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찾아 산티아고] 08 붉은 돼지의 습격 ⓒ 정효정
▲ 푸엔테 라 레이나의 다리 '여왕의 다리' 라고 불린다 ⓒ 정효정
생장에서 출발해 많은 다리를 건넜지만, 이곳의 다리가 가장 아름다웠다.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의 다리다. 마을을 나가는 출구에 6개의 아치로 이뤄진 베이지색 돌다리가 우아하게 강물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건축물에도 남성과 여성이 있다면 이 다리는 분명히 여성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다리 이름도 '여왕의 다리' 다. 12세기 카스티야 왕국의 산초 3세의 부인이 지었다고 한다.
이 마을은 프랑스 각지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이 깔때기처럼 모여 하나의 길로 합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다니엘과는 만난 시점부터 이곳까지 함께 걸어 같은 알베르게로 들어왔다. 각자 배정받은 방으로 향하는데 그가 나를 불러 세운다.
"좀 이따가 마을 구경이나 같이 갈까?"
"그래. 나간 김에 저녁도 먹고 오자."
우리는 정원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짐 정리를 마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방을 나서는데 한국에서 인터넷 전화가 왔다. 일 관련 전화였다. 진행이 늦어져서 마감을 못 끝내고 온 프로젝트가 있었다. 경험상 일이 자꾸 미뤄지는 건 나쁜 징조다. 그래도 일단 약속된 수정 작업은 해야했다. 그렇게 긴 통화를 마치고 부랴부랴 정원으로 나가봤지만 다니엘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대체 그새 어딜 간 거지.
▲ 푼테 라 레이나 마을 중세 귀족들의 집이 아직도 작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정효정
속상한 마음으로 정원에 앉아있는데 한국인 여성 순례자 두 명을 만났다. 각자 혼자 여행을 왔는데, 며칠전 이 길에서 만났다고 한다. 우리는 의기투합해 슈퍼에서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하기로 했다.
순례길에서 밥 먹는 것을 잠깐 설명해보면, 보통 아침과 점심은 걷다가 마을에 있는 바르(bar)라고 불리는 카페에서 해결했다. 주로 아침엔 우유를 넣은 커피(카페 콘레체)와 크루아상을 먹고 점심은 간단히 샌드위치나 스페인식 감자오믈렛인 토르티야를 먹었다.
토르티야는 달걀을 푼 물에 감자를 썰어넣고 구운 요리인데, 보통 커다란 파이형태로 생긴 것을 한 조각씩 잘라 내준다. 처음에는 저렴한 가격에 한끼 든든하게 식사가 돼서 좋았는데 매일 먹다보니 나중엔 아주 지겨워졌다. 하지만 다른 음식 이름을 몰라서 초반엔 무조건 토르티야만 시켜 먹었었다.
저녁은 각 알베르게나 근처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순례자 메뉴가 있다. 순례자 메뉴는 8~10유로에 전채, 메인, 디저트의 3코스 요리가 나온다. 가격대비 훌륭하긴 하나 매일 먹으면 지겹기도 하고 30여 일의 긴 여정에서 매일 지출하기엔 부담이 되는 금액이기도 하다.
▲ 순례길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카페 바르(BAR)라고 하는데 이곳에서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다 ⓒ 정효정
▲ 순례자 메뉴 보통 8~10유로의 가격에 3코스로 나온다 ⓒ 정효정
사실 스페인은 식재료가 저렴한 편이어서 슈퍼나 시장에서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문제는 매일 이동을 해야하기에 남은 음식이 처치곤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슈퍼에서 저렴한 치즈나 고기, 야채 등을 볼 때마다 사고 싶어도 꾹 참았던 차였다. 의기투합한 셋이서 소고기를 사서 굽고 와인과 함께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냈다. 다니엘에 관한 건 잊고 수다에 빠져 있는데 어느새 그가 정원에 나왔다.
"아까 어디 갔었어?"
"여기서 기다렸는데, 네가 계속 안 보여서 그냥 혼자 마을에 갔었어."
좀 미안해졌다. 다니엘은 잠시 테이블에 앉아있었지만 여자 세 명에 둘러싸여 있으니 좀 당황스러운 듯했다. 결국 내일 보자며 들어가 버렸다. 다음날 떠나기 전, 잠시 마을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그때 프레임 안에 그가 들어왔다. 우리는 아침인사를 하고 '여왕의 다리'를 함께 건넜다. 다시 한번 생각했다. 생장에서 출발해 많은 다리를 건넜지만, 이곳의 다리가 가장 아름답다고.
▲ 여왕의 다리로 향하는 길 마을 출구쪽에 있다 ⓒ 정효정
에스텔라(estella)에 도착한 날은 마을 축제가 있는 날이었다. 순례자 몇 명이서 함께 마을광장으로 갔다. 스페인의 마을축제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스페인의 선남선녀들이 열정적인 춤을 추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광장에 작은 간이 무대가 있고 앰프를 통해 흥겨운 노래가 나오는 정도였다. 우리 동네에서 하는 '주민의 날' 행사 보다 규모가 작은 아담한 동네잔치였다. 그리고 춤을 추는 건 동네 여자 어린이들과 딸 바보 아빠들뿐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그 모습이 귀엽고 훈훈해서 한참을 바라봤다.
▲ 에스텔라의 마을 축제 동네 아이들만 신났다 ⓒ 정효정
맥주를 한 잔씩 하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곧 불꽃놀이를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우리도 마을 사람들 곁에서 불꽃을 기다렸다. 불꽃놀이는 화려하기보다 그저 아기자기하고 흥겨웠다. 작은 불꽃에도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환호와 아빠의 무등을 탄 꼬마 아이들, 허리를 감싼 연인들의 입맞춤 틈에서 우리도 덩달아 행복한 기분에 빠졌다. 옆에 있던 한 순례자가 맥주잔을 손에 꼭 쥐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아, 이 추억을 다 어떻게 해... "
우리가 그날 마셨던 맥주는 스페인 맥주인 '에스텔라'였다. 물론 바르셀로나 산 맥주이긴 하지만 '아름다운 별'이라는 뜻의 도시명 에스텔라(estella)와 딱 맞는 맥주였다. 앞으로 평생 이 맥주를 마시면 팡팡 터지던 작은 마을의 불꽃이 생각날 것 같았다.
▲ 에스텔라 맥주 우리가 방문한 마을 에스텔라에서 나는 맥주는 아니었다 ⓒ 정효정
그렇게 아름다운 추억을 지닌 에스텔라였지만, 불행히도 그날 밤은 악몽이었다. 새벽에 자다가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앉았다. 짐승의 포효소리 같은 게 들렸기 때문이다. 나만 일어나 앉은 게 아니었다. 20명 정도가 쓰는 방이었는데 어둠속에서 네다섯 명 정도가 일어나 앉아있는 실루엣이 보였다.
소리의 근원은 내 대각선 침대 2층이었다. 한 한국인 남성이 코를 골고 있었다.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데시벨의 코골이였다. 알고 보니 그 한국남성은 악명 높은 코골이로 이미 순례객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좀 체중이 나가는 타입이었는데 늘 붉은색 등산복을 입고 다녀서 별명이 '붉은 돼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crimson pig)>에서 따온 별명)'였다. 우리는 그를 깨워보기도 했지만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뜬 눈으로 밤을 샜다.
▲ 에스텔라의 마을 축제에서 아빠 무등 타고 불꽃놀이를 바라보는 아이들ⓒ 정효정
가장 안됐던 건 그 아래층 침대의 나이든 여성 순례자였다. 그녀는 밤새 한숨을 쉬더니 동이 트자마자 가방을 챙겨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섰다. 그 정도 코골이였으면 아마 진동으로 아래층 침대까지 떨렸을 것이다.
사실 순례길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그 한국 남성과 잘 알고 지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착하고 유쾌한 20대 후반의 친구였다. 가톨릭신자인 아버지의 권유로 걷기 시작했다는데, 사실 걷기 힘들어 보이는 체격 때문에 다들 그를 걱정했다. 실제로 초반에 다리부상도 있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걷는 성실한 모습과 특유의 인정 많은 성격 때문에 순례길의 모두가 그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것은 꽤 나중의 이야기고, 에스텔라에서의 그는 단지 '코고는 남자'였을 뿐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기본적으로 알베르게라고 불리는 순례자 숙소에서의 공동생활을 전제로 한다. 이 중 공립 알베르게를 뜻하는 무니시팔(municipal)은 저렴한 가격의 숙박비를 지불하거나 혹은 기부 형식으로 운영되기도 한다. 대신 한 공간에 자는 인원이 많다. 한 방에 기본 6~8명에서 시작하거나 많게는 40여 명, 심지어 100여 명이 넘는 공간도 있었다. 물론 사설 알베르게에서 좀 더 적은 인원이 쾌적하게 묵을 수도 있다.
▲ 푸엔테 라 레이나의 공립알베르게 각 마을마다 공립 혹은 사설 알베르게, 호텔이 순례자들의 숙박을 돕는다 ⓒ 정효정
▲ 나헤라의 공립 알베르게 100여명이 한 공간에서 잔다 ⓒ 정효정
배낭여행을 많이 해본 편이라 이렇게 남녀가 섞인 도미토리(다인실) 문화에 익숙해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처음 겪어보는 순례자들에겐 문화쇼크가 되기도 한다. 한국에서 온 한 20대 여성 순례자는 샤워부스에 들어가기 전에 옷을 거의 벗고 들어가는 스페인 순례자 때문에 깜짝 놀라서 하소연한 적도 있었다. 우리는 샤워 부스 안에 들어가서 옷을 벗지만,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인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이미 밖에서부터 최소한의 옷이나 수건만 걸치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렇게 공동생활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불편은 감수해야했지만, 순례길의 알베르게는 대부분 좋은 기억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하루 종일 걸은 후 도착한 이 곳에선 꿈도 꾸지 않고 깊은 잠을 잘 수 있었고, 또 낮 동안 길 위에서 스쳤던 사람들을 만나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복작거리며 생활했지만, 그래도 다들 필요한 예의를 지키는 것도 좋았다. 서로가 당연하다는 듯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이 길의 좋은 점이다. 단,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기도 했다. 그 남자의 코골이처럼.
칫솔을 물고 세면실로 가는데 다니엘과 마주쳤다. 그는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을 보더니 싱긋 웃었다. 테바 샌들이었는데, 이스라엘에 같은 이름의 회사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이스라엘에 돌아가야 해서 곧 순례를 마칠 예정이라고 했다.
"나머지는 다음에 와서 걸으면 되니까."
유럽이나 그 근처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은 걷는 만큼 걷다가 다음에 다시 와서 걷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한국이나 미국 순례자들은 보통 산티아고까지 완주가 기본이다. 한번은 이런 차이를 두고 한 순례자가 '경험을 더 소중히 생각하느냐, 성취에 더 중점을 두느냐'에 따른 나라별 가치관 차이 아니겠냐고 말한 적이 있었다.
글쎄... 내 생각은 좀 다르다고 말해줬다. 물론 그런 가치관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기 나라에서 스페인까지 오는 항공료 아닐까. 항공료만 저렴하면 나도 휴가 때마다 와서 걷다 가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어쨌든 다니엘은 에스텔라에서 하루 더 쉬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이틀을 더 걸어 로그로뇨로 간 후, 순례를 마무리 지을 거라고 했다. 이제 겨우 얼굴을 익혔는데 벌써 이별이구나 싶어서 서운했다. 그때 다니엘이 내게 물었다.
"너도 에스텔라에서 하루 더 묵지 않을래? 이 동네 멋지지 않아?"
▲ 순례자들 에스텔라로 향하는 순례자들 ⓒ 정효정
잠시 고민했다. 이 친구가 나를 꼬시는 건가, 아니면 정말 순수하게 하루 더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건가. 하지만 나는 로그로뇨에서 하루 쉴 생각이었다. 쉬고 싶어서 쉬는 게 아니라 마무리 못한 작업을 그때 마무리해서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했지만 눈앞의 잘 생긴 남자보다, 그래도 돈 주는 밥벌이가 먼저였다. (나중의 일이지만, 그 일은 결국 중간에 취소돼서 돈도 못 받았다.)
"아냐, 난 로그로뇨에서 하루 쉬어야 해."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잠시 아무말 없이 있다가 서로의 앞길에 덕담을 해주고 각자의 방으로 헤어졌다. 그때는 다니엘과는 여기까지가 끝일 거라고 생각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에 괜찮은 남자가 많다'는 말만 듣고 800km를 걸어버린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태그:산티아고, CAMINO, 에스텔라 , 까미노, 순례길
* *과연 다니엘은 날 꼬신건가 만건가. 미끼를 던진건가 안던진건가...
다니엘과의 비화는 다음화에 밝혀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