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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phy Feb 08. 2019

역사에 관하여

아, 거창하다! 역사에 관하여...라니... 송구스럽다. 

가정학교의 엄마이자 선생인 나는 아쉽게도 전공자도 전문가도 아니다.  

내가 역사를 논할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이라면, 지금 21세기 역사 속에 들어와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 밖에 없다. 나는 역사를 좋아한다. 하지만 좋아하기만 할 뿐 잘은 모른다. 

그러면 무엇을 알아야 하는 것일까?


공교육에서는 이미 필수과목에서 밀려난지 오래지만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한 가지만 고르라면 나는 단연코 역사를 고르겠다. 거창하게 민족의식이나 역사의식 같은 것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역사는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학문들이 밟고 서있는 땅같은 것...  

그래서 홈스쿨링을 시작하고 제일 열정을 불태웠던 것이 역사공부였다.


그러나 나는 거의 2년을 역사공부 준비와 계획, 그 껍데기를 핥느라 시간을 보냈다. 차라리 학교 선생님들처럼 교과서 내용을 정리 요약해서 가르치는 것이었다면....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거였다면 아주 쉬웠을 것이다. 그런데 좀더 다양한 방법으로 풍성하고 깊이 있게, 그러면서 억지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또 그러면서 공부하는 것 같지 않게 은근슬쩍 공부시키겠다는......꿈같은 생각으로, 그걸 도와줄 것 같은 홈스쿨링 책들을 읽고 또 읽었다. 그래! 멋지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황새가 아니라 뱁세였다! 가랑이는 찢어지고 책에서처럼 '우연히 하는 깊이있는 공부'는 잡을 수 없는 구름이었다. 사실 이건 책을 쓴 선배님들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이다. 아이들에게 24시간 집중하기엔 너무 바쁜 엄마라 그분들처럼 한다는 것은 애초에 글른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러다간 내가 준비 되기도 전에 애들이 다 커버릴 것만 같았다. 좌절감이 밀려왔고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왕조의 흥망과 연대, 시대별 문화재, 사회제도, 종교.... 이런 것들이 역사라고 배웠다. 물론 이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 날, 그 과거의 어느날을 담는 그릇이니까. 그런데 문득, 이 그릇에 담긴 사람들은 어디로 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그렇담 원숭이를 반쯤 닮은 모습으로 돌도끼를 들고 가능한 멍청한 표정으로 화석처럼 서있는 그가 우리가 배워야할 역사일까? 아니다...! 그래,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요즘은 아이들에게 맞춘 다양한 역사책들이 널려있다. 하지만 거의 두가지 종류이다.  역사의 그릇만 외우도록 강요하는 책이거나 그릇 속의 사람들을 이용해서 그릇을 외우도록 강요하는 책이거나... 결국 겉모양만 다를 뿐 학습이 목표라는 얘기다. 어떻게 해야할까..... 아마도 완벽한 방법을 찾아 짜잔~ 하고 공부를 제데로 하려 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좌충우돌하며 찾아가는 수 밖에... 


내가 그리는 완벽한 그림은 이것이다. 

'부족의 우두머리나 연장자에게서 선조의  이야기를 듣는 것. 온 힘을 다해 살았던 하루가 저물고 저녁식사가 끝난 후 따뜻한 차를 들고 장작불 주위에 둘러앉으면 누군가 흥얼흥얼 노래를 읊조리다 조용히 시작되는 이야기. 부족 중 권위있고 지혜있는 노인, 아이들이 모르는 과거를 보물처럼 간직한 어른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 


그래서 역사수업은  '옛날에 살았던 선조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라 정했다. 그러면서 참고할 만한 책들을 뒤졌는데... 역시.... 어려웠다. 문제는 내가 이야기를 해주려면 그 이야기의 열 배 이상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내 안에서 정리가 되어야 이야기해 줄 수 있으므로... 결국 내가 선조인 척 이야기해 주는 것은 포기했다. 대신 그걸 해 줄 수 있는 다른 분들께 맡기기로 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역사책의 저자님들.

 

괜찮은 책을 골라 아이들과 함께 소리내어 읽고 난 후 생각을 나누었다. 생각이라 해봐야 '이 나라 사람들은 진짜 이상해' 라거나 '내가 이 사람이었다면 이렇게는 안 했을 거야' 같은 소소한 의견이 다였지만. 얼마동안 꾸준히 해보니 꽤 괜찮았다. 문제는 좋은 책, 살아있는 책을 고르는 눈이겠지. 그 책 속에 있는 인물들을 좀더 생동감 있게 만드는 것은 엄마의 몫일 수도 있다. 


이렇게 소박하게 역사공부를 하며 중국 고대사와 한국 고대사를 만났다. 아이들에게 연도나 제도, 왕의 이름, 지명 이런 것들은 여전히 낯설지만 최소한 그 시대, 그 나라를 떠올리면 어떤 그림이 그려지고 재밌는 사건들이 기억나긴 하겠지. 13세 15세에겐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 역사라는 흥미롭고 매력적인 땅에 발을 디뎠으니 신나게 탐험하면 된다. 더욱 효과적인 방법과 좋은 길들을 찾게 될 것이다.

음! 잘 하고 있어! 나에게 스스로 응원과 격려를!

 (자기최면! 홈스쿨링을 하는 모든 엄마들은 습관처럼, 매일같이 할지어다!!) 


위의 글을 써놓은지 2년이 지났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역사공부는 철을 따라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더욱 풍성해집니다. 

2년 후의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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