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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phy Oct 03. 2016

공양미 삼백석에 눈을 뜬다?  1

나는 심봉사



앨리스가 숙제를 내주었다. 

스터디에서 재밌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동화 속 캐릭터가 유형별로 행동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인터뷰한 것을 토대로 자료를 만든다고 했다. 멤버들 속에 내 유형이 없어서 도움이 필요하다며 생각해보고 답을 해 달라고 했다.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심봉사! 공양미 삼백석에 눈을 뜰 수 있다고?

 

어떻게 할 것이 뭐 있을까? 당연히 삼백석을 마련해서 눈을 떠야지....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간단하고 심플하지만은 않은 것이... 그 땡중이 하는 말을 정말 믿어도 될 것인가...  그리고 그 삼백석은 고스란히 우리 청이 몫일 텐데 그 짐을 지워도 되는 것인가... 막상 삼백석이 마련되었을 때, 나는 과연 그걸 가벼운 마음으로 절에 가져갈 수 있을까? 생각이 복잡해졌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있어보았다. 내가 심봉사라 했으니 장님의 삶을 알아야 답을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눈을 감고 있지만 알 수 있다. 나의 오른쪽 어깨로 햇빛이 쏟아지고 있다. 볼 수는 없지만 희미하게 느껴지는 열감... 뭔가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내 오른쪽 뺨과 어깨, 팔을 어루만지고 있다. 이것이 '빛'일 것이다. 내 등 뒤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갓 끈이 앞으로 날리고 상투머리 아래로 삐져나온 머리카락이 턱을 간지럽히고 있다. 소리... 소리도 들린다. 내 왼쪽으로 대여섯 살쯤 된 어린것이 뜀박질을 하며 뛰어가고 있고 저 쪽, 한 스무 보 앞에 우물이 있나 보다. 아낙네들이 떠들며 웃어대는 소리, 중간중간 두레박이 삐걱대고 있다. 아! 우리 청이 목소리다! 물 뜨러 나왔나 보네. 불쌍한 것! 괜히 애비 보면 뛰어와서 바래다준다 할 테니 저 쪽으로 돌아가야겠다. 웃을 일 없는 우리 청이... 아낙들 사이에서 신세 한탄도 하고 애비 원망도 하면 좋으련만... 저리 웃고만 있다... 저쪽 꽃길로 돌아서 가자. 좀 오래는 걸리지만 오늘은 술이 아니라 꽃향기에 취해서 돌아가 보련다. 보지 못하니 내 세상은 사람들과 다르다. 내 세상은... 시끄러워도 조용하고 흔들려도 멈추어 있고  냄새가 나도 막혀 있다. 그래도 음악은 음악이고, 춤은 춤이고, 향기는 향기이다. 어쩌면 더 극한 감동이다. 내 세상은 많은 것이 슬프지만...... 그래도... 아름답다. 보지 못하는 내가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겠는가... 내 마음을 움직여 기쁨을 주는 것, 내 눈을 제외한 모든 감각이 깨어 반응하며 춤추는... 그 어떤 것에 나는 이 말을 떠올린다. 이 정도면 볼 수 있는 자들의 '아름답다'란 말에 모자랄 것인가....



"루나! 어디 처박혀 있어?"


아.... 내가 또 너무 깊이 들어갔다! 앨리스의 저런 무식한(?) 대사는 언제나 과하게 들어가는 나를 순식간에 현재, 이곳으로 공간이동 시켜준다. 내가 잠식당하지 않도록. 내 의지가 나를 다시 지배할 수 있도록! 


"나, 그냥 있었거든. 처박혀 있지 않고!"

"에이, 얼굴 보니까 아니구만! 처박혀 있었구만! 뭐야! 울었어?"

"아니. 숙제하고 있었어. 심봉사!"

"참, 재주도 좋아. 숙제하는데 눈은 왜 젖어? 저 눈동자를 렌즈로 만들어 팔면 대박 날 텐데! 평생 안구건조증 걸릴 일은 없겠다!" 

"필요할 때 빌려가! 뽑아줄게!"

"지랄은! 눈알은 됐고 손 좀 빌려주라!"

"손?"

"어! 아홉 유형 다 인터뷰한 거 모아 왔거든. 인터뷰 자료는 따로 정리해놓고 간단한 대사로 추려서 재미있게 카툰으로 만들어보려고. 나 강의 때 활용하면 좋을 것 같아. 그림과 대사만 봐도 그 유형의 이미지가 전달될 테니까. 해줄 거지?"

"뭘?"

"그림!! 그려줄 거지?"


앨리스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테이블에 앉아서는 인터뷰한 것들을 꺼내어 작업을 시작했다. 아주 신난 눈치다. 

"루나! 다음엔 다른 동화로도 만들어볼까? 이거 완전 재밌다!"

가끔... 앨리스가 귀여울 때가 있는데 저렇게 어떤 일에 푹 빠져, 재밌어 죽겠다는 듯 열중할 때이다. 저럴 땐 말도 빨라지고, 히죽거리면서 말하느라 침도 튀겨댄다. 

"좋아. 대가 있기 없기?"

"있기! 오늘 커피 내가 쏠게!"

"근데 앨리스...... 내가 커피집 사장인 거 알지?.... "

대답도 없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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