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 Korea
지난 몇 년간 나의 겨울은 비로 가득했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캐나다의 겨울이다. 뜨겁고 아름다웠던 여름날이 지나고 겨울의 초입으로 들어가던 9월의 비 내리는 날, 아직도 잊지 못하는 아주머니의 한 마디가 있다.
"오늘부터 약 8개월 동안 비가 올 거야!"
사실이었다. 어느 달은 이틀을 제외하고 모든 날이 비였다. 그만큼 캐나다 겨울비는 성실했다. 개인적인 힘든 일이 나에게 몰아치고, 사무치는 외로움이 나를 잠식할 땐 하루종일 내리는 비가 얄미웠다. 나의 고독을 짙게 만들었다. 비는 검은 구름을 불러와 나를 눌렀다. 내 절망을 비웃듯 짙고 무거운 풍경이 계속되었다. 비가 오는 거리를 혼자 걸었다. 축축하면서 추웠다. 비가 싫었다.
하지만 이따금 떠오르는 해를 보면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하늘은 내게 "언제나 먹구름인 날은 없어. 해 뜨는 날이 분명히 올 거야"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비 오는 날 친구집에서 마시는 맥주, 위스키는 낭만이었다. 낮아진 하늘이 만들어낸 분위기가 있다. 느린 박자의 노래를 틀고 추는 춤들. 인종과 국적은 달라도 그 속에서 느끼는 기분은 같았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된 지금 비가 올 때면 그 밤들이 이따금 생각난다.
한국은 반대였다. 여름으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늘 물로 가득했다. 수직적으로 내리는 비와 수평적으로 뿌려져 있는 습기는 나를 끈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늘 화가 나있는 사람들. 조금만 진행되는 일이 틀어지면 인내심의 기준은 심하게 낮아져 짜증들을 쉽게 내기 시작했다. 비 오는 여름날 약간만 걸어도 어느새 등줄기엔 땀으로 가득 찼다. 도시 여름의 물은 분노를 부추겼다.
하지만 사회적 자아가 개인적인 존재로 변하는 밤에 마시는 맥주는 그 어느 맥주보다 시원했다. 이런 낙으로 보냈던 나의 한국에서의 여름.
맞다. 비를 좋아했다. 뜨거운 여름날을 식혀주듯 여름날에 한 껏 들뜬 우리를 진정시키는 비. 비 오는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는 몽글했고, 친구들과 파전에 막걸리 마시는 밤은 완벽했다. 뜨거운 공기 속에 내리는 비는 여름을 더 여름답게 했다. 며칠을 퍼붓던 비가 멈추고 다음 날에 뜨는 석양은 해외에서 볼 수 있는 석양과 비교해도 절대 밀리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닌 채 저버린다. 그 석양은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했다.
무엇인가 좋아할 땐 언제나 여백을 남겨놔야 한다. 무언가를 온전히 좋아하다, 좋아하는 이유가 사라졌을 때 그 상실감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여백을 남겨둬야 싫어졌을 때 다시 좋아진 이유도 품을 수 있겠지. 반대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몇 해동안 싫어졌던 비. 한국에 오니 좋아하는 이유가 다시 떠올랐다.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비는 싫지만, 창문에 부딪혀 힘 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책 읽는 것 행위는 나의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