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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허실 Apr 05. 2024

밥이랑 먹으면 괜찮아

배려하는 말하기

결혼 9년 차. 이제 웬만한 음식이나 반찬은 인터넷에서 슬쩍 찾아본 레시피를 보고 얼추 해내는 정도는 되었다. 중요한 사람을 초대해서 대접할 만큼 그럴듯하게 요리하는 정도는 아니다. 이제 서로의 입맛을 알다 보니 아침밥을 가볍게 챙겨 먹고 싶거나 저녁 술자리 안주가 필요할 때 또는 얼큰한 해장이 필요할 때 어느 정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하는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새로운 요리를 하거나 조리법을 잘 알지만 오랜만에 하는 음식을 만들 때 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서 짜게 될 경우가 있다. 요리 실력 만렙인 아내가 할 때도, 내가 할 때도 종종 이런 일이 발생하는데 그럴 때마다 한 입 먹어보고 서로에게 똑같이 해주는 한마디가 있다.


밥이랑 먹으면 괜찮아
밥이랑 먹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밥이랑 먹으면 간이 딱 맞겠다.
밥이랑 먹으면 맛있겠다.


음식이 간이 맞지 않으면 요리한 사람이 제일 먼저 안다. 이런 말들은 그냥 먹기에는 '짜다'는 말이고 적나라하게 말하면 '맛없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정말 맛있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해주면 음식을 한 이는 음식이 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편해진다.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크고 작은 갈등이 발생한다. 매일 보고 매일 대화를 나누기 때문이다. 대체로 대화가 즐거운 편이지만 늘 즐거울 수만은 없다. 가볍게 시작한 대화가 말이 엉키고 마음이 꼬이면 언쟁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 이럴 때는 상대방의 말을 듣기보다 나의 말에만 집중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런 언쟁의 시작은 늘 사소한 말 한마디였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말들이 오해의 씨앗이 되어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급기야 나의 마음까지 힘들게 하는 경우는 정말 많다. 이런 경우는 대체로 상대방의 마음보다 내 마음을 우선할 때 발생한다. 나를 지키려고 했던 말들이 결과적으로 나를 더 힘들게 하고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대화를 잘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흔히 경청이라고 이야기한다. 경청이란 상대방이 말을 할 때 내가 어떻게 말해야지를 생각하면서 듣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 말을 할 때 표정과 제스처들을 온전하게 듣고 보는 것일 것이다. 이렇게 상대방의 말을 듣게 되면 내 말을 생각하면서 들을 때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 우리가 상대방의 말이 재미없다고 느낄 때는 제대로 듣고 있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화에서 경청만큼 중요한 것이 상대방의 마음을 배려해서 말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 이 둘은 화자도 다르고 쓰는 에너지도 다르지만 어쩌면 같은 방향의 말일 수 있다.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듣고 있으면 말하는 사람의 마음이 잘 느껴지기 때문이다. 첫말만 듣고 툭 던지려던 가벼운 말도 끝말까지 들으면 말 한마디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밥이랑 먹으면 괜찮아'라는 말을 조금 낯간지럽게 풀어보면 '음식이 좀 짜긴 하지만 너랑 함께 먹으면 다 맛있어' , '음식이 좀 짜면 어때? 같이 먹으니까 좋은데 뭘', '밥을 해줘서 고마워'라는 뜻이 아닐까. 나 혼자 상상일 뿐이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즐거운 오해를 매일 하기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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