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원더랜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phy Oct 23. 2015

북극곰과 고드름

둘은 결혼을 했다.


여행 가이드, 엘리스. 

그녀가 다녀갔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길...  

그 복잡한 길에 안내판 세워주고 오느라 기운 다 빠졌다며 어지간히 툴툴거린다. 

뒤뜰, 편안한 의자에 앉아 목을 축인 그녀는 말했다.

“역시 남 사생활 간섭하는 일은 힘든 일이야. 내 코도 석잔데... 안 그래?”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렇지...”

이상하게도 그녀의 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는 포스가 있다. 

왜인지 수긍하지 않으면 후한이 있을 것 같은 느낌...? 요상한 카리스마를 가진 그녀다. 


어쨌든, 말은 그래도 오늘 만난 어떤 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이 기뻤던 모양이다.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그 얌전한 처자에 대해 쉬지 않고 얘기한다.

사실 이렇게 목청 높여 떠들어대는 것을 보면 가이드... 은근히 즐기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 처자는 상담 교육을 받으러 온 교육생 중 한 명이었고 수업시간 내내 거의 말이 없었다. 

성격, 심리 검사를 하고 해석하는 법을 배울 때는 모두 자기 얘기, 남의  얘기하느라 정신없는데

 여전히 교재만 열심히 보고 있던 이 처자. 

궁금함을 견딜 수 없었던 옆자리 아줌마가 옆구리를 찔러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남들과 달리 아주 조용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녀. 

엘리스는 그 처자와 남편의 성격유형을 듣고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조용함을 넘어 절간이죠?”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그와 마주 앉아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함께 책을 읽고, 읽다 눈이 마주치면 서로 웃어주고... 그녀가 꿈꾸던 결혼이었다. 

그녀의 꿈에 합승한 남자는 그저 평화롭고 아름다운 언덕 위의 집, 그런 수수한 꿈을 꾸며 결혼을 했다. 

이 남자에겐 아늑한 곳에서 하루 세 끼를 배부르고 기분 좋게 먹는 것이 참으로 중요했지만 

아쉽게도 그와 함께 평생 밥을 먹어야 하는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밥을  먹고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밥은 그녀의 디저트, 메인 메뉴는... book... 이었던 것이다. 


그날도 그녀는 밥은 안 주고 책만 보고 있었다. 

배고프단 말은 못하고 주변을 맴돌기만 하는 남자. 그러길  30분쯤 했을까?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말했다.

“뭐해?”

“책봐!”

그래,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

남자는 거실로 나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가 다시 들어와 한 마디 한다. 

“재밌어?”

“응! 재밌어”

여전이 차가운 진실!

남자가 보아하니 페이지 수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 기다려야지’

다 읽었을  때쯤 들어와 보니 

고개도 들지 않고 2권으로 뻗어나가는 그녀의 손! 으악!!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심장을 울리며 들려왔으나 또 한 번 결심한다.

‘그래... 2권까지야 뭐.... 기다려 주지.’

말없이 부엌으로 나가 애꿎은 냉장고만 열었다 닫았다 한다.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이젠 다 읽었겠지 하고 방 문을 빼꼼 열어보니,

세상에 이런 일이! 

그녀의 손이 3권을 집어 들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방문을 벌컥 열고 말했다.

“자갸~ 그거 몇 권까지 있어?”

“응? 어, 5권짜리야.”

이제야 그녀는 주변 인식이 되고 있다. 

‘아, 밥 먹을 시간이구나. 배고파서 저러는 군. 밥 달라고 말을 해야지 알지...’

그녀는 말없이 일어나서 김치, 김, 밥, 계란을 상 위에 얹어놓고는 다시 들어가 책을 집었다. 

남자는 식탁에 앉아 혼자 밥을 먹는데 왠지 모르게 화가 치솟아 올랐다. 

숟가락을 놓자마자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고는 하루 종일, 다음날 아침까지 잠을 잤다. 

온 집안에 그의 칙칙한 기운이 꽉 차 있어도 그녀는 개의치 않고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밤새 책을 다 읽은 여자는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껏 아침을 차려주었다. 

편안한 분위기에 맛난 음식까지 먹은 남자는 그제서야 어제 일을  얘기했다. 

그리고 조용히 얘기를 다 듣고 난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어제 얘기하지 그랬어?’

‘어? 어... 그러게...’




“하하하... 너무 재밌는 건 이런 부부가 많다는 거야. 심플, 담백, 단순, 객관, 진실, 정보....로 꽉 찬 그녀의 머리! 몸의 만족, 정신의 쉼, 마음의 평화만 찾아 움직이는 그의 몸! 그 처자는 남편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더군. 

내가 그랬어. 이해하지 말라고. 매사에 이해하려고 애쓰는 게 댁의 문제라고. 당신의 남편은 뭔가  잘못된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 당연히 존재하기로 예정된, 아주 자연스럽고 평범한 사람이라고 얘기했지. 9명 중 1명은 이런 모습으로 태어난다고. 그런 그에게 그녀의 이성은 차갑고 뾰족한 고드름이라고. 그렇게 그의 마음을 얼어붙게 할 수 있다고... ”

“그렇지. 근데 그 처자가 고드름이면 남편은 뭐야?”

“음... 북극곰?”

“하하하... 맞다. 그러네! 하하하... 


"그건 그렇고, 엘리스네 집에 있는 고드름은 밥 안 챙겨줘도 돼? 그 고드름도 책 보고 있나? 흐흐흐...”

“우리 집 고드름은 요즘 책이 아니라 땅 파고 있어. 시골 갔거든.”

“그렇구나... 잘 됐다. 더 놀다가. 이 거 더 마실래? 사과주스?”

“어, 더 줘. 근데 왜 이렇게 흘리고 야단이야! 손잡이에 다 묻었잖아, 이리 줘!”


나는 엘리스의 구박을 늘 그렇듯이 즐겁게 들으며 생각했다. 

그 처자의 얼음이 불이 될 순 없겠지만 똑같은 얼음이라도 고드름이 아니라 눈사람정도면 어떨까? 

그럼 그 북극곰도 그 옆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을 텐데...

물론 눈사람 손에는 빗자루 말고 책을 쥐어줘야겠지?!








앨리스의 Wonderland Guide


아내는 언제나 알기를 원하는 5유형이다. 

생각이 곧 힘인 5유형의 머리에는 정보에 대한 관심이 끝이 없다. 새로운 단어와 정보를 보는 순간 에너지가 올라오고, 생각이 시작되면 그것들을 접수하고 연결 정리 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모르는 것은 시간 가는 것 뿐이 아니다! 가끔은 자신이 결혼했다는 사실도 모르는 일이 되어버리니까.  


남편은 언제나 평화를 원하는 9유형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것이 이 남자의 힘이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자신의 필요를 먼저 말하지 않는다. 대게 주변 상황과 상대방의 편안함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은 제일 나중에 말한다. 평화유지를 위해 끝까지 참을 수 있는 것이 9유형의 힘이지만 사실, 그 버티는 힘 때문에 주변은 긴장상태에 있다는 걸 그는 모른다. 


& 이 부부가 사는 법


차가운 듯 열정 있는 여자와 무심한 듯 따뜻한 남자가 남편과 아내라는 이름으로 만났다. 조용하고 차분한 시간을 함께하며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다. 

5유형 아내에게

책이 아니라 내가 숨 쉬고 존재하고 있는 이곳에 삶이 있음을 기억하자. 일상에서 오는 소소한 즐거움을 누려라. 지금 내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경험은 다시 오지 않으니 지금, 이곳으로 나를 데리고 와서 현실을 살라! 당신의 칼로 자른 듯한 냉정한 말투는 남편을 상처 입힐 수 있다. 부드럽고 포용력 있는 태도와 맛난 음식, 편안한 공간을 그에게 제공하라. 당신을 위해 뭐라도 하는 남편이 될 것이다.

9유형 남편에게

당신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막상 꺼내려면 너무나 많은 것들이 떠오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우선적인 것을 먼저 말하라. 오랜 침묵은 서로의 마음에 금을 그을 수도 있음을 기억하라. 생각과 의도를 명확하게 아내에게 전달하라. 아내가 알고 있는 것, 관심 있는 것을 나눌 때 열렬히 들어주라. 당신의 아내는 이것만으로도 온 삶이 만족스러울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가이드 Alic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