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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꽁냥 Nov 05. 2015

헤어짐

- 반 년 하고 조금 더.

#1.



예뻐하고 예쁨 받느라 반짝거리던 시간을 움켜쥐려 손을 꾹 쥐어보았지만 그것은 결국 모래처럼 손 틈 새로 새어나가 산산이 흩어졌다. 엄마가 아끼는 도자기 접시를 떨어뜨려 깨뜨린 아이처럼 망연하게,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모양새로 내 마음 바닥 곳곳 흩어진 그 모래의 흔적들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한 달, 두 달, 속절없는 그 흐름 속에서 때로는 ‘시간이 약’라는 말을 되뇌는 것조차 썩은 동아줄이었다.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추측은 번번이 그 아이 없는 현실 앞에서 힘없이 고꾸라졌다. 제 죽음을 인정하지 못한 채 떠도는 어리석은 유령처럼 나는 끝나 버린 관계의 언저리를 뱅뱅 맴돌았다.      


입으로는 늘상 그 아이 없는 미래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나는 사실 그에 대한 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끝이 날 것이다'라는 전제를 좀 더 쉬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좀 더 깔끔하게 끝날 수 있었을까 싶지만, 이건 역시 그 시간을 통과한 지금에서야 해보는 상상에 불과하다.


헤어짐을 전제로 시작하는 연애란, 죽음을 예감하는 삶과 같다. "언젠가 헤어지겠지."라는 문장은 결국 "언젠가 죽을 것이다."라는 딱 그 정도의 온도와 무게만을 가진다. 누구나 하는 생각이기에 오히려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미적지근함.  나 역시 그랬다. 오로지 둘만으로 완결되던 세계가 파편으로 흩어져 미미한 먼지마냥 덧없어질 때의 싸늘함을 구체적으로 예감한 적은 결코 없었다. 뒤늦은 깨달음. 그 아이 없이 살아갈 시간을 서슴없이 이야기하고, 언제라도 훌쩍 떠날 수 있을 것처럼, 이 관계가 끝날 수도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여유롭게 굴었던 어른스러움은 사실 스스로를 타인에게 온전히 맡기지도 드러내지도 못하는 불신에 가득 찬 소심한 인간이 뒤집어쓴 뻔뻔한 가면이었다. 카랑카랑한 헛똑똑이는 제 모진 말 속 가시조차 어여삐 발라내어 안아주는 미적지근한 순둥이에게 가랑비에 젖듯, 저도 모르게 익숙해졌다.


그렇게 일상이 되어 버려서, ‘끝’이 존재한다는 걸 분명한 사실이라고 스스로 되뇌면서도 정작 그 의미는 홀랑 잊어버린 것이다. 그 겨울 나는, '끝.'이라는 전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또는 못한 채, 서로의 한숨 속에서 바래져 가는 많은 것들을 꽤나 전전긍긍하며 감지해야 했다. 어디 쯤에서 끝을 내야 하는 건지, 어느 순간까지 가야 하는 건지, 조금 더 가도 되는 건지, 어느 것 하나 분명하지 않던 그것들마저 완벽하게 끝이 난 뒤의 나는 마치 물 밖으로 내동댕이쳐져서 뻐끔뻐끔 마른 호흡만 가쁘게 내뱉는 물고기 같았다.



#2.



과거 숱한 다툼들과 달리 더 이상 손을 잡을 수도, 안을 수도 없단 사실을 온전히 견뎌내는 것은 내 몫이었지만 난 결코 능숙하진 못했다. 누군가 때문에 뒷목이 뻣뻣해질 정도로 화가 나는 게 처음이었다는 그 아이를 자주 홀로 원망했다. 너 역시 잘 한 건 없노라고, 그렇게 상대를 비난하며 제 잘못을 합리화를 해가며 간신히 나는 내 일상을 지탱했다. 저도 그다지 멀쩡한 속은 아닐 상대에게 기어코 “나는 잘 살 거지만  그쪽은 못 살았으면 한다.”라고 마지막까지 배배 꼬인 속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동시에 쥐구멍에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한마디를 뱉어내기도 했다. 한 군데, 두 군데 닳아가던 애정 어린 대화, 조금씩, 조금씩 마모되어 가던 배려 깃든 인내가 온전히 상대의 탓인 것인 마냥 일기를 써내려 갔다. 못 돼먹은 성질머리라, 내 속이 뒤집힌 것보다 곱절은 더 그 아이 속이 난장 맞기를 바랐다. 그 아이 하나 빠졌는데 도무지 평안하게 굴러갈 기미가 안 보이는 내 일상보다 그 아이의 일상이 더 순탄하지 않기를 바랐다.


나도 있고, 그 아이도 있는데, 그 관계만은 없다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생각보다 담담하고, 참담한 과정이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이별을 확인받거나, 확인시켜야 했던 순간은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다. 그 아이가 볼드모트라도 되는 양 내 앞에서 그 이름 말하기를 꺼리던 친구들 앞에서 종종 먼저 농담처럼 이별을 말하곤 했다. 깃털처럼 가볍게 입에서 튀어나가는 그 이름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다만 힘겨웠던 건, 어느 노래 가사에서 말했던 것처럼 ‘영원의 순간엔 없지만’ 여전히 ‘나의 순간엔’ 엄연히 버젓한 그 사람의 존재감을 확인할 때였다.


예를 들자면 기숙사 1층 옆문을 통해 들어오면 꼭 지나쳐야만 하는 세탁장. 그곳을 지날 땐 노란색 샤프란 유연제 향이 났다. 보라색도 아니고, 분홍색도 아니고 하필 노란색. 출입 카드를 대고 문을 열어 숨을 들이쉬는 순간 훅, 하고 몰려오는 향기는  ‘그때, 그 장소, 그 아이’가 있었다는 걸 집요하게 상기시켰다. 그리고 이제 그것들을 과거형으로밖에 칭할 수 없다는 것 역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학기 내내, 그 문으로 학교를 오고 갔다. 언젠가 끝날 날을 기다리면서. 끝낼 날이 아니라 끝날 날을.     


새벽녘에 친구를 붙들고 울음을 터뜨린 날도 있었다. 괜찮다는 말을 긁어모아 하루하루를 다독이고, 그래도 속이 쓰리면 술을 찾고, 사람을 찾던 어느 날이었다. 조각조각, 파편으로   마음속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괜찮다’라는 말을 너무 많이 주워 담아서 그 모서리에 긁혀 생채기가 자꾸 나다 못해 너덜거렸다. 서러웠다. “왜 나는 아직도? 너는 아닌데? 나만 이런가?” 차마 물어볼 수 없는 질문을 열두 번도 더 꾹꾹 눌러 담다가 결국 전화기를 붙들고 터져 나온 울음은 먹던 사탕을 빼앗긴 세 살 배기  어린아이의 끅끅거림처럼 대책 없었다. 헤어진 지 석 달쯤 되던 어느 이른 봄의 새벽이었다.     



#3.



그 뒤에도 나는 종종 그 아이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초여름 저녁에, 그냥, 2초 정도 머뭇거린 뒤에 컴퓨터에서 폴더 하나를 통째로 지웠다. 클릭 세 번. 잔상조차 남지 않는 컴퓨터 세상 속 추억 털이. 이다지도 쉬운 걸 나는 이다지도 오래 품고 있었다니. 우스웠다.



#4.



그때 그런 방식으로 끝이 난 것에 대한 미안함을 말로 전달해본 적은 없다. 차마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당장  그때의 나는 나를 다독이고 추스르기에 벅찼고 조금 정신을 차린 후에는 어떤 말도 너무 늦어버렸다. “미안하다.”라고 말하는 것조차 미안한 순간이 존재한다는 건, 그 아이에게 배운 많은 것들 중 가장 뼈아픈 교훈이 되었다. 다감했던 눈빛, 당연하게 잡았던 손의 체온 같은 구체적인 감각은 시간과 함께 느리게 기억 저편으로 흐릿하게 퇴적되어 갔다.


더 이상 가슴 뛰지도 않고, 눈부시지도 않게, 그 아이와 내가 ‘한 때, 그랬었다.’라는 사실만 덩그러니 남았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년이 채 안 된 언젠가, 기어코 다시 한 번 헤어짐을 속으로 되뇌어야 했던 순간이 있었다.      

“OO 아세요?”     

마지막 책장을 덮듯, 그렇게 혼자서도 끝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저 한마디는 서러운 둔탁함으로 가슴 한 켠에 똬리를 틀었다. 말한 사람 얼굴도 그리 선명하진 않은데 그 억양과 어조에 묻어 있던 친밀함과 반가움은, 단 한 번 들었을 뿐인데 계속해서 속으로 조용히 따라보고 싶을 만큼 또렷했다.


OO 아세요. OO. 그 이름을 그리 부르는 게 당연했던 기억들 무게만큼 속이 덜컥 내려앉았다. 한때 너무나 간단하게 규정할 수 있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나는 말을 고르고 골라야 했다. 머리를 굴리는 그동안 난감함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소질 없는 표정 관리에 온 힘을 쏟았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 들은 예상하지 못한 이름, 술김에 언뜻 본 뒷모습, 모르는 사람인 양 굴던 그 잠깐, 우연히 남겨진 컴퓨터의 대화. 그 모든 게 겹쳐지자, 내 일상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사람을 어떻게든 지워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지난 반 년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여상하게 “안녕.”이라 말하며 안부를 묻기도 하는 관계가 되고 싶지 않은 나름대로의 명확한 이유는 있었다. 헤어진 커플의 그렇고 그런 결말이라고 말하면 어쩐지 약간 억울할 만큼 고민했지만, 사실 곰곰이 따져보면 결국 누구나 으레 도달하는 보편적이고 식상한 결론이었다. 나는 내 실수로 잃어버린 것들을 마주하기 싫은 겁쟁이였고, 내 잘못을 돌아보기보단 상대를 나쁘다고 몰아가기에 바쁜 미성숙한 이기주의자였다. 덧붙이자면, 나는 그제야 겨우 찾아가고 있는 그 아이 없는 내 일상에 굳이 ‘친구’라는 이유로 그 아이를 붙잡아 두며 그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고민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모든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은 참 서러웠다. 다시는 그렇게 불러볼 일이 없을 이름이라. 차마 “알아요.”라고 선뜻 고개 끄덕이기 어려울 이름이라.     



#6.



헤어짐 그 직후엔 잘했던 것만 떠올랐지만 어느 새부턴가 못했던 것만 종종 떠올랐다. 어쩌면 이제야 비로소 객관화가 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 상황, 그 순간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게 있는 것처럼 그 상황을 벗어나야만 보이는 것 역시 분명히 존재하는 법이라. 마주하는 눈빛에 저도 모르는 사이 발끝까지 간질거리는 웃음이 나오는 그 감각을 겪어보아야만 아는 것처럼. 끝이 나고, 말끔하게 털어내진 못하더라도, 그 아이를 아꼈던 만큼, 꼭 그만큼의 미련은 떨쳐낸 지금에서야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는 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저 잘난 맛에 겨웠으면서도 겉으로는 상대를 위하는 척 했던 어렸던 치기가 가장 부끄럽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다는데, 자꾸만 후회가 돼서 미련으로 남는가 싶기도 하다.  


우주의 중심이 저가 아니란 사실을 알 만큼 알게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내가 저지른 실수들을 돌아보기가 참 끔찍이도 싫은 인간이라서 이미 끝나버린 연애에서 내가 못했던 것만 쏙쏙 골라 생각나는 요즘이 그다지 유쾌하진 않다. 교묘하게 들이댔던 이중 잣대나 뾰족뾰족 가시 세워가며 상대를 할퀴던 말, 제 자신에게만 너그러운 뻔뻔한 관대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새김질하는 소처럼 이리도 우직하게 끝나버린 그 연애를 자꾸 곱씹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지금 와서 보면 나는 내가 준 건 크게, 받은 건 작게 기억하는 관대하지 못한 인간이란 점이 참 뼈아파서. 잃고 나서야 그걸 알아서. 유별날 건 없었지만 특별한 건 참 많았던 시간이 아쉬워서. 이젠 허공을 떠도는 그 의미들이 허무해서.           


요즘도 여전히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때의 잔상들은 종종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하지만 이전보다 드문드문한 빈도와 강도에, 별다른 내색 없이 그것들을 속으로  갈무리하면서, 비로소 이젠 내가 괜찮아졌다는 걸 확인하곤 한다. 구체적인 대화가 떠오르기보다는 그때 참 좋았지, 하는 정도의 두루뭉술한 느낌으로 어렴풋하게만  그때의 우리가 떠오른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조약돌처럼 둥글둥글 닳아버린 모양이다.


반년, 그리고 조금 더 지난 서늘한 오늘 밤이 지나도 가끔은 그 아이 생각이 나겠지만 내가 그 아이를 아꼈던, 꼭 그 만큼의 슬픔의 용량은 이제 다 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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