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안녕하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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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언젠가, 여느 때처럼 별 이유 없이 모여 앉은 저녁이었다. 그날의 술안주는 내 소개팅 얘기였다. 친구들 모두가 아무리 뜯어봐도 그 사람은 니 취향이 아니라고 단언하던 걸 기어이 물리치고 애프터를 나갔더랬다. “싸드 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묻던 상대방에게 퍽 온화한 웃음을 걸친 채 지난 학기 전공에서 주워들은 걸 적당히 읊고는 냅다 도망쳐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낄낄거리던 친구들의 대화 주제는 어느새 그제껏 보고 들었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상형으로 옮겨갔다.
“내 친구 중에, 웃긴 놈이지. 겨울에 혼자 눈 보러 삿포로? 홋카이도에 있는 게 삿포로 맞지? 거기에 눈 보러 가는 여자가 이상형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웃기지 않냐. 너무 구체적이잖아. 그런 사람이 어딨냐.”
“그거 난데.”
“니가?”
라고 되물으며 친구가 보였던 코웃음은, 차라리 삿포로를 먹으러 삿포로로 갔다고 하면 차라리 믿어주겠다는 뉘앙스였다. 괜스레 욱해서, 손가락을 하나 하나 짚으며 되돌려줬다.
“겨울에, 혼자, 눈 보러, 홋카이도에 가는, 여자. 전부 나네.”
물론 끝끝내 그 소개팅을 받진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정말 지난 2월, 혼자서, 엄청 쌓인 눈을 원없이 보겠다, 라는 계획 외엔 아무 계획도 없이, 삿포로 행 비행기에 올랐던, xy염색체를 가진 생물학적으로 완벽하게 여자였다. 답지 않은 낭만이었다. 당신과 나 모두 내가 그리 감상 넘치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지만, 저 조합이 꽤나 낭만적이란 사실은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떠났던 이유조차 낭만적이었느냐면, 그건 아니다. 그 모든 걸 뒤로 하고 ‘기어이’ 떠나는 모양새였다. 잠을 설치던 1월 마지막 주였다. 입학하고 처음으로 딱히 할 거 없는 방학이었는데 그렇게 갑갑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 들어온 지 반년, 게워내듯 속을 긁어내 스스로를 쥐어짜내 버티듯 견뎌낸 학기가 끝나자 놀 힘도 없었다. 멍하니 한 달이 지났다. 그러다 문득 그 달 아르바이트 월급을 죄다 끌어 모아 삿포로 왕복 티켓을 끊었다. 일본은 가까우니까 싸겠지, 막연한 예상보다 비행기 티켓이 비싸서 당황하다 그냥 결제 버튼을 눌렀다. 떠나기 2주 전에 덜컥 잡힌 일정에 함께 하자고 꼬드기기엔 친구들은 다들 바빠 보였고, 사실 별로 그럴 맘이 동하지도 않았다. 당신조차 떠올릴 겨를도 없이 속이 타던 조바심만 속에 그득 안고, 익숙한 혼자인 모양새로 떠났다.
후덥지근한 여름과 몸이 덜덜 떨리는 겨울 둘 중 하나를 꼭 골라야 한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여름을 고를 테고, 그랬기에 일 년 내내 더웠던 멕시코 날씨가 더없이 만족스러웠지만, 그와는 별개로, 덜컹거리는 기차 칸 안에서 혼자 창밖의 눈이 내리는 장면을 상상한 게 전부였다. 그 단 한 장면만을 생각하며 비행기에 '기어이' 올랐다.
추운 걸 지독하게 싫어하는데 왜 삿포로냐고 누군가 물으면, “눈구경 하러. 부산은 눈이 안 오거든.” 단번에 대답했다.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를 그렇게 감명 깊게 본 편은 아니지만 “오겡끼데스까.”를 외치던 장면의 설원만큼은 퍽 인상적이었다. 거길 가면, 원 없이 눈이 내리는 걸 실컷 볼 수 있겠지 싶었다.
오타루에서 하룻밤, 삿포로에서 두 밤, 하코다테에서 세 밤. 그다지 복잡할 것도 없는 일정. 가장 먼젓번 실수는 밧데리를 가득 채워놓고는 책상 위에 그대로 올려놓고 온 DSLR. 가장 힘들었던 실수는 삿포로에서 커피가 맛있다는 이유로 기차역에서의 거리도 보지 않은 채 예약했던 숙소. 아기자기했던 오타루, 영롱하던 유리공예, 푸르렀던 밤의 삿포로, 잔 가득 찰랑이던 삿포로, 알차게 쏘다녔던 하코다테, 성게알 가득 올라있던 우니동, 노을 지는 바다를 바라봤던 온천, 눈 닿는 곳곳이 하얗던 눈밭.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오누마 공원이다.
혼자라도 기어이, 혹은 혼자니까 기어코 떠나야 했던 이유가 연한 푸른색으로 얼어붙은 늪지를 눈에 담고서야 비로소 선명해졌다.
입구에서 복작복작 단체 사진을 찍던 다른 관광객들을 지나치자 온통 고요한 눈밭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온전히 내가 홀로 서 있다는 감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답 안 나오는 고민의 해답이 그 눈밭을 보자 한순간 번뜩이며 튀어나온 것도 아니었고, 눈밭 사이를 걷는 한 발 한 발마다 몇 달을 끙끙 앓던 고민이 마법처럼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온통 하얀 눈바닥, 그 위에 다시 쌓이던 눈발과 간혹 드러나던, 꽁꽁 얼어붙어있는 연한 옥빛 늪. 유백색 침묵. 사방이 하얗고 조용한 가운데 눈발만 소란스럽게 흩날렸다.
단정하고 고요하고 차갑고 지독하게 혼자였다.
그 사이를 조용히 가르며 걷자 나는 내가 정말로 간절하게 ‘지독하게 혼자인 그 감각’을 그리워했었다는 걸 깨달았다. 오롯이 나만, 온전하게 홀로, 그 겨울 한가운데서 내가 아직 그렇게 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안심이 됐다. 아직 나는 혼자 서 있을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충분히 잘 서 있노라고, 내가 발 디디고 서 있는 곳이 어디든 온전한 스스로인 자신이 아직까지 버티고 있다는 걸 확인해야만 했다.
누구도 결코 홀로 완전할 수는 없다는 걸 이제 알지만, 적어도 내 일상에서 고갱이 삼을 수 있는 온전한 내가 필요했다. 일상 속에서 조각조각 파편으로 존재하는 내 부분들을 죄다 싸그리 훑어모아 꾹꾹 눌러담아놓고, 내게 안부를 물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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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부터 적어야지, 적어야지 했는데 어느새 겨울이 가까워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