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잦고 작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진 Nov 10. 2018

첫 직장에서 일한 지 4년이 되었다.

내게는 누군가의 쓴말이 필요했다.


4년 전. 야금야금 브랜드 컨설턴트의 꿈을 키워가던 학생은 에디터라는 이름을 가진 연체동물이 되었다. 패션 뷰티 IT 서비스에서 일한다. 옷을 사랑하지만, 솔직히 말해 패션 에디터를 평생의 업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래서 유연할 수 있었다. 회사의 성장 속도에 맞춰 이리저리 몸을 틀었다. 첫 해는 커뮤니티 성장을 위한 네이티브 콘텐츠, 다음 해는 광고주를 위한 브랜디드 콘텐츠, 그다음 해는 매출을 위한 커머스 콘텐츠를 만들었다. 올해는 팀 관리와 콘텐츠 구좌 운영 그리고 화보 촬영에 집중하는 해다. 4년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은 내 일의 가치와 이유를 찾는 것이다. 갈수록 예민해진다. '나는 왜 이 일을 할까?',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는 걸까?'.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며 일할 때 살아있는 기분을 느꼈고. 지치지 않을 수 있었다.


쉬운 건 아니었다.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지만, 내가 가치를 두고 있는 모(某)와 조직의 모(某)가 일치하지 않으면 근본이 흔들린다. 이따금 고개를 가로젓는 순간을 마주했다. 방향성 없는 결정, 때에 따라 바뀌는 커뮤니케이션, 통일되지 않은 결과물이 등장할 때마다 깊은 호흡이 필요했다. 그럴수록 의미를 움켰다. 스스로 부여한 가치는 이랬다. '자아 형성 시기의 타깃 사용자가 서비스를 통해 다양한 스타일을 접하며, 각자의 스타일을 찾고, 판단력과 자신감을 키우는데 조력하는 것'. 


이런 생각을 나누고 싶을 땐 대화를 시작했다. 옆 자리 동료, 때로는 창업자를 귀찮게 했다. 그나마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조직이라 다행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답을 찾고 동기를 수혈하는 날이 반복되자 답답함이 밀려왔다. 회사가 잘못한 건 아니다. 그저 뭐든 해보고 결정하는, 우리는 스타트업이다. 무엇에든지 린(Lean)하고자 했고, 굳은 정의보다 말랑함으로 각종 상황에 대응했다.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는 린 할 대상이 아니다. 변하지 않는 근본이다. 뼛속까지 새기고 일해도 모자랄 판에 혼자 뜻을 찾으며 일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물론 파고들면 가닥은 잡힐 것이다. '그냥' 이 서비스가 탄생됐다면 이미 무언가에 대체되고 말았을 터. 서비스는 해마다 새로운 기능을 추가했고, 빠른 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서비스는 여전히 정의되지 않았다. 노력은 했다. 시도는 많았지만 맺지 못했을 뿐. 그 사이 '스타일쉐어스러움'은 옅고 넓게 퍼져갔다. 서비스가 오래 살아남으려면 지금이라도 우리를 정의하고 전 사원의 공감을 얻어 모든 창구를 통해 사용자가 느낄 수 있도록 확산시켜야 했다. 진하게,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럴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야 했다.


고민이 깊던 올해 초. 회사는 귀한 자식을 입양했다. 모회사가 되었고, 또 다른 커머스 회사를 인수했다. 말이 자회사지만 배울 것이 많은 곳이다. 커머스 업계에서 그들만의 고유한 가치를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로서 실제 느끼는 부분이다. 쇼핑을 하고 싶으면 이유 막론 그 사이트 먼저 찾는다. 다르다. 미디어 커머스의 독보적인 존재. 기회가 생기기 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자리가 만들어졌고 우리만의 핵심 가치를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지 브랜드 매니저님을 찾아가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어디를 어떻게 파면될까요?" 실제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했다. 브랜딩은 내부에서 잡아야 사용자에게 닿기 까지의 단계가 명확히 구현되기 쉽다. 대화를 통해 힌트는 얻었지만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설계력이 부족했다. 4년 전으로 돌아가 브랜드 컨설턴트가 됐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나의 논리와 경험치를 끌어올리고 싶었다. 


종국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확실히 하려고 이 글을 쓴다. 유연함 속에서도 굳고 곧게 자라고 있는 마음. 브랜드 가치를 설계하고 때에 맞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을 하고 싶다. '우리 서비스만의 차별 점은 무엇일까? 타깃의 마음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까지 에디터로 일하며, 전달력은 쌓였지만 당장 설계의 영역에 발 담그기엔 나도 회사도 준비되지 않은 듯했다. 잡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실은 적임자가 있었다. 브랜딩에 대한 갈급함이 쌓여갈 때마다, 고민을 들어주시던 인턴 시절의 직전 회사 선배. 회사에 필요한 사람 같아 오래전 회사에 소개했고, 삼고초려 끝에 한 달 전 팀에 합류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작은 프로젝트를 맡았다. 신규 브랜드의 가치 설계를 경험하고 있다. 배우고 있다. 피드백을 구할 수 있는 선배가 있어 감사하다. 내게 필요했던 건 누군가의 쓴말이었다. 이제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한 회사에서의 4년. 덕분에 내가 무엇에 목말랐는지 또렷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떠나가는 사람에게는 이름을 선물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