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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솔 Oct 27. 2023

문득 스트레스 속에서 헤엄치다가 깨달았다.

잠깐 이거 내가 그렇게 바라던 삶이었잖아. 토론토에서 뮤비촬영 준비 중.

10월 말이 되어 간다. 4월 초였나? 그때 같은 반 동기가 뮤지션을 한 명 추천해 줬다. Michael이라는 포르투갈계 캐나다인 친구였다. 나랑 동갑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달라고 해서 같은 반 프랑스 동기 Marion과 작업하기로 했다. 그 친구가 감독하기로 했었는데 어찌어찌해서 내가 감독을 맞게 되었고 그 친구는 프로듀싱을 맡기로 했었다. 하지만 프로젝트는 흐지부지되고 그냥 진행이 안되나 보다 하다가 뮤지션 Michael 이 다시 연락이 왔다. 프로듀서 Marion은 이 친구가 신뢰가 없다고 하지 말자고 했는데 내가 그래도 영화학교가 아니고 외부에서 돈 받고 하는 거니깐 좋은 커리어 될 거라고 하고 꼬셔서 진행했다.

그때부터였다.

이 일은 스트레스 더미를 끌어올리는 프로젝트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첫째, 무슨 이유인지 프로듀서인 Marion이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프로듀서라는 게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영화분야에서는 쉽게 말하면 감독이 담당하지 않는 나머지 모든 영역이다. 다시 말하면 창작과 관련 없는 캐스팅, 식사, 교통비, 렌트, 장비대여, 등등 모든 돈이 지출되는 모든 분야를 담당한다. 그런데 연락이 되질 않으니.. 본인은 일이 있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 본인이 감독을 하고 싶어서 그러지 않았나 싶다. 근데 어려운 게, 아침에 문자와 전화를 하면 저녁에도 답장을 안주는 경우가 있어서, 스튜디오 관련 진행을 하는데, 숨이 턱턱 막힐 때가 있었다.

둘째, 클라이언트 본인이 질문과 의심과 걱정이 너무 많다.

질문에는 친절하게 답변할 수 있는데, 의심과 걱정은 정도가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부분이 한계가 있어서 어렵다.

셋째, 클라이언트(뮤지션)와 프로듀서 사이가 너무 나빠졌다.

관심받기 좋아하고, 질문 많은 클라이언트가 새침한 프랑스 20살 프로듀서를 만나니 난리가 아니다. 클라이언트가 최근에 참다 참다 문자폭탄을 프로듀서 Marion에게 날렸다. 스튜디오 하루 대여에 200만 원 가까운 돈을 들였는데 왜 이런 것들을 사용할 수 없냐, 뭐 이런 식이 었다. Marion이 캡처 화면을 줄줄이 보내는데 같은 팀이지만 솔직히 Marion이 일을 할 때 아쉬운 부분도 있다고 생각이 들긴 했다.

넷째, 하루에 촬영할 분량이 너무 많다.

이 뮤지션 친구 욕심이 끊도 없다. 워원하는 게 만만치 않다.  

다섯째, 연기자가 13명이다.

포트폴리오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연기자들에게 페이를 지급하지 않는데, 연기자가 촬영장에 안 오면 끝이다. 내 심장은 촬영 끝날 때까지 쫄깃해질 예정이다.

여섯째, 제작진이 줄줄이 바뀐다.

감독과 프로듀서는 쥐꼬리만 한 금액을 받지만 제자직은 전혀 못 받는다. 이 부분은 노조로 들어가면 일정 조건을 보장받지만 노조를 가입하기 전까지는 정말 돈 받고 영화일하는 것은 (특히 감독) 하늘의 별따기 같다. 현재 18명 제작진 중에서 주요 4명이 바뀌었다.


이틀 전이었다. 클라이언트랑 통화를 하는데 프로듀서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더라. 전화를 끝을 때쯤 그 친구가

“Thank you"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 영어로 다국적 크루들과 영화일 하는 게 꿈이었는데 잠깐 꿈을 이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과 40분 동안 업계관련해서 내가 대화를 한 거야?’

‘잠깐 내가 이야기를 끌어갔잖아. 그렇게 영어를 잘했나? 영화를 잘하나? 아니면 그냥 애가 잘 들어주는 앤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순간 며칠 동안 촬영관련한 불확실성(캐스팅, 소품, 촬영장비, 편집방향)으로 심장이 쿵쾅 거렸었는데 마음이 훅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또 이 생각도 들었다. 꿈을 이뤘다고 해서 스트레스는 사라지지 않는구나. 하고 피식 또 웃음이 나왔다. 내 상황이 웃겨서 피식, 그리고 웃는다고 스트레스가 다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또 피식.

왠지 피식피식 한 날이다. 이번 주 토요일 촬영인데, 하려고 하는 것들 그리고 창작과 관련한 부분에서 현장에서 뽑아낼 수 있는 것은 신나게 뽑아봐야지. 그러고 보면 나 진짜 이 일 좋아하는 거 같다.

 

오늘이 목요일, 토요일 하루 촬영하니 토요일 밤 내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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