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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Life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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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Jul 23. 2023

15년 우정, 시간의 흐름 속에 잠겼다.

Life in Korea

캐나다에서 귀국했다. 그동안 못 본 친구들을 만났다. 대부분 친구들은 직장인이 되었다. 아직 취업을 못하거나 안 하는 친구도 분명 있었지만 대부분이 취업을 한 상태였다. 2년 전에 캐나다를 가기 전과 상황이 많이 변해있었다. 2년 전에 신입사원이었던 친구들은 어느 정도 회사에서 자리를 잡았고,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들은 연봉도 많이 올랐다고 했다.


"내년에 승진하면 연봉 7000은 될 것 같다."


취업을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친구였다. 그것을 알기에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그 친구의 노력을 옆에서 바로 보진 않았지만 한국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것은 알고 있었다. 이 정도 나이가 되니 자연스럽게 나온 주제 하나, 결혼


"나는 결혼은 언젠가 할 수 있지만 아이는 안 가지려고."


7000 친구가 말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이유를 물었다.


"만약 아이가 커서 유학 같은 어떠한 요구를 했을 때 자신이 능력이 부족하면 슬프지 않냐고. 애초에 그냥 낳지 말아야지."


"나라면 그렇지 않을 것 같아. 너의 의견은 알겠지만 나는 언젠가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갖고 싶어"라고 나는 말했다.


다른 친구는 옆에서 100분 토론의 MC라도 되는 마냥 우리의 의견을 반복적으로 말하거나 정리를 했다. 7000 친구는 아이를 낳는 것을 주식에 비유를 했다. 나는 아이 낳는 것을 주식에 비유하는 것은 비약이 심하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린 약간의 목소리가 커졌다. 나의 말을 듣던 친구는 너의 말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며 자신의 말이 더 논리적이라고 했다.


"나는 논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고, 내 가치관을 말하는 거야.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 친구는 내게 정색을 하며 말했다.

"너 뭐 되냐? 돈 많아?"

"어?"


논리를 중요시하던 친구의 입에서 나온 질문이 결국 너 뭐 되냐? 너 돈 많아?라는 식의 질문이라니. 그 친구는 근래 돈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래서 나온 질문이었을까. 아쉬웠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좋지 않은 내 상황을 뻔히 아는 친구가 저 질문을 했다는 것이다. 가장 날카로운 칼이 무엇이지 알고 있었고, 그 칼로 나를 찔렀다.


"내가 지금 낳는다는 게 아니잖아. 오늘 했던 말 중 당장 낳는다고 한 적도 없고. 그래, 맞아. 나 지금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이런 생각 가지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냐?"


그 친구는 침묵했다. 15년 우정은 변해버린 환경 앞에서 무효였다. 그것은 아무런 힘이 없었다. MC 역할을 하던 친구는 어색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자신의 역할을 하듯 상황을 정리했다. 그리고 본인의 의견을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어떠한 말에 귀를 기울 수 없었다.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다른 주제로 넘어갔고, 그냥 웃었다. 그러다 각자 개인적인 목표를 말했다. 그 친구는 관심 없을 때 나오는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내 이야기를 들었다. 15년을 알고 지낸 만큼 그 친구가 어떤 표정을 지을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술기운인지 몰라도 내 웃음은 꽤나 자연스러웠다. 막차가 끊겨 택시에 몸을 실었다.



택시를 타면서 곰곰이 오늘 대화를 복기했다. 떠오르는 생각 하나. 사람은 제각기 다른 속도로 성장하고, 나아가는 방향도 다르다는 것. 시간의 흐름에 따라 피할 수 없는 위화감이 생긴 것뿐이다. 조금은 슬펐지만 사실이었다. 우리가 나누던 새하얀 우정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스쳤다.


이십 대 초반, 그 친구와 나는 매주 주말에 술을 마시던 친구였다. 단 돈 3만 원에 소주를 마시며 웃었던 우리. 현재의 빛이 너무 강렬하여 과거의 빛들은 천천히 사라지고 옅어졌다. 그 아름답던 추억이 세월의 흐름 속에 잠겨버렸다.


그 친구의 미지막 말이 떠올랐다.


"나는 해외에서 살아 본 적도 없고, 한국에만 있어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어서 그래. 너희들 생각이 듣고 싶어."


이 말이 그 친구의 진심인지 이젠 관심 없다. 변해버린 환경만큼 가치관이 달라지니 자연스레 거리도 생긴 것이다. 아마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우리네 인생에는 어떤 언어로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이 일이 색채 없는 일이 되기 위해서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인간관계는 바람과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지나가는 바람을 잡을 수 없듯이 지나가는 인연을 잡을 수 없다. 그저 취해야 할 자세는 바람을 타고 떠나가는 인연을 고이 보내주는 것. 그리고 고개를 돌려 새로운 인연이 바람을 타고 내게 오면 그 바람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을 준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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