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_조르주 데 키리코_아이의 뇌
폭염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점점 더 여름나기가 힘들다. 주말에는 24시간 에어컨을 틀고 웃통도 벗어젖히고 지낼 정도이다. 그림에서도 한 남자가 상의를 벗은 채 책상 앞에 있다. 책상 위에는 책이 한 권 놓여 있다.
조르주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1888 - 1978)의 <아이의 뇌>이다. 제목이 "아이의 뇌"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뜨악하게 다가올 뿐 그림의 내용과 쉽게 연결짓기 어렵다.
키리코는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그리스 태생의 이탈리아 화가이다. 그의 다른 작품들을 보면 말 그대로 현실을 뛰어넘은 초현실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불가사의한 소재들을 형상화하고 있는 그의 초기 작품들은 이후 막스 에른스트,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나마 이 작품은 현실 속에 있음직한 순간을 그리고 있으며, 다만 제목만이 두드러지게 초현실적이다.
눈을 감고 있는 남자는 1905년에 타계한 화가의 아버지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이고, 책에 꼽혀 있는 빨간 끈으로 된 책갈피는 화가의 위치에 있는 관람자와 이 아버지를 연결시켜 주고 있다. 왼쪽의 커튼은 이 양자 사이를 차단하듯이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해석하면 커튼 사이로 어떤 내밀한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정신분석학적 해석이 그 한 예이다. 그에 따르면 붉은 책갈피가 끼워져 있는 책상위의 책은 교접을 상징한다.
무의식에 대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은 초기 키리코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예술가란 본질적으로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갖은 제약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하고 어떤 논리나 상식으로부터 저항하는 자이다. 그로부터 예술이 도달하는 세계는 어른들의 세계라기 보다는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세계이며, 현실의 세계가 아닌 꿈의 세계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키리코가 도달한 예술세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그림에서 제목인 <아이의 뇌>는 바로 책을 통해 상징되고 있는 어떤 것은 아닐까.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마음, 아직은 미숙하기만 한 정신으로서 아이의 뇌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미숙함은 그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할 것이다. 책은 외형상 한 손에 잡히는 아주 미미한 것이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내용은 그것을 우리가 여하히 해석하고 받아들이냐에 따라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매우 강력한 것이 될 수 있다.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의 기초를 닦은 앙드레 브레통이 아주 좋아했던 작품으로 여기에는 일화가 있다. 파리에서 하루는 브레통이 버스를 타고 시내를 지나고 있었는데, 길거리의 화랑 유리창에 걸려 있는 이 작품을 보고 바로 이거다 싶어 버스에서 하차하게 되었고 결국 이를 구입했다고 한다. 나중에 1964년 한 전시회를 계기로 브레통과 연결되어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구입하여 현재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