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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꽁냥 Sep 2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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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싸이클 다이어리


베레모, 아무렇게나 기른 머리와 수염,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드라지는 반듯한 이목구비. 당신은 아마 당신의 얼굴이 이렇게나 전세계적으로 팔릴 줄은 몰랐겠지만, 자본주의는 기어코 혁명의 아이콘이자 투사였던 당신의 얼굴마저 팔아치우는 것에 성공했다. 에르네스또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 혹은 체 게바라.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라틴아메리카를 횡단해 쿠바에서 혁명을 일으키고 볼리비아에서 죽어간 당신,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인 당신의 이름은 우리 세대의 낭만으로, 당신의 이야기는 신화로 남겨진다.      


그의 미망인은 체 게바라 스스로가 본인을 돈키호테에 즐겨 비유했다고 한다. 라틴아메리카 로드무비의 원형적인 형태를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영화를 돈키호테에 대한 패러디로 읽힐 수도 있다. 영화 첫부분에서 체 게바라는 그때까지 “책으로만 접해왔던 라틴아메리카”를 직접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 밝힌다. 기사도 소설을 탐닉하다 결국 창을 집어들었던 돈키호테처럼 체 게바라는 알베르또와 함께 포데로사를 타고 길을 나선다. “내 숙명은 여행이었다.”     


수많은 책과 영화가 그를 담고자 했다. 세계의 사랑을 받는 브라질 감독 월터 살레스가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 속에서 정작 그는 단 한번도 ‘체 게바라’로 등장하지 않는다. 아직 혁명가로 변화하기 이전의 체는 문학적 소양과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지닌 의대생 에르네스또로서 여정을 나선다. ‘썬글라스와 베레모를 쓰지 않은, 총을 쥐지 않은, 게릴라가 아닌 체 게바라’이기에 어쩌면 서구 영화계에서 좀 덜 부담스럽게 받아졌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선 관객 혹은 카메라가 멈칫하는 장면들이 몇 몇 존재한다. 이는 우리가 혁명가 체 게바라를 이미 전제하고 있는, 이질적이고 돌출적인 일회성 장면들로, 개연성이 떨어지는 일종의 서사 속 비약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생일 축하사, 총 없는 혁명이 가능하다 믿냐고 일갈하던 마추픽추 정상에서의 대화, 헤어지기 직전 묘한 표정을 짓던 알베르또. 이러한 돌출적이고 일회적인 장면을 제외하면 영화는 꽤 능숙하게 혁명가 체 게바라 대신 에르네스또를 우리의 시야에 데려다 놓는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비범한 인물이다. 가볍고, 깐족거리는 것 같은 알베르또에게 우리가 좀 더 마음이 간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라틴아메리카의 광활환 자연풍광을 줄고 담던 영화는 에르네스또와 알베르또가 페루에서 도망 다니던 공산주의자 부부를 맞닥뜨리면서 라틴아메리카의 ‘사람’들로 초점이 옮겨간다. 당신들은 왜 여행을 하나요? 조용히 묻던 고생 가득한 얼굴에 대고 “여행을 위해서Viajamos por viajar”라고 대답하던 부끄러워하던 표정. 그리고 이후 흑백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그들은 대체로 여성, 원주민, 아이들, 농부들이다. 쫓겨나고, 빼앗기고, 떠도는 인물들은 사진 속에서 말조차 빼앗긴 듯 음악조차 깔리지 않은 채 화면 바깥 우리를 응시한다. 때때로 체는 그들에게 말을 건다. 소의 눈을 치료하지 않으면 소 눈이 머잖아 아무 것도 보지 못할 거라고 스페인어를 말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둔 소년에게 말을 걸고, 전통 복장을 입고 코카 잎을 질겅질겅 씹는 페루의 여인들에게 말을 건다. 희미한 웃음, 조용한 체념, 누적되어온 모순이 점점 더 명확하게 에르네스또 앞에 등장한다. 나병 환자들을 위해 장갑을 내려놓고 강을 건너는 장면이 꽤나 인위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체 게바라’를 알고 있기에 그 장면을 납득한다. 메스 대신 총을, 구급상자 대신 탄약창을 손에 쥔 채, 환자를 치료하는 것 대신 라틴아메리카 사회 전체를 치유하고자 했던 체 게바라를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기어코 대륙을 횡단해 쿠바에서 혁명을 성공시킨 인본주의자. 우리 시대 가장 완벽했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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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라틴아메리카 현대사회와 영화 1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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