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님, 교회 다니세요?
결혼 전 이야기다. 특수학교와 생활시설이 같이 있는 곳에서 6년을 살았고 비로소 비장애인과 대학생활을 누릴 수 있었던 2002년, 우리끼리 산소(o2) 학번으로 부르던 신입생 시절, 모든 게 새롭게 낯설었다.
특히, 비장애 여성과 같이 공부하고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는 일상의 시간들이 즐거웠다. 전동휠체어를 탔어도 남자라는 존재로 인정받고 싶었던 나였기에, 대학시절 멋지게 보이고 싶었다. 식당 벽에 붙여진 동아리 홍보 포스터들을 보다 눈에 띄는 그라피티, 힙합동아리 '미라클' 오디션 모집을 보고 신청했다.
선배들 앞에서 춤을 추는 학생들 다음 순서에 등장한 나
"저기... 우리는 힙합 댄스 동아리인데, 휠체어 타시고 가능하겠어요?"
한 선배가 미안함과 단호한 표정이 담긴 얼굴로 내게 말했다.
"꼭 춤을 춰야 할까요? 힙합동아리니까 래퍼도 필요할 것 같은데"
나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셨으니 한번 들어볼게요."
손에 든 MR CD를 틀었고 준비한 음악(Leo K`Koa의 알아들어)이 재생됐다.
"네 잘 들었고요. 학교 축제 때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수고하셨습니다."
결과를 알 수 없는 반응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보여줬기에 후회는 없었다. 다른 학생들의 춤 실력을 다 보고 난 후 나가려는데 한 여학생이 내게 말을 걸었다.
"랩을 너무 잘하시네요. 이건 제 연락처예요. 시간 나실 때 같이 식사할 수 있을까요?"
칭찬도 듣고 연락처도 묻고 같이 식사까지 하고 싶다는 말에 설레었다.
내게 말을 건 여학생의 외모보다 비장애 여성이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기 때문이다. 너무 섣불리 전화를 걸면, 가벼워 보일까 봐 며칠 후 전화를 걸었다.
약속장소는 교내 식당이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한껏 멋 부리고 등장했다. 내가 본 그 여학생이 앉은자리에는 5명 정도가 나란히 모여있었는데 기타를 들고 있는 남학생과 여학생, 식탁 위에는 QT라고 적힌 책이 놓여있었다. 신학생들이었다. 단둘이 아닌, 다른 학생들과 함께한 식사시간.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나에 대한 관심 어린 눈빛과 대화들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교회 다니세요?"라는 질문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1시간 정도 있다가 기숙사로 돌아가는 내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불편함이 커졌다. 그들은 나에게 성(性)적인 매력이나 내가 지향하는 힙합에 관심은 없고 그저 나의 성장과정에서 성(聖)적인 호기심만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애초에 나의 장애와 휠체어, 그 휠체어에서 부른 랩에서 성(聖)을 발견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도 7살부터 어머니 등에 업혀 매주 교회를 다녔다. 밤마다 어머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종교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종교가 주는 절대적인 기준에 순응하려고 노력했었다. 일요일마다 교회를 안 가면 지옥에 갈 것만 같았고, 친구들은 일어서 율동할 때면 나 혼자 휠체어에 앉아 있어도 주눅 들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을 보시고 치료해 주실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믿음의 지향점이 지금은 다르지만... 이후 학교 채플시간에 그 친구가 수화 율동이 포함된 찬송 공연을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 당시에는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짧은 만남 이후로 더 보게 되었다.
수화가 찬송과 어울리는 이유는 아마도 음악과 몸이 어울릴 때 느낄 수 있는 본래의 아름다움과 매력 때문일 것이다. 동시에 수화는 일반적으로 성(性)적인 코드로 해석되는 허리와 엉덩이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교회라는 신성한 공간에서 더없이 좋은 표현 수단이 된다. 하지만 교회에서 종종 수화를 선호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거기에 부여된 상징적 의미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장애인들이 쓰는 소외된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감동이다. 그 감동은 장애인의 몸과 장애인이라는 존재에 부여된 의미와 관련이 있다. 장애인의 몸은 신성성을 상징한다. 장애가 있는 몸은 그 역경을 딛고 존재하는 영웅적 의미로 존재한다.
호주 출신의 사지가 없는 장애인 닉 부이치치는 자신의 몸을 희망의 상징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그는 팔다리가 없는 몸으로 누군가를 껴안고 삶의 가치와 희망과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고자 한다.
나는 교회에서 수화로 찬송하는 행위는 수화가 제2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예배의 접근성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보지 않는다. 내가 바라보는 예배 속 수화는 그것이 장애인의 비극성과 신성성이라는 상징을 타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으로 보기 때문이다.
내가 예배 때 랩으로 찬양을 하는 것보다 수화를 하는 것이, 더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날 만난 여학생, 그리고 단 둘이 아닌 다른 학생들과 함께 식사한 자리와 시간적 의미는 나의 성(聖) 잠재성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 의심된다.
장애인을 성(聖)적인 존재로 보는 까닭은 대체로 장애인을 비극성에서 구원하는 길이 오로지 영적인 곳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존재는 다른 존재가 부여한 일종의 산물이다. '하나님의 증거'가 되는 것이 말로 그 공동체의 신바람을 일으켜줄 구원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신성하고 숭고한 사랑과 헌신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여기는 이 세상에서, 그리고 스스로 장애와 역경을 이겨 낸 영웅이 되지 않으면 오로지 비극으로만 해석하는 이 세상에서, 장애가 있는 나로서는 이제 더 이상 그 구원의 손길을 잡고 싶지 않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결혼 후 여전히 아내와 아들과 교회를 다닌다. 여전히 다니는 이유는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내게 주어진 삶을 오늘도 허락하신 섭리에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누구를 위한 증명이 아닌 오로지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에서다. 그 관계에서 내 감정선이 차오르면 누군가에게 더 많은 선의를 베풀 수 있고 내가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줄 수 있는 사랑. 그것을 경험하기 위해서다.
신성과 비극의 해석을 뚫고 나온 나의 몸은 어디를 향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