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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Apr 03. 2023

봄날의 강화도 가족 여행

Life in Korea

캐나다에서 부러운 사람들이 있었다. 단란하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온 가족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나온 가족들이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종종 사러 온다. 아이스크림을 기계에서 뽑아 주면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손에는 하나씩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과 그들을 반겨주는 초승달. 이러한 모습을 나는 뒤에서 지켜볼 때면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생각났다.


그렇게 돌아온 한국. 집 앞에 개나리가 폈다. 개나리가 핀다는 것은 곧 벚꽃이 핀다는 신호였다. 난 벚꽃 필 때 즈음 캐나다로 떠났다. 그래서 한동안 벚꽃의 꽃말은 내게 헤어짐, 유사어는 잠시만 안녕이었다. 안녕을 고하기 전, 우린 가족 여행을 가기로 했다. 부모님도 하루 연차를 내셨다. 내가 갑자기 온 터라 긴 연차를 사용할 수 없었다. 가까운 강화도 여행을 가기로 했다. 


2년 전, 내가 캐나다로 오기 전 우린 오랜만에 가족 여행을 떠났다. 거제도와 경주 여행. 나와 가장 오래된 친구가 살고 있는 거제도로 내려가는 길에서 아빠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었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던 배경들을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결정을 했을 당시 우리에게 왜 설명을 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지금 돌이켜보니 이해가 가는 선택이셨고, 지금은 그렇게 선택해 주셔서 감사한 부분도 있었다. 아마 그때 들었으면,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이해도 시간이 필요하다.


강화도 여행. 우리 가족들도 나와 같이 큰 계획을 세우고 여행을 떠나는 편이 아니었다. 도로 위에서 점심 메뉴를 골랐다. 강된장과 제육 그리고 생선구이를 파는 곳이었다. 대화 주제는 동생의 결혼이었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올해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친구와 결혼을 할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뜬금없는 타이밍에 나온 선언이라 다들 놀랬다.


제육이 맛있었다


우린 카페로 이동했다. 친구가 알려준 카페였다. 한옥 분위기를 지닌 카페였다. 서양의 커피부터 동양의 다양한 차 종류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동서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동생은 캐러멜 마끼아또를 주문했고, 아빠는 쌍화차를 주문했다. 자리에 앉아 아빠는 새로운 풋살화가 필요하다며 모바일로 주문하는 방법을 동생에게 물었다. 동생은 틱틱거리며 지난번에 알려주지 않았냐고 반문했고, 나와 엄마는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빠는 선택한 풋살화를 나와 동생에게 보여주었다. 옆에서 본 엄마는 흰색은 때가 잘 탄다며 핀잔을 늘어놨다. 결국 아빠의 최종 선택은 흰색 풋살화였다. 동생은 주문하는 방법을 몇 번째 가르쳐주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구시렁거렸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입 마시며 창 밖을 바라봤다. 문득 이런 모습을 보니 캐나다 가족들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카페


카페에서 나와 강화도 드라이브를 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절에 갔다. 이름은 전등사. 입장료가 있는 사찰이었다. 우린 그곳을 살살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가벼운 이야기들. 큰 에너지를 쓰지 않고 듣고, 말하는 것이 얼마만인지 새삼 느껴졌다. 평일이라 사람도 없었고, 가볍게 걷기 좋은 곳이었다.


우린 밴치에 잠시 앉았다. 도시의 소음들로부터 차단되어 있는 곳.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오고 간다. 이따금 바람 소리만 들려온다. 캐나다에서 이런 고요를 혼자 즐겼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아주 오랜만에 평화로운 정적만이 남았다.


밴치 앞엔 사람들이 쌓아 올린 돌탑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돌을 쌓으며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각자 간절히 원하는 소원들이 있었겠지. 사람은 누구나 각각 다양한 문제와 고민들을 안고 있다. 나도 이쁜 돌을 골라 몇 개 쌓아 올릴까 했다. 하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쌓아올린 돌탑


우린 출출해졌다. 강화도엔 솥뚜껑에 구워주는 삼겹살집이 있다. 삼겹살뿐만 아니라 다양한 야채와 해산물들도 같이 구워주는 곳이었다. 소주와 맥주를 시켰다. 고기도 맛있었다. 캐나다에서 다양한 고기를 먹었지만 역시 한국의 삼겹살을 이길만한 고기는 아직 찾지 못했다. 술이 한 잔 들어간다. 황혼은 구름과 함께 지고 있었다. 대화의 주제는 동생의 결혼과 나의 거취.


부모님은 내가 어디에 살든 응원해 주신다고 하셨다. 편안하게 생각하라고. 캐나다에서 행복하게 있는 모습도 좋지만, 한국에 돌아와 같이 사는 것도 좋다고 하셨다. 아빠는 나에게 한 마디 하셨다. 너는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해외살이 하는 나에게 가장 든든한 말이었다. 봄날의 따뜻함이 깃든 기분이 나를 향해 불어왔다.


솥뚜껑 삼겹살


우린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로또 명당이 보였다. 우린 차에서 내려 로또를 하나씩 샀다. 어렸을 적 로또를 사는 엄마에게 나는 번호만 말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제 각자 하나씩 사도 되는 나이가 되었다. 우린 이미 법적으로 보호받는 나이를 벗어났고, 부모님과 술을 마시며 로또를 살 수 있었다. 부모님은 갓난아이였던 우리를 안았을 때, 이런 장면들을 상상이나 하셨을까.


로또가 되면 나보고 한국에 들어오라는 부모님. 나는 캐나다가 아닌 세계를 여행을 할 거라고 말했고, 아빠도 동행한다고 하셨다. 나는 혼자 여행하겠다고 선을 그었고, 엄마와 동생은 웃었다. 이렇게 웃으며 봄날의 강화도 가족 여행은 마무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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