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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우 Sep 19. 2015

엄마의 짠지

형제가 없는 내게 엄마는 연상 여성의 유일한 모델이었다. 늘 엄마는 지성인이고 노래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자랑스런 나의 우상이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엄마에게 모두 물어보곤 했다. 엄마 책에 나온 이 단어는 무슨 뜻이야? 엄마 TV 뉴스에서 나오는 저게 대체 무슨 일이야? 엄마는 나에게 비밀이 없었고 내가 알고싶어하는건 몰라도 열심히 공부해서라도 답해주었다.

삶의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내가 엄마만큼 교육을 많이 받고 머리가 커져서, 때론 엄마가 틀리고 내가 맞는 지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 해 두 해가 흐르면서 그런 순간들이 점점 더 많아졌고 언제부턴가는 인제 내가 엄마보다 아는 게 많은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때때로 엄마는 너무나 무지했다, 나에겐 너무도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가 뭘 아느냐고 무시하듯 말했다. 엄마가 돼서 어쩜 그래? 책망하듯 말했다. 엄마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물으면 그냥, 별 거 아냐, 짤막하게 말했다.

엄마는 나에게 비밀이 없었고 내가 알고싶어하는건 늘 열심히 답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비밀이 많고 엄마가 알고싶어하는건 늘 대강 답해주었다.
엄마에게는 나 말고 다른 딸이 없다. 도시로 나온 뒤에는 엄마 곁을 지킬 다른 아이가 없어서 엄마는 늘 내가 눈에 밟힌다고 말했다.

나는 늘 언젠가 아이를 낳으면 우리 엄마같은 엄마가 되어 주어야지 하고 책도 읽고 때로 강연도 들으며 좋은 엄마 되기를 소망했다. 그런데 머리를 열어 보니 좋은 딸 되기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무하다. 수업이 있다면 수업이라도 듣고 싶고 책이 있으면 밑줄 치며 공부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엄마는 내가 이렇게 못되고 얄밉게 구는데도 내가 밉지 않아? 하면 엄마는, 딸이 다 그렇지, 딸이 그렇게 안 해도 이상하다, 우리딸, 하며 웃었다. 그러면 나도, 그래 그렇지? 하며 따라 웃었다. 그런데 딸은 그래서는 안 되었다. 딸도 엄마가 내게 하듯 엄마를 애지중지하며 보살펴주어야 했던 것이다. 엄마라는 글자만 봐도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핑 도는, 짠하고 애달픈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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