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으로 끝나지 않는 네버엔딩 취업 스토리
Illustration test라는 제목의 이메일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너를 포함한 두 명으로 좁혀졌으나 아직 결정을 못했다. 네 작업도 좋았고 이야기도 즐거웠고, 사람으로서도 좋았다. 하지만 일러스트 스킬을 좀 더 보고 싶어서 작은 테스트를 준비했으니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시간을 너무 많이 들이지 말라는 말과 함께 준 테스트는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다. 답장으로는 내일 일어나서 한다고 해놓고 목요일 저녁 내내 머리를 쥐어짰다. 일러스트는 제대로 해본 적이 없고 늘 어려웠던 분야라 진땀을 뺐다.
결과물뿐만 아니라 과정도 함께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아 분석부터 스케치, 레퍼런스까지 정리해서 함께 보냈다.
흑역사지만 이 또한 과정이므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함께 올려본다.
금요일 오후 또 한 번 내 손을 떠나간 공.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고, 안되더라도 여기까지 온 것에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리와 마음은 다른 법. 기다리는 시간이 하루하루 갈수록 자신감은 낮아졌고, 매일 밤 통장 잔고 걱정을 하며 농장에 가서 알바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며 잠들었다.
그다음 주 수요일, 드디어 답장이 왔다. 긴 메일에서 요지를 찾으려던 그 짧은 순간이 얼마나 심장 떨리던지!
나를 택했다는 문장을 읽고 감격스러웠다. 피 말리던 보름 동안의 기다림과 덴마크로 온 후 불확실과 걱정으로 가득하던 두 달이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이 메일이 감격스러웠던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나를 왜 택했는지, 그리고 어떤 점들이 걱정스러운지를 솔직하게 얘기해줬다는 점.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그래도 누군가에는 도움이 될까 싶어 공유한다.
짧게 정리하자면,
좋게 봤던 점
Dedication: 지원서와 면접에서 보여줬던 인포그래픽/데이터 시각화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좋게 봤다.
Eye-of-design: 색, 구성, 타이포 등에 감이 있는 것 같다.
Content/concept: 직관에 의한 거이긴 하지만 왠지 잘할 것 같다.
Professional: 지원 기간 동안 주고받았던 의사소통이 만족스러웠다. 열심히 일할 것 같다.
부족한 점, 걱정되는 점
Illustration: 일러스트레이션은 좀 부족한 것 같다. 정말 중요한 자질이니 시간 내에 더 나아지길 바란다.
Experience: 경험이 없는 게 걱정되지만 빨리 배울 수 있길 바란다.
Language: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덴마크어이기에 덴마크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았지만, 근미래에 덴마크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합격은 했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구나 싶었다.
수습기간 3개월이 주어졌다.
일러스트도 부족하고, 경험도 부족하고, 언어도 안되지만 나를 선택한 데에는 지원 기간에 보여줬던 열정이 한 몫하지 않았나 싶다. 사장의 입장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나라도 실력은 좀 부족하지만 내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을 뽑을 것 같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나와 함께 최종 단계까지 남은 사람은 경험이 더 많은 사람이었다. 나보다 일러스트도 더 잘했을 테고 어쩌면 덴마크인이었을지도 모른다. 목요일에 보낸 테스트를 그다음 주 화요일에 제출한 실력 있는 디자이너와, 바로 다음날 열심히 만들어서 보낸 부족한 디자이너 사이에 사장님들은 가능성만 보고 후자를 택했다. 그 가능성이 헛된 믿음이 아니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수습기간 3개월이 주어졌다. 행복해서 눈물까지 났던 면접은 정말 시작에 불과했다.
(타이틀 사진: 2015년 3월 19일 루이지애나에서 끝없는 바다를 바라보던 한 아주머니의 뒷모습. 이때의 심경을 대변하는 사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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