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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투툼 appatutum Jan 17. 2024

깜깜한 밤, 텅빈 건물안에서 우리는..

[2화] 첫키스, 막차, 동래역

'이 이야기는 픽션과 논픽션의 사이, 그 어딘가, 경험을 바탕으로한 창작 스토리입니다'. - 작가말 -



<이전화 보기>



다들 신나게 웃고 떠들던 대면식에서 내 마음을 짠하게 만들었던 그녀. 검은 긴생머리로 얼굴을 반쯤 가린 그녀린 그녀에게 계속 신경이 쓰였다. 대면식이 끝나고도 계속 그녀가 생각이 난 나는, 친구들을 통해 그녀의 연락처를 알아낼 수 있었다. 내 나이 18세, 그렇게 인생 첫번째 연애가 시작됐다.


우리는 주로 온천장에 있는 '요술궁전'이라는 커피숍에서 주로 데이트를 즐겼다. 당시 여자친구가 매일 같이 출석 도장을 찍던 카페였다. 그렇게 사장님이랑도 친분관계가 있었기에 우리의 첫만남이었던 '대면식'도 이 카페를 통째로 빌려서 진행할 수 있었다.


우리 학교가 온천장에서 도보로 이동할 수 있을만큼 가까웠고 여기서 놀다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에도 좋았기 때문에 우리 데이트 장소로는 딱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학교를 마치고 매일같이 만났다. 돈없던 학창시절, 우리가 데이트라고 할 수 있는건 카페 구석에 자리를 잡아 커피 한잔 시켜놓고 왠종일 붙어서 노닥거리는것 뿐이었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들이 왕성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카페 문화가 대중적이지도 않았다.  영화 '바람'에서 나온것처럼 좀 '노는' 애들끼리 모여서 하루종일 죽치고 놀던 곳이었다. 카페에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약속없이 가도 항상 마주치는 친구들이 있는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그 시절엔 카페에서는 실내 흡연이 가능했다. 물론 학생 신분으로 흡연은 당연히 잘못된 일이었지만 우리는 당시에 둘다 흡연을 했다. 그래서 더욱 카페 구석 자리는 우리 데이트 장소로 좋은 픽이었다. 카페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갈 시간이면, 우리는 헤어지기 싫은 마음에 지하철 2정거장 정도를 손잡고 걸었다. 그렇게 동래역 앞에서 나는 김해로, 여자친구는 반송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헤어졌다.


둘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재학중이었기에 우리는 '야자'가 없었다. 보통 오후 3~4시면 학교를 마쳤고 5시 정도면 요술궁전에서 만났다. 그렇게 카페에 앉아 놀다 10시가 넘어서야 헤어졌다. 매일 같이 그런 생활을 하다보니 잠이 부족해 항상 피곤했다. 부족한 잠은 학교 수업시간에 엎드려서 쪽잠자며 보충했다. 그렇게 내 첫 연애는 열정적이었다.


나는 PCS 1세대다. PCS는 삐삐(무선호출기) 다음으로 처음나온 휴대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당시 우리는 016 번호를 사용했다. 둘다 016을 사용하고 같은 통신사끼리 통화하면 요금이 할인됐다. 당시 통화요금은 10초에 9원 정도였던것 같다. 지금처럼 와이파이를 이용한 무료 인터넷 통화나 무제한 요금제 같은것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종일 전화 통화로 전화기 붙잡고 살던 우리에게 매달 나오는 전화요금은 '압박' 그자체였다.


풍족한 집안의 자식이 아니었기에 그 전화요금의 압박은 실로 엄청나게 돌아왔다. 요금을 제때 납부하지 못해 전화가 끊겨서 걸기는 안되고 받기 기능만 되기 일쑤였다. 그렇게 몇달을 살다가 용돈을 모아서 겨우 다시 전화기를 살리고 또 끊기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많이 부족하고 가진게 없던 시절이었지만 그래서인지 더욱 애틋하고 열심히였던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는 언제나처럼 요술궁전을 나와 집에 가기 아쉬워 동래역까지 손을 잡고 걸었다.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많이 쌀쌀해진 가을, 동래 지하철역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 서서 우리는 집에 가는 버스가 오길 기다렸다. 깜깜한 버스 정류장. 우리집에 가는 버스는 40분 배차라 자주 오지 않았다. 버스 한대를 보내면 또 다시 40분을 기다려야 했다. 반면 여자친구 집으로 가는 버스는 10여분에 한대씩 다녔다. 상대적으로 집까지 거리가 가까웠던 여자친구는 항상 나를 먼저 버스 태워보내주고 자기도 집으로 갔다.


우리는 헤어지기 싫은 마음에 계속 버스를 그냥 보내곤 했다. 그렇게 '조금만 더' 하다가 막차를 타고서야 집에오곤 했다. 매일 같이 만나 오랜시간을 같이 있어도 뭐가 그렇게 좋았던지, 우리는 꼭 잡은 두손을 놓기 싫었고 헤어지기 싫었다. 깜깜한 버스 정류장, 막차 시간이 다가오자 이미 버스 정류장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손잡고 서로 바라보던 우리, 가슴은 언제나처럼 두근거렸다.


동래역 버스 정류장은 큰 대로변에 있다. 정류장 뒷편으로는 여러개 크고 작은 상가 건물들이 있었고 쌀쌀한 바람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건물 입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더욱 어두워진 건물안. 건물은 늦은 시간이라 텅 비어있었고 계산에는 불도 들어오지 않고 캄캄했다. 꼭 잡은 손, 나는 점점 그녀에게로 더욱 다가갔다. 그녀는 뒷걸음질 쳤고 이윽고 건물 벽에 등을 기댔다. 그렇에 우리의 입술은 포개졌다. 서투른 키스. 그렇게 입술을 포갠채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 인생 첫키스. 그날 나는 심장의 쿵쾅거림을 적나라하게 느끼며 내가 살아 있음을 느꼈다.


영원할것만 같던 나의 행복. 그때는 영원할줄 알았다. 잘못된 만남. 그 만남이 있기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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