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바른 결정의 기준은 공적인 일을 우선하는 있다
리더의 바른 결정을 우리는 밝음(명)이라고 한다.
논어 안연편이다.
子張 問明, 子曰: "浸潤之讒, 膚受之愬, 不行焉, 可謂明也已矣. 浸潤之讒, 膚受之愬, 不行焉, 可謂遠也已矣."
(자장 문명, 자왈: "침윤지참, 부수지소, 불행언, 가위명야이의. 침윤지참, 부수지소, 불행언, 가위원야이의.")
자장이 밝음에 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물이 스며들듯) 서서히 젖어드는 헐뜯음(참소)과 (직접) 피부에 느껴질 만한 하소연에도 (리더가 그 참소나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그 정사는 밝다고 할 만하다.
(물이 스며들듯) 서서히 젖어드는 헐뜯음(참소)과 (직접) 피부에 느껴질 만한 하소연에도 (리더가 그 참소나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그 리더의 안목이) 원대하다고 할 수 있다.
밝음(명)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외국어를 해석할 때 문맥이 통한다면 자신의 입장에서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한 것 처럼 논어를 리더(군자)가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한 지침서로 본다면 밝음은 리더가 바른 결정으로 조직을 잘 이끌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자장은 공자의 제자로 젊은 나이에 공자의 제자가 되어 다스리는 일(정치)를 하게 되었다.
이런 입장에서 자장이 조직을 잘 이끌어 가기 위해 바른 결정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을 했다.
이것에 대해 공자는 물처럼 서서히 스며드는 헐뜯음과 주변에 나의 감정에 호소하는 하소연을 흔들리지 않고 일을 하면 된다고 한다.
물처럼 서서히 스며드는 헐뜯음이 뭘까?
예전 고사성어에 세 사람이 모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든다는 삼인성호라는 것이 있다.
여러 사람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거나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번 들으면 서서히 세뇌되듯이 그것을 믿게 되는 것이다.
요즘 말로 가스라이팅 같은 것이다.
어떤 조직의 리더라도 일을 하는 과정에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사실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 많은 이야기 중에는 이런 식으로 리더의 판단을 흐리려는 시도가 계속 있다.
이런 시도를 정확히 캐치하고 그 말을 차단하는 것이 리더가 밝은 의사결정을 하는 첫 번째가 될 것이다.
직접 피부에 느껴질 만한 하소연은 뭘까?
바로 친구, 선배, 친척, 가족과 같은 사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에게서 오는 이야기들이다.
그들은 모두 나와 사적인 감정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사적인 감정으로 그들의 말을 더 듣고 실행하고 싶을 수 있다.
사적인 감정으로 연결된 그들이 나에게 이야기할 때 공적인 기준에 따라 명확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두 번째가 될 것이다.
2개의 경우로 나누었지만 결국 의미는 하나다.
리더가 바른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일을 판단하는 기준을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공적인 기준에 따라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사적인 감정의 배제를 이야기하며 마지막에 원대함을 이야기한다.
무엇 때문일까?
눈앞에 있는 사적인 이익보다 장기적으로 조직의 미래를 보는 것이 공적인 기준이기 때문이다.
일을 판단하고 결정할 때 사리분별(예)에 따라 상식적으로 조직의 장기적인 미래만을 생각한다면 언제나 바른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