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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환 Apr 18. 2016

저는 사진 좋아합니다!

사진 같이 찍어보시겠어요? ^^

사진! 누구나 가진 오래된 그것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현(?) 세대들은 거의 태어나면서부터 사진을 찍거나, 찍혀왔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집에 자신의 어릴 적 모습들이나 여러 추억이 담긴 사진첩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사진 촬영하는 것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예전 폰부터 현재의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카메라 기능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겠습니까?




눈으로 보고 느낀 감동 담아내기


  사람은 거의 모두가 소유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자신의 기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것을 가지고 싶어 할 것입니다. 이것을 사진 찍는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면 주변에서 흔히 찾아낼 수 있는데,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거나 인상적인 것을 보았을 때 자신이 가진 카메라 또는 폰에 있는 카메라를 활용하여 그 장면을 찍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은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서 어떤 아우라(Aura)를 느꼈음이 분명합니다.


2008년 어느날 처음으로 DSLR을 사고 나름 작가주의(그 당시에 소지섭이 나온 소니 알파시리즈 광고에서 이 말을 사용했었다)를 주장하며 촬영한 사진.



  어느 여름날 오후 휴식의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그림자를 던지고 있는 지평선의 산맥이나 나뭇가지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이 순간, 이 산, 그리고 이 나뭇가지가 숨을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산이나 나뭇가지의 아우라가 숨을 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 발터 벤야민」


  사진 촬영을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항상 손에 카메라를 쥐고 다니며 눈 앞에 펼쳐지는 모든 풍경에 렌즈를 들이대지는 않습니다. 물론 저도 의식적으로 카메라를 항상 지니고 다니며 많은 것들을 촬영하려고 노력하지만 생각보다 많이 찍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문득 마주한 장면에서 왠지 다시 이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강렬함을 느끼거나 감정을 들끓게 만드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철학자들이 주로 말하는 '지금 이 순간(Here and Now)' 혹은 '현존성'이 찾아온 것이죠. 이런 순간에는 위에서 발터 벤야민의 말을 인용했듯이 '아우라'를 느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장면을 소유하고, 나아가 자신의 감동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서(그러고 보니 좋은 것을 나누려는 마음도 있겠네요) 사진을 찍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봤던 그때 그 풍경, 그 장면은 온데간데없고 남에게 보여주기 민망할 뿐만 아니라 내가 봤던 것이 그 장면이 맞는지 의심이 드는 사진이 찍혀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기술적인 부분들은 나중에 다룰 테니 지금은 가볍게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도록 합시다!




비자발적 기억(또는 비의지적인 기억)


  갑자기 뭔가 있어 보이는 제목입니다. 비자발적 기억이라니! 그럼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한 대목을 보고 가지요.



  이처럼 오랫동안 한밤중에 깨어나 콩브레를 회상할 때면, 마치, 벵골의 섬광 신호등이나 조명등이 건물 한 모퉁이를 선택해서 비추면 다른 부분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기는 것처럼, 콩브레는 언제나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속에 잘린 빛나는 한 조각 벽면으로 떠올랐다. (…) 사실 누군가가 묻기라도 했다면, 콩브레에는 다른 것도 있고, 다른 시간도 존재했다고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은 단지 의지적인 기억, 지성의 기억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이런 기억이 과거에 대해 주는 지식은 과거의 그 어떤 것도 보존하지 않으므로 나는 콩브레의 다른 것에 대해서는 생각할 마음조차 없었던 것이다. 사실 내게 있어서 이 모든 것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스완네 집 쪽으로 - 콩브레 – 마르셀 푸르스트」



  무슨 말이냐면,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현재를 그렇게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도 아니지만(살다 보니 정신없어서) 현재에 집중하다 보니 예전의 일들을 대부분 망각하고 잊어버린 듯 산다는 말입니다. 좀 더 설명하자면, 현재를 살고 있는 나라는 자아가 과거의 기억들을 억눌러 놓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망각하

고 잊어버린 듯 억눌려 있는 기억을 어떻게 하면 다시 복원할 수 있을까요?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기쁨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 아니 그 본직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초라하고 우연적이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도대체 이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 내가 찾는 진실은 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 그것이 레오니 아주머니가 주던 보리수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의 맛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아주머니의 방이 있던, 길 쪽으로 난 오래된 회색 집이 무대장치처럼 다가와서는 우리 부모님을 위해 뒤편에 지은 정원 쪽 작은 별채로 이어졌다. (…) 그들이 작은 집들과 성당이, 온 콩브레와 근방이, 마을과 정원이, 이 모든 것이 형태와 견고함을 갖추며 내 찻잔에서 솟아 나왔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스완네 집 쪽으로 - 콩브레 – 마르셀 푸르스트」



  이건 무슨 말일까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은 그동안 자신의 유년시절을 보낸 콩브레에 대해 떠올리려고 노력했지만 특별히 생각나는 건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맛보는 순간, 어릴 적 먹었던 그 마들렌의 맛을 느끼게 되면서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오게 됩니다. 물론 작중 화자는 잊은 듯 그리운 이 느낌을 찾으려고 노력을 했지요.

  그럼 이 이야기를 제가 가지고 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저는 사진을 위의 이야기에 나오는 마들렌의 역할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 계시는 분들이 그동안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았었고, 옛 기억들은 그저 막연한 옛날로 추억하고(혹은 기억을 꾸미고 있거나) 계실 겁니다. 저도 특별히 다르지 않습니다만, 이번 시간을 위해 글을 적다가 예전 사진들을 다시 한 번 넘겨보니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일들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어도 다들 옛 사진을 보며 잊고 있었던 추억 떠올렸던 경험 많으시니 잘 이해가 될 겁니다^^


4~5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바구니에 들어가서 노는걸 무척 좋아했단걸 기억해냈다.




찰나 혹은 영겁의 순간들


  우리 눈은 아주 좋은 렌즈 및 카메라이지만 생명체의 한 일부분인 이상 한계도 명확합니다. 단순한 예로 TV 화면을 보면 눈은 특별한 이상을 잘 못 느낍니다. TV 화면은 1초에 사진이 60장을 연속으로 넘기는 식으로 구성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카메라는 셔터의 속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극히 짧은 순간, 찰나의 장면들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영겁은 아니지만 긴 시간 셔터를 개방하여 사물들이 물 흐르듯이 나타나는 장면도 담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람의 눈으로 포착할 수 없는 장면들을 담을 수 없기에 카메라가 더욱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가요?


찰나의 순간! 그나저나 나의 어릴적 모습과 딸의 모습을 비교해보니 서로 많이 닮았다.




그밖에...

  제가 주로 사용하는 렌즈교환식 카메라는 카메라에 장착하는 렌즈에 따라서 사진의 맛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렌즈의 특성에 따라 같은 피사체라도 성격을 달리하여 촬영할 수 있으니 매력적입니다.

  요즘 디카,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렌즈교환식 카메라에서도 실시간으로 피사체를 액정으로 보면서 촬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뷰파인더’라고 불리는 곳을 통해서 촬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한쪽 눈을 감고 남은 한쪽으로 오롯이 렌즈 너머로 보이는 피사체에 집중하는 느낌이 좋아서입니다. 실은 그렇게 찍고 다시 두 눈을 뜨면 약간 어지럽기도 하고 눈도 아프지만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할 이야기는 많지만 앞으로 하나씩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사진 좋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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