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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phy Aug 11. 2016

장군의 딸 1

사랑스런 엄마와 씩씩한 딸

나는 이 가게, 산타나마바의 주인이다. 

주인이지만 늘 알바 포스로, 아니 대부분은 손님 포스로 창가에 앉아 커피에 취해 노닥거린다. 이것은 다분히 나의 바람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렇게 외진 곳, 지나가는 사람에게 들킬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장소에 가게를 연 것 자체가 속셈 있는 짓일 테지. 


사람들에게 쉴 곳을 제공하고

최고로 맛있는 커피를 대접하며

일상에서 떠나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 며 카페를 오픈했지만 

이와 동시에 카페는 조용해야 했고 손님이 너무 많아 음악이 들리지 않는 사태는 결코 없어야 했다. 

그러니 카페는 결코 번화가에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유동인구는 없으면 없을수록 좋았다. 

단체손님보다 혼자 오는 손님을 선호하고 내가 딴 짓 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을 때는 알아서 리필도 해 먹는 손님이면 더더욱 환영이었다. 

그 결과.... 이 가게는 일상에서만 떠난 것이 아니라 '수입'에서도 떠난 곳이 되어버렸다. 

다행인 건 나라는 사람은 살아가는데 많은 돈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어서 손님이 없어도 굶어 죽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가게를 차린 나의 속셈이란 건.... 보잘 것 없는 속임수.... 

내 비정상이 정상 속에 존재해도 되는 허가증이 필요했다. 

현실과 비현실, 아니 다른 사람들의 '현실'과 그들이 '비현실'이라 부르는 나의 '현실'을 연결시켜주는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C.S 루이스의 나니아로 가는 '옷장'같은 것? 

사실은 나니아로 연결된 문이지만, 이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구이기 때문에 이곳에 존재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물건. 

어쩌면 해리포터에 나오는 다이어건 앨리로 가는 가게, 리키 콜드런 같은 곳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가게 자체가 목적은 아닌 것이지.

여하튼 이러이러해서 내 가게엔 주로........ 

손.님.이. 없.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손님이 없는데다 바람도 한가로워 창틀에 앉아 있는 무당벌레가 너무 반가웠을 때쯤,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거친 듯, 주저 없는 문 소리... 앨리스다!


"뭐야! 아무도 없어?"

나는 무당벌레를 향해 지었던 표정을 거두지 않고 그대로 얼굴에 묻힌 채 고개를 돌렸다.

"앨리스!"

"손님이 왔는데 인사도 안 해? 이러니 파리가 날리지!"

저 말버릇만 고쳐도 꽤 사랑받을 텐데...

거친 입과는 달리 활짝 웃고 있는 그녀의 유쾌한 얼굴을 보며 나는 말했다.

"그 파리 이름이 앨리스지 아마...?? 흐흐흐"


언젠가, 내가 앨리스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가 저 거친 입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다. 그녀를 한동안 못 보고 지냈는데 제일 그리웠던 것이 그녀의 구박과 타박이었었으니 말이다. 이후 오랜만에 만나, 욕인 듯 아닌 듯 거침없이 내뱉어진 그 말들을 듣는 순간 어이없게도 좋아서 눈물까지 났다. 욕지거리를 들으면서도 히죽거리고 있는 내가 바보 같았지만 가려운 곳을 긁힐 때처럼 거절할 수 없는 묘한 쾌감 때문에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강의 끝났어?"

"강의는 무슨... 센터 강의는 저번에 끝났어. 요 근처에 상담 있어서 왔다가 들른 거야. "

"그래? 상담은 누구?"

"먹을 거나 좀 주고 물어봐라. 뭘 이렇게 다 공짜로 들을라고 하나?"

"알았어, 알았어! 뭐 줄까?"

"더치! 시원하게!"

"어!"

나는 어제 만들어놓은 더치커피를 부어 얼음을 가득 넣고 앨리스에게 주었다. 

"상담이 잘 됐나봐? 보통 개인상담 하고 오면 기가 다 빨려서 저기압이더니 오늘은 기분이 좋은데?"

커피를 두세 모금 연속으로 들이키던 앨리스가 갑자기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말을... 말... 풉... 푸하!!!"

얼굴이 벌게지더니 얼음이 잘못 넘어갔는지 결국..... 다 뿜어내고 말았다. 앨리스의 입안을 거쳐서 발사된 커피는 바에 놓여있던 컵들에, 내 손에.... 내 얼굴에까지 투하되었다.

"으악!! 이게 뭐야! 우~~쒸!!" 

"미... 안! 풉... 하하하..."

나는 행주로 얼굴을 닦으면서도 앨리스의 그 웃음을 공유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 얼굴까지 내줬는데 혼자 웃기야?"

"아니, 너도 아는 사람이야... 그 왜... 옛날 우리 옆집에 살던,  터프한 딸 하나 키우는 엄마 있잖아.."

"아, 세.. 은인가... 하는 애?"

어릴 때 잠간 본 세은이의 모습이 기억났다. 아들인 줄 알고 '고놈 잘 생겼다!' 고 말했다가 세은 엄마의 실망스런 표정에 당황했던 일이 있었지.

"어, 그 엄마가 지난주 우리 연구소에 상담 의뢰를 했거든. 서로 누군지 몰랐지. 연구소에 나오랬더니 딱딱한 사무실 말고 편한 곳에서 상담하고 싶다고 굳이 밖에서 만나자더라고. 그래서 나갔는데 그게... 세은이 엄마인 거야!"

"그 엄마도 놀랬겠다!"

"서로 놀랐지!"

"근데 그 엄마... , 앨리스... 좀 싫어한 거 아녔어?"

"그랬지! 날 보더니 헉! 하더라고! 아마 거칠고 직선적인 내가 힘들었을 거야. 깐깐한 옆집 아줌마였겠지. 그래도 상담사로 나간 거니까 최대한 내담자에 맞추려고 노력했어. 이것 봐! 얼마나 애썼는지 입술에 경련이 일잖아! 계속 미소 짓느라... 크크크... "

앨리스는 일부러 입술을 떨어 먹던 커피까지 흘리며 나를 웃겨주었다.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딸, 세은이가 정말 좋았다.

아이와 잘 통하는 엄마, 친구같은 엄마, 이해해주고 마음을 알아주는 엄마가 되기 위해 무진장 노력했다.

다행히 세은이의 아빠도 가정적인 사람이라 엄마의 노력을 응원하며 열렬히 동참해주었다.

세은이가 실수하거나 잘못했을 때도 충분히 얘기를 들어주고 판단하며 어떤 일을 시킬 때도 아이의 동의를 얻고 설명해주는 부모! 따뜻하고 자상하며 무한한 사랑을 주는 부모! 둘은 정말 자타공인 최고의 부모였다! 그런데 요즘....  세은이도 그렇게 생각할까? 부모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세은이 엄마는 딸이 어릴 때부터 예의 바르고 친절하며 바른 아이로 자라도록 가르쳤다. 그런데 왜인지 세은이는 이런 부모의 기대와는 다르게 행동했다. 어른들을 봐도 인사를 잘 안 하고, 하라고 시키면 마지못해 입만 오믈락거리며 '안녕하세요'가 끝이다. 어른들이 예쁘다고 용돈이라도 주시면 애교스럽게 , 기쁜 표정으로 받으면 좋으련만 그저 건조한 얼굴로 손만 내밀고 말없이 가져간다. 예쁘게 말하고 인사하는 거라고 나무라면 한참을 뜸 들이다  들릴 듯 말 듯 '감사합니다' 한다. 역시 삐딱한 표정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는 딸의 무례한 행동은 늘 부모를 당황하게 했고 무안해질 때마다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얘는 제 딸이 아니라 '장군의 딸'입니다! 하하하'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어색해했지만 아빠는 매번 이 썰렁한 말을 했다.

소꿉놀이, 엄마 아빠 놀이... 이런 여자 놀이는 싫어한다. 동네 오빠들과 총싸움, 몸싸움하는 게 더 재밌다. 엄마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세은이가 원하기만 했다면 정말 공주처럼 키워줄 텐데... 엄마 아빠의 공주가 되었을 텐데...

세은이는 말이 짧다. 없을 때도 많다. 그나마 말을 할 때는 냉정하고 거침없이 사실만을 말한다... 유도리(?)란 없다. 이 노무 기집애랑 같이 있으면 엄마의 등에 식은땀이 마를 새가 없다. 이제 8살인데... 더 이상 아기도 아닌데... 사회생활을 어찌할지 엄마는 걱정이 태산이다. 사회생활은 둘째치고 앞으로 키울 일이 걱정이다. 점점 더 거칠고 터프해지는 딸 세은이와 얘기할라 치면 엄마는.... 무... 섭... 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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