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당신
한여름. 시간마저 늘어지는 더위에 어떻게 지내고 있으신가요.
올여름에는 지나가다가 배롱나무꽃이 보이면, 어디라도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목백일홍’이라고도 불린다는데,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진분홍꽃이지만 가끔 연분홍꽃, 연보랏꽃, 하양꽃들도 볼 수 있었어요.
배롱나무를 어린 시절에 본 기억은 없습니다만,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는 학교마다, 집집마다 한 그루씩은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 모여 한 그루씩 심기로 결의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기도 했네요. 그야말로 배롱나무에 푹 빠졌어요.
이렇게 나는 어디에라도 적을 두고 싶었습니다. 무엇에라도 정을 붙이고 싶었습니다. 계절마다 친한 나무라도 만들어 놓으면 살고 싶은 마음이 지속되지 않을까 했어요. 밑 빠진 독을 막고 있던 두꺼비는 자주 도망갔고, ‘계속' 살고 싶은 마음하나 일으키는 것도 나에게는 쉽지 않았거든요.
어떤 인생은 슬픔이 끌고 가기도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듣습니다. 그러면 나도 다음 계절을 꿈꾸어봐도 되겠지요? 마음에 심은 나무의 뿌리가 나의 깊은 시름, 고통, 눈물을 꼭꼭 씹어먹고 쑥쑥 자라서 끝끝내, 마침내, 온전히 꽃을 피워내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언젠가 당신에게 그 꽃을 꼭 보여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