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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Life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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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Jul 26. 2023

이사, 달리기 그리고 노부부

Life in Korea

이사를 했다. 나의 학창 시절 추억이 깃든 동네로.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비슷한 동네에 있었다. 이곳엔 나무와 산책길이 많다. 근처엔 인천 대공원이 있다. 캐나다에서 달리기라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사람들이 그렇게 뛰어다니길래 따라 뛰어봤다. 생각보다 느낌이 좋아 취미로 만들었다. 인천대공원은 내게 그 취미를 즐기기엔 최적의 공간이었다. 중고등학교 졸업 사진의 배경인 인천대공원. 여러 추억이 깃든 동네이다.


인천대공원까지 걸어가며 몸을 가볍게 풀어준다. 거북이가 된 목을 쭈욱 당겨 좌우로 돌린다. 어느 정도 시원해지면 천천히 밑으로 내려온다. 어깨, 허리 무릎 발목까지. 걸으면서 모든 게 진행된다. 준비 운동의 중요성은 10년 전에 십자 인대 수술을 하며 깨달았기에 최대한 성심성의껏 진행했다.


인천 대공원에 도착하자마자 뛰기 시작한다. 어제 마신 맥주 때문인지 습기 가득한 여름이라 그런지 몸이 유독 무겁다. 그러나 모두 틀렸다. 내 몸이 무거운 이유는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게을리한 지난날의 나 때문이다. 몸은 무겁지만 달려야 했다. 가벼워진 몸이라는 목적지로 가기 위해.


일정한 호흡에 집중하다 생각에 잠긴다. 잠깐이지만 정신적으로 어딘가에 다녀온다. 과거를 다녀오기도, 미래를 가기도 한다. 예전과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까 고민을 하다 이내 고개를 젓고 다리의 속도를 빠르게 올린다. 창피한 과거가 떠오른다. 그때 내뱉은 말과 했던 행동이 몰려와 내 등을 밀어준다. 창피한 과거를 떠올리는 일은 달리기 속도를 올려주는 최고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달리다 멈추고 걷는다. 달리기는 달릴 때만 달리기이다. 호흡을 하며 양쪽으로 뻗은 나무들 아래를 걷는다. 어제 내린 비 때문인지 선선하다. 그러다 한 모습에 내 시선과 다리는 멈췄다. 어느 노부부였다. 그들은 방금 막 등산을 막친 것으로 보였다.



등산 후 내려와 밴치에 앉은 노부부. 나란히 앉더니 등을 보인 후 서로 기댄다. 호흡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노부부는 서로 바라보지는 않았지만, 등을 기댄 모습은 왠지 안정감이 깃들어있다. 신뢰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세월 앞에 바랜 사랑의 모습이긴 했지만 그 농도가 짙어 보였다. 은은하고 서로가 필요한 사랑이었다.


험난한 세상을 한평생 버틴 노부부의 등은 굽어있었다. 한 시대를 버티며 살아간 노부부. 우리 시절이 겪는 어려움과는 다른 십자가를 짊어지며 살아오셨을 것이다. 등을 기댄 노부부를 보니 내 삶이 겸허해졌다. 앞에 살랑살랑 힘차게 걸어가는 커플이 있다. 그들을 바라보는 노부부의 눈빛은 '참 아름다운 한 때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문득 등을 맞댄 노부부 사랑의 시작이 궁금해졌다. 어떠한 삶을 살았기에 서로에게 등을 내줄 수 있게 되었는지. 서로에게도 모든 것을 쥐어주던 시절이 존재했는지. 낭랑하게 걸어가는 커플처럼 자연스럽게 뛸 수 있었던 몸을 가진 그들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멀리서만 지켜보다 다시 뛰기 시작했다. 현재 모습에는 어마어마한 세월이 덮여있었다. 노부부를 보니 어쩌면 사랑은 어깨를 내어주는 것보다 서로의 등을 기대는 것일지도 모른다.


노부부의 모습은 내게 사랑의 옛 서적처럼 다가왔다. 예습을 하는 학생처럼 그 서적을 훑었다. 훗날 이 예습이 실전에서 얼마나 효과를 볼지는 알 수 없다. 그냥 달리는 수밖에. 나는 다시 내 옛 추억이 깃든 곳으로 이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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