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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규 Mar 14. 2019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어른은 어른도 피곤하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좀 짓궂은 면이 있다. 마치 “이런 사람 있잖아, 그렇지? 병신 같은데 나만 보긴 아까워서 너도 좀 보여주는 거야” 같은 종류의 고약함. 근데 그게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오죽하면 야한 장면 하나 없어도 그는 여전히 영화를 청소년 관람불가로 심의받는다. 어차피 애들은 봐도 모른다-고. 그건 홍상수 감독 영화의 구성 자체가 “사람 구경하는 재미”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고, 등장하는 인물들은 여간 관찰하지 않으면 속내를 알기 어려운 닳고 닳은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도 (띄어쓰기가 없어야 한단다) 그 닳고 닳은 어른들 조롱하기는 여전하다. 첫 번째로 진행된 에피소드에 나오는 함춘수는 완전히 홍상수 영화에 줄기차게 나오는 '한번 해보려는' 찌질남 그 자체다. 근데 이번엔 다음이 좀 다르다. 조용히 킥킥거리고 웃는 사이에 2막으로 슬쩍 에피소드를 하나 끼워 넣는다. 앞의 1막과 완전히 평행의 세계를 하나 더 만들어, 같은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미묘한 차이가 변화를 만들어 낸다. 이유는 하나였다. 두 번째의 춘수는 “솔직하게” 말한다.  


희정은 춘수의 솔직한 말들에 “많이 솔직하시네요”라고 불쾌감을 드러내고 진짜로 화를 내기도 한다. 솔직한 건 그렇게 위험하다. 오해를 만들고 관계 그 자체를 위협하기도 하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말을 포장하고 숨긴다. 잰 체 하고 싶어서, 예의 바르려고, 싫어할까 봐, 공감을 못했는데 들키긴 싫어서 등등. 그러다 보니 말은 가끔 과할 때가 있거나, 듣기만 좋거나, 때론 본심과 반대로 나오기도 하게 마련이다. 하여간 어른 상대하기 피곤한 건 어른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전하는 매개체인 말 자체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모두가 안다, 으레 하는 말들이나 본심을 숨긴 채 하는 대화가 두 사람을 아는 사이로 만들 순 있지만, 결코 어떤 의미 있는 관계로 남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그러기가 쉽지 않아 다들 너무 외로워지고 만다. 결국, 관건은 소통이다. 우리가 하루에도 그렇게나 많은 말과 말들을 주워섬기며 이루고자 했던 건, 너와 내가 맺는 관계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그 둘이 어떻게 됐을까? 보고 나면 그제야 알 수 있다.
두려워하지 않고 표현하는 솔직함의 가치.

왜 지금은맞고그때는틀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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