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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 Jun 27. 2018

나의 독립출판 이야기 06

“네가 말로만 듣던 랜섬웨어니”

(5편에 이어)


  하나의 책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글, 그림, 편집을 서로 다른 세 사람이 맡고 있었기 때문에 삼작가 사이에 긴밀한 협력이 필요했다. 작업 초반, 삼작가끼리의 ‘뇌 동기화’는 어느 정도 잘 되었지만  ‘파일 동기화’는 다소 엉성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네가 말로만 듣던 랜섬웨어니...
  처음에는 메일로 그 때 그 때 필요한 파일을 주고받았고, 공유 드라이브의 필요성을 느끼고 나서는 내가 기존에 쓰던 One Drive에 폴더를 하나 만들고 다른 두 작가와 공유해서 이용했다. 어느 날, 작업을 하려고 노트북을 열었는데 공유 드라이브에 이상한 파일들이 보였다.
  ‘이게 뭐지...’
  하나를 클릭해보려던 찰나, 문자가 울렸다. 삽화를 맡은 이희정 작가였다. 삼작가가 쓰고 있던 One Drive의 폴더가 랜섬웨어에 감염된 것 같다는 얘기를 전해왔다. 말로만 듣던 랜섬웨어를 처음으로 접하는 순간이었다. 노트북을 사용한 지 5년, 랜섬웨어에 걸리면 파일이 다 잠기고, 복구하려면 피같은 돈을 해커에게 내야하고, 어떤 놈은 돈을 내도 복구를 안해준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어는 봤지만 한 번도 직접 경험해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지금, 내 클라우드 파일이 랜섬웨어에 감염 돼 눈 앞에서 파일명이 하나씩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행인 건 아직 감염 상태가 심각해지기 전에 누군가 발견을 했고, 마침 삼작가 모두가 작업을 위해 각자의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빠른 대처가 가능했다. 랜섬웨어에 대한 경험이 있는 신수정 작가의 조언대로, 또 인터넷에서 알아본 내용대로 조치를 취했다.



가장 먼저 인터넷 연결을 끊고 보자
  우선 컴퓨터 자체가 아니라 클라우드 폴더에 감염된 것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감염과 컴퓨터로의 전이를 막기 위해 삼작가 모두가 인터넷 연결을 끊었다. 문제가 된 One Drive 폴더를 삭제하고 컴퓨터의 시스템을 랜섬웨어에 감염되기 이전 날짜로 복구했다. 백신 프로그램을 구매해 검사를 돌리고 실시간으로 작동시켜 놓았다.
  아직 작업이 많이 진행되지 않은 때였고, 작업물은 모두 드라이브 외에 다른 곳에 백업이 되어있었기에 다행히 아무런 손실이 없었다. 아무래도 인터넷 연결만 되면 어느 컴퓨터에서든 폴더에 접속할 수 있는 공유 드라이브라 랜섬웨어에 취약했던 것 같다. 나 혼자 사용할 때에는 그나마 안전했지만, 삼작가가 각자의 가정용 컴퓨터로, 또 직장에서의 컴퓨터로 접속하여 작업을 하다보니 어디선가 랜섬웨어가 타고 들어오게 된 것이다.


  간담을 서늘하게 한 랜섬웨어 감염을 무사히 넘기고 삼작가는 작업을 위해 새로운 공유 드라이브를 찾아야 했다. 이곳저곳을 검색해본 결과, 합리적인 가격에 적절한 기능과 보안을 갖추고 있는 BOX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여느 클라우드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BOX는 다양한 플랜을 제시하고 있어 사용자가 자신의 작업 규모와 용도에 맞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나는 비즈니스 플랜 가운데 가장 저렴한 Starter를 골랐다. 3명이서 간단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는 딱 알맞는 플랜이었다.


 


  BOX는 어플을 이용해서 쉽게 업로드와 파일 확인이 가능했고, 전용 메모 파일을 작성할 수 있어서 간단한 회의록을 쓸 때 애용했다. 가장 편리했던 기능은 같은 작업물에 수정사항이 생기면 같은 파일에 새 버전으로 덮어씌워 업로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수정할 때마다 ‘최종’, ‘진짜최종’, ‘진짜완전최종’을 덧붙인 새 파일을 올릴 필요 없이, 해당 작업물 파일 위에 덮어씌워 업로드 해놓고 필요할 때면 이 작업물의 수정 전 버전도 확인해볼 수 있었다. 파일마다 코멘트를 다는 기능도 있어 삼작가가 코멘트를 이용해 의견을 주고받으며 작업물을 수정해나가는 데에 용이했다.


  아무리 안전하다는 클라우드 서비스에 새로 둥지를 틀었어도 방심할 순 없었다. 랜섬웨어 사건을 겪고 난 뒤부터 삼작가는 작업물을 BOX에 올리고, 각자 usb메모리에 보관하고, 서로에게 메일로 보내 이중으로 백업했다.

  랜섬웨어나 그 외 바이러스의 공격은 이후로 없었지만, 한번의 경험 덕분에 안전한 클라우드 사용과 백업의 중요성을 절감할 수 있었다. 만약 랜섬웨어를 일찍 발견하지 못했다면 초기 작업물과 자료조사한 내용, 예산안 등의 파일이 사라져 작업에 큰 차질을 빚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컴퓨터로까지 전이되었다면 금전적, 정신적으로도 큰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내 책은 어떤 모습일까...?
  새로운 클라우드를 사용하면서 작업에는 더욱 속도가 붙었다. 삽화와 손글씨는 거의 작업이 끝나가고, 원고도 욕심껏 넣고자 했던 에세이를 대거 삭제하고 많이 가벼워졌다. 슬슬 종이 업체, 인쇄 업체를 알아보기 위해 발품을 팔 차례였다.
  충무로로 향했다. 계약서를 쓸 때 그랬듯이, 충무로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나를 위해 이번에도 이희정 작가가 동행해 도움을 주기로 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거리 곳곳에 보이는 ‘제본’ 간판을 바라보았다.
  ‘이 중 한 곳에서 내 책을 인쇄하게 되겠지? 출력돼 하나로 엮인 책은 어떤 모습일까...’.
  문득 그냥 궁금해할 게 아니라 한번 실제로 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모든 작업물을 모니터 속 모습으로만 봐왔는데, 실제 크기로 종이에 인쇄되어 나온 모습을 보면 뭔가 다른 점이 보이지 않을까?
  곧장 가까이에 있는 제본집으로 들어가 갖고 있던 임시 완성본으로 제본 1권을 맡겼다. 대학생 때 수업 자료를 제본하듯, 얇은 종이에 본드로 붙이는 일명 ‘떡제본’이었다. 최종적으로 만들 책과는 다른 종이에 다른 형태의 제본이었지만 프린트되어 나온 작업물을 한번 보기 위해 필요한 그야말로 ‘샘플’을 만든 것이다.


  솜씨 좋은 사장님의 손에서 뚝딱 제본이 완성됐다. 근처 까페에 들어가 자세히 살펴봤다. 그런데.. 뭔가 기분 좋게 웃을 수가 없었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 어설프고 애매했다. 그렇게 공을 들이고 애정을 쏟아부어 만든 작업물의 첫 샘플인데, 하나도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한 이희정 작가도 같은 반응이었다. 이거.. 뭔가 좀.. 엉성한데?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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