는 깨달은 자도 아니고 명상을 업으로 하는 이들도 아니며 그저 고민 많고 걱정 많고 늘 감정에 휩쓸려 다니는 인간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씩 책이나 유튜브에서 어느날 갑자기 '깨달음'을 얻고 인생 문제에서 초월했다는 인사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걱정도 고민도 없는, 언제나 진정한 평화 속에서 살아가는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하지만 명상은 어떤 신비체험을 하기 위한 것도, 나를 초탈한 어떤 신적인 존재가 되기 위한 것도 아니다. 다만 세상의 수많은 목소리들로부터 잠시 거리를 두고, 심지어 내가 나에게 끊임없이 잔소리하는 에고로부터도 잠시 거리를 두고 진짜 나와 잠시 만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명상은 종교적인 행동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종교에서는 명상과 비슷한 여러 방법을 통해 각자의 신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비슷한 체험을 말하고 있다. 종교계에서는 신이나 절대자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표현하는 것을, 명상계에서는 '참나'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고 해석하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할때는 '무엇무엇하게 해주세요'가 아닌, '무엇무엇을 하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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