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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루카 Nov 26. 2022

After you, Sir.

02화




“After you, Sir.”





누가 보더라도 나보다는 내 앞에 서 있던 그 백발의 신사분께서 먼저 통과하는 게 맞는 순서처럼 보였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Sir’이라니?



충분히 널찍한 통로였음에도, 굳이 문 한쪽 모퉁이에 바짝 기대어 공간을 열어주고 머뭇거리고 있던 내게 먼저 지나가라는 손짓을 하던 그 얼굴에는, 나로서는 쉽게 가질 수 없는 세월의 지혜들이 곱게 주름져 있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아침 식사로 먹을 간단한 빵을 몇 개 사 들고 방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보다 먼저 와있던 젊은이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게 되었고, 문이 열렸다.


아니나 다를까,

어색한 공기를 뚫고 내 귀에 들어온 건 또다시 그 문장.


After you!


이번만큼은 나도 한번 여유롭게 배려해보고자 지지 않고  배려를 맞받아 쳤고,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결국 문은 혼자 닫혔다.


기다리는 사람은 두 사람이었지만, 숨 막히는 배려 지옥을 뚫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데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후에 우리 둘은 사이좋게 같이 탔고, 서로의 층을 눌러주고, 간단한 스몰 톡을 나누고, 그렇게 헤어졌다. 그저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가 서로의 방으로 들어간 것뿐이었지만, 헤어졌다는 표현을 써야만 할 것 같은,

그런 기분.  





그렇게 특별할 것은 없는 이 작은 기억들은

어째서 오래도록 내게 머물며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상대방을 위해 배려하며 살아간다.

분명히, 한국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예절’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는 배려심 가득한 행동들을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이름을

한국인의 ‘정’이라는 표어를

30년 넘게 배우고, 익히고, 행해왔다.



그럼에도

이곳에 와서 알게 된 '나'라는 사람은

아직도 배려를 받는 것에, 또 받은 만큼의 배려를 다시 베푸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저 웃는 얼굴로 안부를 묻고 답하는,

잠깐 마주친 타인의 하루가 안녕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나, 걸음이 조금 빠른 사람에게 먼저 가라고 양보하는 마음 같은, 사소하고 별 것 아닌 마음들에 대해 아직도 멋쩍은 사람이다.


‘문화 차이'라는 것 안에 담겨있는 수많은 요소요소들에 대해서는 아직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멋쩍은 웃음보다는 진심 섞인 웃음으로 타인을 대하려하는 이곳 나름의 ‘정’에 대해, 조금 생각을 해보게 된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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