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류동천 길을 따라서
누가 어디 사냐고 물었을 때, 나는 둘 중 하나로 답변을 한다. 어느 답변이 될지는 질문자에 따라 달라진다. 그 사람이 평범해 보인다면 경복궁역 근처에 산다는 대답을 한다. 만약 그게 아니라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 보이면, 서촌에 산다고 답변을 해준다. 나의 두 번째 대답인 '서촌', 여기가 우리 동네 산책의 두 번째로 소개할 지역이자,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다.
종로구에서는 세종마을이라는 단어를 밀고 있지만 주로 쓰는 단어는 서촌이라는 단어 일 것이다. 실제로 세종마을이라는 단어는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시작되는 먹자골목인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라는 간판 이외에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북촌을 안다면 비교적 쉽게 이해가 되는 서촌이라는 지명은 이곳저곳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내가 이곳에 이사 오고 나서 동네를 알고 싶어서 봤던 위의 책의 이름도 그렇고.
이사오자마자 동네가 궁금해 저 책을 포함해 성곽을 거닐며 역사를 읽다와 오래된 서울을 읽었었다.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 조선시대 중인들이 살고 일제강점기 때는 이완용과 윤덕영 같은 친일파들이 살던 지역이라는 이야기를 포함해서, 이 있었지만 가장 흥미를 끈 건 옥류동천에 대한 것이었다.
청계천 입구에 있는 소라기둥을 보면 여기서 청계천이 시작된, 생명의 샘이 있는 듯한 느낌을 풍기는데 사실이 천이 서울 도심 한가운데 있는 샘에서 발원할 리가 없다. 실제로는 경복궁 좌우 측에 있는 여러 천들이 만나서 청계천이 된다. 다만 지금의 서울을 보는 우리로써는 건물과 도로 밑에 깔린 그 천들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천 중 하나가 서촌을 가로지르는 옥류동천이다.
그래도 그 흔적이 아예 없지는 않다. 내가 서촌을 구경시켜 줄 때 매번 시작하는 길로 쓰는 옥류동길, 그 길이 옥류동천을 복개해서 만든 길이고 그 때문에 길이 직선이 아니라 예전의 물길을 그대로 꼬불꼬불한 모습으로 되어 있다.
경복궁역에서 옥류동천 길을 따라 올라가는 영상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서촌에서 유명한 가게들이 몰려있다. 앞에서 말한 먹자골목 입구부터, 토속촌 삼계탕, 이상의 집, 에그타르트 맛집 통인스윗, 아이유 꽃갈피 표지 사진을 찍은 대오서점, 영화루, 통인시장, 지금은 수리 중인 남도분식, 박노수 미술관까지. 꼬불꼬불한 골목길의 맛과 음식의 맛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길이 옥류동천 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핫한 동네들(?)이 그렇듯이 여기도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곳을 정하게 된 큰 이유 중 하나였던 스페인 음식점인 바르셀로나는 하루아침에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곤 얼마 안가 같은 자리에 다른 스페인 음식점이 들어왔다. 이름만 바뀐 채로.
주말만 되면 사람들로 붐비는 관광지가 되다 보니 맛집, 괜찮은 카페는 많은데 반대로 적당한 가격에 매일 같이 먹을 만한 식당은 많지 않다. 아무래도 임대료가 오르다 보니 그런 장소들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당장 서촌방향에 나온 식당들만 봐도 1/3 정도는 벌써 사라졌고 4년 전에 다큐 3일에 나온 장소들도 생각보다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놀러 오기는 좋지만 살기에는 좀 애매한 면이 없지 않다.
사실 이쪽 길 말고도 서촌에는 갤러리가 많은 통의동, 청와대 앞이라 치안 좋고 1인 시위를 많이 볼 수 있는 효자동까지 이곳저곳 구경할 곳이 많은 동네다. 1년 가까이 살았는데 요즘도 새로운 골목을 발견하고 그곳에 숨어 있는 보석 장소들을 발견하는 걸 봐선 보물 찾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투머치 토커처럼 말이 길었는데 마지막으로 제가 LA에 있었을 때 이야기 하나를 덧붙이고 끝을 내겠다. 서촌으로 놀러 오신다면 밤보다 낮에 놀러 오시길 추천드린다. 8시, 9시면 닫는 가게가 많은 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보기엔 밤보다 낮이 훨씬 좋다. 그리고 옥류동천 길을 따라 구경하신다면 경복궁역 3번 출구 앞에서 마을버스 9번을 타고 종점에서 하차 후, 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구경하길 추천드린다.
그럼 이 글이 서촌에 놀러 오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