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녕하노라, 당신도 안녕하길, 먼 곳에서 안부를 전한다.
이 여행 같은 일상을 시작하려 맘먹었을 때부터 줄곧 따라붙은 질문 하나.
“왜 하필 그곳이야?”
떠나는 날이 다가올 수록 만나는 사람들마다
"어디가?"
물어왔고
“멕시코.”
라는 대답에 모두들 다시 한 번 물었다.
"왜 하필 그곳이야?"
당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 ‘하필’, ‘그곳’인지, 한 어절마다 강세를 두어가며 물었던 그 질문이 내포하는 의미는 ‘하고 많은 나라들 중에서 총과 마약으로 매일 난리통인, 하필 그 나라를 가는 이유가 대체 뭐야’ 정도 될 것이다. 오래 봐온 친구들에겐 반농담 반진담으로 웃으며 “거기가 데낄라가 처음 만들어진 데거든.” 같은 시답잖은 농담을 지껄였고, 그보다 조금 더 진지한 대답을 해야 하는 자리에선 “스페인어 공부하러.”라며 얌전한 모범생 가면을 슬쩍 덮어 쓰곤 했다. 으레 이 대답은 그렇다면 왜 스페인이 아니라 멕시코인지, 다시 한 번 ‘멕시코’를 선택한 이유를 묻는 물음으로 부메랑처럼 돌아오곤 했다. 딸내미가 남들보다 둘러가다 뒤쳐질까 걱정하는 부모님께는 스페인어에 덧붙여 남미에서의 인턴이라던가 하는 향후 계획을 말하며 안심시켜 드려야 했다.
당신에게 고백하자면, 사실, 정작 저 위 어디에도 ‘멕시코를 가겠다.’라고 결심한 동기는 없었다. 모두 멕시코를 가야겠다고 결심한 이후에 이것저것 찾아보고 갖다 붙인 변명에 가까운 이유인 셈이다. 그리고 그런 스스로가 당황스러워 왜 하필 그곳인지에 대한 질문을 누구보다 더 많이 던졌던 것 나였다. 꼭 그곳일 필요가 있나. 대체 왜?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등학교 때 읽었던 책 한 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실 중3 말이었는지 고1 때였는지 긴가민가하다. 세계 곳곳을 떠돌던 여행 작가의 책은 때깔 고운 사진이 매 페이지마다 빼곡했다. 후루룩 책장을 넘기며 읽는데 딱 하나 눈을 사로잡은 게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호수인지조차 구분이 가지 않는,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그림에서나 볼 법한 풍경. 깜깜한 밤과 환한 빛이 공존하는 마그리트의 그림 같은 풍경의 사진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낭만’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빚어내 형상화한 것 같은 곳. 하늘과 호수가 입맞춤하는 것 마냥 맞닿아서, 하늘 속에 서서 머리 위 빛나는 별이 발아래 수면에서 가물거리며 함께 밤을 지새우는 곳. 그 이후 ‘우유니’는 내게 언제가 꼭 가보아야 하는, ‘당위’에 가까운 장소로 각인되었다. 언젠가 꼭 저기를 가리라.
당신이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지극히 비현실적인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된 이 모든 것은, 상상과 망상과 환상의 경계를 오가며 애정을 키워가는 소녀의 풋사랑 같은 구석이 있었다. 모르기에 낭만적이었던 점. 아무 것도 알지 못하기에 더욱 더 애달팠던 점. 이것저것 재는 계산 없이 오로지 그것만 바란다는 점. 입학한 이후에 복수전공으로 뭘 고를지 고민하느라 끙끙 앓던 친구들과 달리 별다른 고민도 없이 라틴아메리카학을 고른 이유는 명쾌하고 단순했다. 나는 그곳을 모르기 때문에. 첫사랑을 앓는 소녀가 상대의 일상 하나하나가 궁금하듯, 나 역시 그곳을 알고 싶었기 때문에. 서구가 일종의 모델이자 개념으로 제시될 수 밖에 없는 전공 공부 특성 상, 라틴 아메리카를 공부하는 것 자체가 시야의 폭을 넓혀줄 수 있겠구나 싶었지만, 그건 역시 어디까지나 사후적인 변론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당신이 이 모든 것의 원인으로 그 초현실적인 사진 한 장을 지목한다 하더라도 틀린 건 아니다. 멕시코는, 그래, 지극히 낭만적인 그곳을 향한 지극히 현실적인 계획의 일환인 셈이다. 다만 그것 역시 전부라기보다는 시발점에 불과하다. 당신에게만 좀 더 솔직히 털어놓자면 - 유치한 어린아이 같은 대답이긴 하겠지만 – 그곳에 가는 것만으로도 특별해질 것 같았다. 직항 비행기조차 없이, 거의 스무 시간을 꼬박 날아가야만 하는 곳, 14시간의 시차로 낮과 밤이 정반대인 곳,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고만고만한 일상이 흥미진진한 모험이 될 것 같은 그런 곳.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멕시코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시간은 첫 데이트를 기다리던 전날 밤보다도 찌릿찌릿했다.
그리고 정신없는 한 달이 지나갔다. 도착한 바로 그 다음날 학기가 시작했고 나는 시차 적응과 현지 적응, 학교 적응을 동시에 해나가야 했다. 학교 수업에서 몇 마디 들었던 것보다 곱절은 빠른 것 같은 사람들의 말하기 속도에 위축됐고, 사람을 위한 신호등이 없는 사거리에서 대체 언제 건너야 하는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사실 이건 지금도 종종 그런다. 당신은 짐작도 못했겠지만, 요즘도 나는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는 차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내친 김에 좀 더 칭얼거리자면, 14시간 시차로 낮밤이 꼬박 뒤집히는 바람에 새벽 네 시에 깨어나 주린 배를 잡고 호스텔 찬장을 뒤적거렸던 건 꽤나 울적한 기억으로 남아있다..내가 머무는 호스텔이 대략적으로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지, 상점은 어디에 있는지, 뭐가 필요한지 가늠이 되지 않아 도착한 직후 삼일 내내 저녁은 컵라면이었다. 몰라서 서럽고, 몰라서 무섭고. 저 멀리 한국에서의 무지가 낭만과 동의어였다면, 이곳에서의 무지는 불편함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만약 당신이 지금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알소 있다면, 그것 역시 꽤 다행스러운 축복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곳에 온 뒤 내가 가장 많이 들여다 본 어플은 카카오톡도, 페이스북도 아니라 구글지도였다.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내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그토록 복에 겨운 사치일 줄이야.
당신도 한 번 상상해보길. 아무도 당신을 모르고, 당신 역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시작하는 온통 처음뿐인 세상. 생을 처음 겪는 아이마냥 처음투성이었다. 수업 시간에 별안간 터져 나온 재채기에 모두가 “Salud!”이라고 말하는 것, 거기에 다시 "Gracias!"라고 답하는 것, 만나고 헤어질 때 서로를 안으며 볼을 맞대는 것, 시퍼렇게 까만 밤에도 불야성처럼 빛나는 성당을 바라보는 것, 그 모든 것이.
조금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양파 썰 때 눈이 그만치나 맵다는 것도 여기에 와서야 알았다. 당신도 알다시피 라면을 끊이는 것조차 동생의 손을 빌릴 만큼 생산적인 활동에 있어선 지독히도 무딘 손끝이지만 지나치게 짜거나 지나치게 달거나 나치게 짜고 단 이곳의 음식 덕에 나는 한 달 새, 평생 제 손으로 한 것보다도 더 많은 음식을 해먹었다. 잡채, 고추장삼겹살, 양배추쌈, 불고기, 유부초밥, 냄비밥, 알리오 올리오, 크림 파스타, 각종 볶음밥에 피클까지. 스쳐지나가는 여행자가 아니라 일상을 꾸려나가야 하는 거주자로 녹아들어가기 위한 그간의 고군분투가 빚어낸 결과물들.
그리고 오늘로써 한국을 떠난 지 한 달하고 일주일, 그리고 하루가 더 지났다. 그 사이 나는 당신보다 하루를 14시간 느리게 시작하는 이곳 시간에 익숙해졌고, 낮엔 더할 나위 없이 쨍쨍했다가도 밤이면 밤마다 천둥번개에 양동이로 쏟아 붓는 기세로 비가 내리는 이곳의 날씨에 익숙해졌고, 학교 가는 길에 있는 거리들 이름을 대충은 읊을 만큼 이곳 지리에 익숙해졌다. 한마디로, 제법 이곳에 익숙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곳에서의 일상은 아직까진 모든 것이 당연하고 편안한 일상보다는, 긴 긴 여행에 가까운 느낌이다. 생소하고, 낯설고, 그래서 설레고, 때로는 떠나온 그곳과 당신이 그리워지기도 하는.
반쯤은 여행자, 반쯤은 일상인이라는 애매모호한 신분으로 지낸 지 한 달째, 이 먼 곳에서 내 안부를 전하고 당신의 안부를 묻고 싶어 끄적여본다. 나는 평안한 밤을 보내는 중이다. 당신의 한낮 역시 평온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