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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밋너 Jun 26. 2024

20240616~0623 : 지난 주에 뭐 봤니? #1

한 주 동안 보고 읽은 것들의 기록

보고 읽은 것들을 제대로 언어화해서 남겨놓지 못해 휘발되는 기억들이 너무 많아 조금씩이라도 기록해놓기 위해 쓴다.


# 연극/뮤지컬

음악극 <섬> 4.5/5

2024-06-16 14:00 : 백은혜, 정인지, 박슬기, 안창용, 이예지, 이시안, 김리현, 신진경, 김대웅, 이민규, 윤데보라, 김성수

자첫 이후 두 번째 관람. 21세기 커리어 우먼 고지선과 20세기 소록도의 마리안느를 오가는 백은혜의 연기가 눈에 밟혀서, 그리고 흠 잡을 데 없이 좋아서 자둘을 결정했다. 1933년과 1966년, 1970년대와 2010년대, 2019년을 오가는 데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장면과 장면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목소리 프로젝트의 극을 보고 실망한 적이 없기도 하지만, <태일> 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음악극'에 찍힌 방점이 묵직하고 선뜩하게 다가온다. 입소문이 나서 마지막 회차까지 모두 매진되는 바람에 추가 3회차를 오픈했다는데, 근래 보기 드물게 시작부터 끝까지 잘 만들어진 극이라 생각한다. 메시지도, 재미도, 완성도도 높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합이 좋다. 이 극에 참여한 배우들 모두 그야말로 '한 덩어리'가 되어서 극을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믿음과 확신이 느껴지는 좋은 극이었다.


뮤지컬 <카르밀라> 2/5

2024-06-16 18:00 : 김서연, 유주혜, 박새힘, 반정모

솔직히 리뷰에 쓰지 못한 말들이 많다. <히스토리 보이즈>에 그런 대사가 나온다. "클리셰는 꽤 재미있어요. 재미있으니까 진부할 만큼 계속되는 거죠." 클리셰에 대한 이 문구가 가장 잘 들어맞는 장르 중 하나가 호러이며, 그 중에서도 뱀파이어물이라는 데 이견을 말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뱀파이어라는 존재는 너무나 치트키라서, 소위 말하는 '캐디'만 잘해놔도 서사의 개연성 부족이나 극의 핍진성을 이겨내게 만드는 매력을 갖고 있다. 심지어 다른 뱀파이어도 아니고 '카르밀라'인데. 그러나 바로 그 '카르밀라'를 가지고 너무나 평범하고 진부한 뱀파이어 로맨스를 만들었다는 게 가장 큰 아쉬움이다. 극 곳곳에서 조심스러움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충분히 자극적이어도 좋았을 부분들을 다소 안전하게 처리하다 보니 극이 밋밋해졌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카르밀라의 캐릭터적 매력이 창작 인물인 닉에게 흡수된 점은 감상을 무척 복잡하게 만든다. 이렇게라도 살아남아서 다행인 건지, 아니면... 


연극 <빵야> 3.5/5

2024-06-18 19:30 : 박성훈, 이진희, 오대석, 견민성, 김세환, 김지혜, 진초록, 김슬기, 최정우

2024-06-21 19:30 : 홍승안, 이진희, 오대석, 견민성, 김세환, 금보미, 진초록, 박수야, 최정우

어쩔 수 없이 나의 여름 회전작이 될 운명을 타고난 <빵야>는,-물론 모든 극이 그렇지만-초연 LG아트센터 시절 때 중계로 봤던 것보다 극장에 앉아 보는 것이 훨씬 재미있고 또 울림 있는 작품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빵야'라는 장총 한 자루의 연대기를 따라 훑어내려가는 구성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작가가 갖고 있는 어떤 나이브한 정서-역사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와 주인공에 대한 자기 동일시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요즘 극들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종류의 따뜻함이 있어 마음을 건드리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창작 윤리와 전쟁에 대한 시선,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등에 대해서는 계속 마음 한 구석을 불편하게 하는 지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특히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고 난 시점에서는 더더욱), 어쩌면 그 불편함마저 우리가 반드시, 불편하게 여기면서 생각해야만 하는 순간들의 총합이 아닐까 하는 감상도 남기는 작품이다.


 

뮤지컬 <이블데드> 3/5

2024-06-20 19:30 : 장지후, 린지, 조권, 송나영, 이상아, 김지훈, 주민우, 김경목

2024-06-23 14:00 : 배나라, 린지, 서동진, 송나영, 정다예, 이경욱, 주민우, 김경목

드디어 좀비들이 돌아왔다. 2018년 이후 6년 만에 돌아온 <이블데드>는 못 참지. 쇼보트 버전에서 랑 버전으로 바뀌면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고 다듬어진 부분들이 많다. B급 공포영화의 장르적 문법-영화 <이블데드>의 제작년도를 생각하라-과 캐릭터 디자인이 2024년 현재의 관객들에게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불쾌감을 최대한 순화하려고 노력한 기색이 보인다. 셀리의 의상이나 바비조 캐릭터를 다루는 법 등. 하지만 그걸 다 들어내면 <이블데드>는 <이블데드>가 아니게 되므로, 정체성을 지켜야 하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오랜 <이블데드>(영화와 뮤지컬 모두)의 팬으로서, 이 극을 2024년에 자첫하는 사람들의 감상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일단 지금은 피가 튀기는 블러드밤석에서 좀비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여름밤이 찾아왔다는 사실에 마냥 행복해 할 뿐이다.


# 영화/드라마

2024-06-22

<씬> 3/5

감독: 한동석 | 출연: 김윤혜, 송이재, 박지훈, 이상아

넷플릭스에 들어온 한국산 공포 영화. 동생이 추천글을 봤다며 보자고 하기에 간만에 함께 봤는데 여러 가지 의미로 신선했다. 공포 영화의 장르와 소재들을 이것저것 많이 뒤섞은 느낌. 도입부는 독립영화 같고 초중반부는 클로즈드 서클의 좀비물이 됐다가 느와르적 캐릭터들이 등장해 (한국임에도)총을 난사하고 비리 경찰도 나오고 빙의와 MZ무당이라는 K-오컬트적 요소도 들어가 있다. 이것들이 잘 뭉쳐서 긍정적인 시너지를 내느냐 하면... 완벽하게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장르적 문법 안에서 세심하게 갈래를 뒤트는 노력이 흥미로웠다. 반전이 있는데 그 반전이 드러나는 과정까지의 템포가 다소 느릿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 정도가 딱 적당하지 않았나 싶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던져놓고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는데 모두 맥거핀은 아니고, 감독이 야심차게 '씬 유니버스' 안에서 시리즈 2편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투명하게 나타낸 것 같아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씬2가 나온다면 이번에는 극장에서 볼 생각이 있다(마지막 그 인물들과 설정이 유기적으로 잘 이어진다는 전제 하에).


2024-06-22

드라마 <조코 안와르의 나이트메어 앤 데이드림-1. 옛 집 / 2. 고아> 3/5

조코 안와르는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BiIAN)에서 알게 된 감독 중 하나로, 최근 조금씩 강세를 보이고 있는 동남아시아 공포 영화 중에서도 국제적으로 꽤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인물로 알고 있다. <임페티고어> 이후 잠시 잊고 있다가, 이번 BIFAN에도 <고통의 관>을 장편으로 다듬어 출품했다고 해서 흥미를 갖던 찰나였는데 타이밍 좋게 넷플릭스에 오리지널 시리즈를 런칭했으니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호기심의 방> 같은 스타일의 옴니버스 단편 시리즈로 총 7화 분량. 지난 주에는 1편 옛 집(Old House), 2편 고아(The Orphan) 두 편을 봤다. 인도네시아의 풍경과 정서가 낯설고도 낯익은 느낌을 주는 묘한 감각 속에서 '요양원'과 '입양'이라는 소재로 공포의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좋다. 태생적으로 좀 빻은(;) 공포 영화 장르를 생각하면 은근히 여성을 다루는 감각이 좋은 편인데 제작비와 기술의 한계가 보이는 CG로 인해 보다가 잠시 침음하는 구간이 있기도 하다. 이 감상을 쓰고 있는 지금은 3편 시와 고통(Poems And Pain)까지 본 상태인데 기본적으로 공포를 유발하는 '상황'을 만드는 감각이 좋은 감독이라 기대가 된다.


# 책

~2024-06-17

책 <트러스트> 에르난 디아즈 | 4/5

띠지에 적힌 이동진 평론가 선정 올해의 소설이라는 말이 굉장히 '영화적'으로 이 책을 읽게 하는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고 하면 조금 과장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트러스트(Trust)라는 제목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는 영리한 구성과, 네 가지 형식 안에서 변주되는 인물의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검은 바탕에 1장의 타이틀이 찍히고, 화면이 전환돼 인물을 클로즈업하며 시작하는 영화의 첫 장면부터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여러 가지 장면들이 필름컷처럼 뇌리에 박힌다. 시선과 관점으로 재구성되는 이야기 속에서 '하나의 진실'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지, 어렵게 찾아낸 진실이라 해도 그 역시 사실은 누군가의 시선으로 재가공된 진실의 외피는 아닌지, 그러니까 결국 진실이란 무엇인지. 그래서인지 읽는 중간 중간 <라쇼몽>이 생각나기도 했다. 뛰어난 서사적 매력은 물론, 문장에서도 가끔 참지 못하고 기록하게 만드는 부드럽고 냉철하면서도 아름다운 적확함이 있다. 가령, "시간은 지속적인 가려움이 되었다"와 같은 문장들.


2024-06-16~24 

책 <GV빌런 고태경> 정대건 | 3/5

이번 주 토요일 연극 <GV빌런 고태경>을 잡아놓았기 때문에, 사전에 원작을 읽어보기로 했다. 제목은 예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는데(인상적인 제목을 짓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며) 막상 딱히 읽어볼 생각은 안하다가 연극 덕분에 읽게 됐으니 이 또한 예술의 상호보완적 효과가 아닌가.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그리움이 가득 묻어나는 책이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종로와 명동을 누비며 시네마키드로 살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어떤 노스탤지어가 가득한 책이라 오히려 내용에는 거의 집중을 못했다는 점이 역설적이지만. 그때 그 시절 서울아트시네마, 인디스페이스, 스폰지하우스, 명보, 피카디리, 단성사, 대한극장, 영화제와 영화제 사이를 누비며 지금은 뭐가 들어와있는지도 모를, 내 마지막 기억은 난타 전용관으로 바뀌어버린 스폰지하우스 종로(구 시네코아)의 계단참 사이에서 쪽잠을 자가며 영화를 보던 시절의 기억들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어쨌든 읽기에 부담스러운 소설은 아니었으며, 노 굿이 아닌 오케이를 위해 꾸준히 뭔가를 해야 할 필요성은 지금의 내게도 뼈아프게 따뜻한 메시지로 다가온 건 확실하다. 연극은 고태경이 여성 캐릭터로 바뀌었다는데 궁금함이 더욱 커지는 효과도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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