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루카 Nov 19. 2022

Can I have an iced Americano?

01화



“Um,,,, Can I have an iced Americano?”



떨리는 순간이었다.

겉보기에는 완벽히 내 스타일인 카페가 눈앞에 있었다.

게다가 날씨도 좋았다.


테라스에서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기도 했고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거나,

데리고 온 강아지와 눈을 맞추고 있기도 했다.


“Sure! I can make an iced Americano.”

금발의 바리스타는 발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다행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있다고 한다!

아니, 정확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I can’이라는 희망찬 단어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왠지 모를 불안감을 선사했지만, 모른 척했다.

곧 한국에서와 같은 시원한 ‘아아’를 마시게 될 테니까.      


음료를 기다리며 바라봤던 영국의 하늘은 맑기만 했다.


영국의 궂은 날씨에 대한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


영국의 한 작은 도시에서 며칠 지내본 결과,

비가 많이 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비가 오지 않는 날이 되면 공기는 굉장히 건조해지고 햇살은 맑고 투명해진다.




날씨에 대한 생각을 하던 틈에 나의 커피는 완성되었고, 금발의 바리스타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커피를 내게 가져다주었다.


맞다.  

그것은 확실히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맞았다.

검은 아메리카노 안에 얼음이 몇 개 들어있었다!


30년을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는 밍밍한 '아아'.

네 개인지 다섯 개인지,

얼음이 총 몇 개가 들었는지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듯한 그런 '아아'.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신성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대한 모독으로 화가 나기보다는 자꾸 웃음이 났다.



밍밍한 커피를 건네주며 내게 좋은 하루를 보내라는

그 발랄한 바리스타 때문이었을까.

노인도 아이도, 심지어 강아지도 도란도란 함께 있는 테라스가 마음에 들어서였을까.

머나먼 나라에 와서도 역시나 아아를 찾는 스스로가 참 민망해서였을까.



지금도 나는 종종 그날의 분위기를 떠올리고는

혼자 웃는다.


사실,

웃지 않으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치열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중이니까.


근데 또, 그냥 한 번 실없이 웃으면 좀 어떤 가.


기껏 기다렸다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밍밍하다고 짜증 내기보다, 커피 하나 내 마음대로 마실 수 없다고 징징거리기보다,


그래도 얼음 몇 개 동동 띄워 건네 준 바리스타에게 고맙다고 나도 눈인사 한번 건네고

어느새 곁에 와서 애교를 부리고 있는 강아지도 한번 쓰다듬어 주면서


그렇게 하루의 시작,

나도 한 번 발랄하게 맞이 해보면 좀 어떤 가.


그저 운 좋게 비가 오지 않음을 다행스러워하면서


밍밍한 커피를 마시더라도,

나의 하루는 또렷하게 살아내면 되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