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영어 학원 강사 이야기
시간이 먼 하늘의 비행기처럼 지나간다. 벌써 2학기 중간고사이다. 하지만 더욱 힘들 게 하는 건 각 학교들의 시험 일정이다. 어떤 학교는 추석 전, 다른 학교는 추석 다음 주, 또 다른 학교는 11월 초에 중간고사를 치른다. 아이들 마다 맞는 시간표를 정해주는 것도 벅차다. 어느새 숙제 검사 도장은 9월이 며칠 남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인생 첫 시험을 보는 중등 1학년 아이들. 시험의 중요성이나 간절함이 다른 학년에 비해 덜 하다. 시험을 잘 봐야겠다고 준비하는 아이들의 수는 다른 학년에 비해 적다. 사춘기가 제대로 온 중등 2학년 학원 시스템에 대한 이해와 학교 시험에 익숙해져 능숙하게 잘 따른다. 하지만 말 안 듣는 아이들은 끝까지 안 듣는다. 숙제도 거의 해오지 않고, 학원에 나오기만 해도 다행인 학생들이 많다. 사춘기가 어느 정도 지나간 중등 3학년은 대화가 통한다. 몇 개월 후면 고등학생이 된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긴장감을 주는 듯했다.
중등 고등 동시에 내신 준비 기간이 되었다. 중등은 내용 확인과 숙제 검사 그리고 틀린 것에 대한 설명에 초점을 맞춘다면 고등부 내신은 영어 강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고등 내신 준비 수업부터는 다른 게임이 시작된다.
고등부 영어 강사는 지문 속 내용을 응결시켜 놓은 뒤 하나씩 풀어서 학생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문장 구조, 단어의 뜻과 이 글이 하고 싶은 주제가 무엇인지 정리까지. 끝이 보이지 않는 내신 범위 속 어디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는 학생에게 명확한 해답 하나씩 쥐어줘야 한다.
고등부는 이러한 이해뿐만 아니라 요구하는 자료까지 만들어줘야 한다. 학부모 상담은 덤이다. 학원에 출근하는 순간부터 끝까지 내 신경은 호된 시련에 처한다.
모든 강의가 끝난 뒤 남은 빈 교실에 혼자 앉아 있다. 낮엔 안 들리던 백색 소음에 귀를 기울인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학생이 하원하면 에어컨과 백색 소음, 불을 다 끈다. 역시 정적은 한바탕 소음이 가라앉고 난 다음에 깊고 고요하다. 한낮의 소란은 밤의 고요함에 앞에 힘을 잃었다.
끝이 아니다. 다음 날 수업 준비를 해야 한다. 필요한 자료를 복사하고, 내용을 훑는다. 설명을 위한 방향을 잡아 놓고, 퇴근을 한다. 집으로 가는 길, 사회적 자아가 서서히 들어가면서 개인적 자아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도착하마자 날 반기는 건 배고픔이다. 샤워를 하고, 밥을 차린다. 곁들인 맥주 한 잔으로 시련을 씻겨낸다. 언제나 기다렸던 행복은 오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갑자기 찾아온다. 그리고 내일 수업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