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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우 Sep 19. 2015

코르시카 섬의 어부

 바삐, 성실히, 부지런히 사는 게 '옳게' 사는 일이라 여겨졌던 그 때를 돌이키면, '참 열심히 살았었지'가 아니라 그런 삶의 속도가 나를 얼마나 피곤하게 했던가가 먼저 떠오른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느냐 물으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그저 어느 순간, 냉장고 문을 열어보고 '우유가 떨어졌구나' 하는 걸 깨닫듯 우연히 또 자연스레 알아버렸다. 내가 느린 게 아니라, 이 세상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걸. 걸어도 되는 길을, 굳이 (남들이 뛰니까 덩달아) 뛰어가고 있었다는 걸. '나폴레옹이 잠을 정복하지 못했더라면 코르시카 섬의 어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라 말하는 광고도 있지만, 나 같으면 세 시간씩 자고 세계를 정복하는 것보다 푹 자고 섬의 어부로 사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어느 쪽이 낫거나 못해서가 아니라, 그 편이 나에겐 좀 더 어울리는 길일 테니까.


 세 시간을 자든 낮잠을 오래 자든 문제는, 이 사회가 다짜고짜 모두에게 나폴레옹이 되라고 강요한다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도, TV광고도, 휴먼 다큐멘터리도 다들 지금보다 더, 좀 더 부지런하게 살라고 채근이다. 잠을 정복하지 못하고서 어부가 되면, 부모의 근심거리가 되고 사회의 애물단지가 되어버린다고 협박하는 세상에 우린 살고 있다. 이 협박이 더 나쁜 이유는, 남들보다 더, 혹은 남들만큼 부지런하게 살지 못하는 자신을 스스로 한심하게 여기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여유'라는 생의 습기가 이 사회에 곰팡이를 피우기라도 하는 양 '부지런하기'를 강요하는 통에 우리 삶은 이토록 건조해져버렸다. 버쩍버쩍 말라 자신도 모르는 새 삶에 균열이 생길 정도로.

 낭비할 시간 같은 건 없다고들 말하는데, 난 오히려 이렇게 열심히 살 시간 같은 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 시간이 일 분 같은 사랑도 해야 하고, 볕 좋을 땐 강아지 데리고 산책도 해야 하고, 눈이 내리는 것도 하염없이 바라봐야 하고, 때론 아무 것도 하지 않기도 해야 하는데 이렇게 꽉 짜인, 피곤한 몸을 이리 저리 끌고 다녀야 하는 일상엔 도무지 그럴 틈이 없다. 행복할 때 우리는 '시간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당연히, 그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런 순간엔 대신 우리가 멈춰서야 한다. 오랜 친구와 말없이 하나의 풍경 앞에 앉아 있는 건, 해가 저물 때 먼 하늘을 보며 창가에 멈춰서 있는 건, 노래가 끝날 때까지 잡은 손은 놓지 않는 건, 멈추기 위해서다. 그러니 우리가 순간에 머무는 법을 알게 된다면, 스쳐 지나는 행복과 좀 더 자주 마주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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