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과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새삼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더러 찾아온다. 아침에 일어나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간밤에 꾼 꿈을 이야기하려고 엄마를 부르려다가 아, 엄마는 나와 살고 있지 않은데, 계절이 바뀌는걸 체감하고는 늘 쇼핑하러 같이 다니던 친구에게 같이 옷 사러 가자 연락할까 하다가 참, 친구는 멀리 부산에 있지, 언제까지고 함께할 것 같던 내 삶의 사람들이 지금 당장 곁에 없음을 느끼는 순간, 치즈가 동난 창고를 발견한 꼬마인간들의 패닉이란 이런 기분이었을까, 잔인한 고독의 쓰라림은 가슴 속 묵직하게 나를 짓누른다.
돌이켜보면 가까운 이들과 떨어져있게 될 것임이 예고되는 시기들이 몇번이고 있었다. 어릴적 다른 동네로 이사가던 때, 초,중학교를 졸업하던 때, 그리고 대학교에 입학해서 서울로 올라오던 때까지. 그들이 내 생활에서 차지하는 영역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사실을 외면하면 삶은 그저 즐거울 것이라고 그땐 믿었다. 하지만 다시금 또 돌이켜보면 밥이라도 한번 더 같이 먹을걸, 따뜻한 위로 한마디라도 더 해줄걸, 소박한 편지 한장이라도 써 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왜 미처 알지 못했을까, 함께하는 시간들이 코끝이 찡할 만큼 소중했다는 것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그 계절의, 그 공간의 기억과 함께 머리를 온통 메운다. 그 때 참 좋았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짧으면 짧고 길면 긴 헤어짐을 품은 사람들이 시나브로 다가온다. 내년에도 분명 수업을 듣다가, 인터넷을 하다가, 아니면 길을 걷다가 불현듯 그 사람이 내가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거리에 있음을 발견하고 참을 수 없이 그리워지는 순간들이 찾아올 게 뻔하다, 아, 그 사람 휴학했는데, 그 사람 교환갔는데 하고. 후회가 남지 않는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 두고 나서 떨어져 있기란, 그러니까 겨울을 준비하는 개미처럼 식량을 미리미리 모아두기란 얼마나 어렵고도 가치있는 일인지. 그러니 정말로 이번에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눈물 날 정도로 그리울 게 분명한 이들에게 먼저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해 둘까, 영하의 날씨를 녹이고도 남을 그 사람과 나 사이의 진심을 꽃피울 수 있을까, 올해 겨울에는, 베짱이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