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 릭 비어호스트
개와 달리 고양이는 왠지 냉냉하여 정이 가지 않는다. 길가에서 마주치는 길고양이들도 사람들을 피한다. 하지만 집고양이들은 나름 사람들을 따르는 모양이다. 얼마전 음식점에 들렀다가 한쪽 공터에 있는 그곳에서 기르는 고양이를 보았다. 무료하게 한쪽에 엎드려 있던 그놈은 내 눈길을 받자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더니 슬며시 다가와 바지가랑이에 대고 머리를 부비며 애교를 떨었다. 쓰다듬어 주기를 기대한 것인지 몰라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급기야는 바닥에 배를 뒤집고 거꾸로 누워 번갈아 앞발을 내저으면서 아양을 떨었다. 그래도 대꾸가 없자 포기하는가 싶더니 곧 다른 일행에게 다가가 다시 동일한 행동을 똑같이 반복해서 실연하는 것이었다. 우린 폭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비슷하게 의자에 앉아 독서하고 있는 여인 옆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같이 놀아달라고 앞발을 들어 주인을 희롱하고 있다. 서로 커뮤니케이션 규칙이 있는지 주인도 그렇게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다. 단지 보던 책이 행여 고양이 발톱에 훼손되지나 않을까 싶어 높이 쳐들면서 고양이를 어르는 중이다. 주인이 너무 책 읽는 데 몰두하는 바람에 어쩌면고양이가 책을 시샘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주인은 고양이 때문에 독서의 집중력을 잃고 말았다.
릭 비어호스트(Rick Beerhorst : 1960 - )는 미시건 주의 그랜드 래피즈 태생의 미국 화가이다. 그의 <산만한 독서가>는 같은 해에 동일 제목으로 그린 다른 한 점이 더 있다. 여인의 모습과 옷 색깔, 고양이의 종류만 다를 뿐 기본 구도와 자세는 동일하다. 책을 소재로 하거나 책 읽는 것을 내용으로 한 그의 그림은 꽤 된다. 책은 그가 즐겨 사용하는 기호 중 하나이다. 그의 도상학은 비잔티움의 이콘 양식을 떠올리게 하는데, 어떤 때는 주제의식까지도 비슷하다. 이콘화는 이미지에의 집중을 통해 성스러운 것과의 연결을 쉽게 하는 매개적 기능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그의 그림을 얼핏 보면 종종 혼란스러움을 주며,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도 거부하는 듯하다.
예를 들면 책을 보는 인물의 눈을 손이나 머리카락, 심지어 새나 곤충이 가리고 있는 모습으로 그린다. 관람자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저렇게 하고서 어떻게 책을 볼 수 있나, 이게 무엇을 의미하지 하는 의문들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보라는 고린도서의 성경 말씀을 상징한다. 말하자면 이 외견상의 거부는 감추어져 있거나 신비스러운 것에 대한 접근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에 대한 접근을 승인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