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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랑 Feb 22. 2022

난임휴직이 시작되었다. 나는 첫 번째 목표를 세웠다.

- 휴직 일기

휴직을 명함


부부 둘이서 살아온 10년, 내 인생에 휴직은 없을 줄 알았다. 회사에서 가장 좋은 복지가 휴직이라 했던가? 휴직이 시작되었다. 육아휴직을 하고 싶었지만, 나는 난임 휴직이다.




아침에 눈곱만 띄고 일어나 남편과 함께 먹을 간단한 아침을 차린다. 함께 아침을 먹고 그를 출근시킨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터로 나갔을 그 시간, 나는 집 안으로 돌아와 넷플릭스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뜨겁게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만끽한다. 아침 시간의 광합성이라니, 생경하기만 하다.


11시가 되면 점심 준비를 한다. 냉장고를 훑어 식재료를 준비하고, 밥을 솥에 올린다. 그릇 하나에 뷔페식으로 밥과 반찬을 모아 담고, 넷플릭스를 보며 밥을 먹는다. 누군가와 마주하며 밥을 먹었을 이 시간을, 이제는 TV와 함께한다. 누구와 밥을 먹을지, 메뉴를 무엇으로 할지, 어떤 소재로 이야기를 나눌지 더 이상 내 뇌는 이런 것들을 고민하지 않는다. 시계가 오후 1시를 알린다. 밥을 먹고, 동료들과 회사 얘기, 사는 얘기를 나누다가 사무실 자리에 앉았을 시간이다. 이를 바로 닦을지, 좀 있다 닦을지. 마시던 커피를 마저 다 마실지, 한 모금이 입 안에 털어 넣을지 고민했을 그즈음. 오늘의 나는 팟캐스트를 들을지, 책을 읽을지, 혹은 잘지 고민한다.


졸음을 쫓느라 고군분투했을 오후. 나는 요즘 산책으로 꽉 채우고 있다. 해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직사광선을 제대로 쪼일 수 있는 시간, 그때에 맞춰 밖으로 나간다. 동네에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걸을 수 있는 곳을 찾아 걷는다. 런데이를 켜고 '헛둘헛둘' 구령에 맞춰 팔을 휘두르며 걷기도 하고, 다이어트 효과가 있으라고 파워워킹을 해보기도 한다. 정자라도 발견되면 그곳에 앉아 책을 읽거나 멍을 때리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오면 남편이 퇴근해 오기까지 1시간의 여유가 있다. 책을 읽거나 잠을 자거나, 혹 힘이 남아있다면 운동을 한다. 오늘은 운동을 했다. 스쾃, 런지, 힙 브리지.. 할 수 있고, 알고 있는 동작들을 하나씩 했다. 눈앞에는 그간 봐야지 했으나 보지 않았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가 나오고 있다. 배우 고두심 씨가 맡은 배역이 우리 엄마와 퍽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과 저녁을 먹는다. 남편이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들려줄 때, 나는 오늘 하루를 얼마나 알차게 보냈는지 소상히 얘기한다.




하루 풍경이 달라졌다. 독서, 산책, 넷플릭스로 꽉 찬 시간들이다. 육아휴직이었다면 아이들이 그 풍경 안에 들어와 있었을까? 지난달에만 해도 내 배안에는 쌍둥이가 있었다.  생명이 있다는 생각에 매 순간이 아름다웠다. 소파술 후 한 달이 지났다. 임신과 아이들에 대한 얘기를 보거나, 듣거나, 생각나면 아직도.. 목이 멘다. 산책할 때 만나는 쨍한 햇볕이 가끔은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그래도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나도 많이 달라졌다. 일도 내게는 중요했다. 나의 커리어도. 메일을 읽고   없이 회신을 하고, 회사에서 연락이 올까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던 나에서, 핸드폰을 꺼두는 나로. 사람들의 분위기를 살피고 일부러 밝은 표정을 짓던 나에서,  마음만 생각하고 돌보는 나로. 난임 휴직이 시작되었다. 3개월을 쉬고 다시 시험관을 시작할 예정이다. 직은 눈에 보이지 않는 터널의 끝이 곧.. 나타나리라 믿는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는다. 햇볕을 쐬고 좋은 글들을 읽고 따뜻한 영화를 보며 남편과 사랑하고, 몸을 회복해나갈 것이라고. 그리고 끝간  없이 행복하게 지낼 거라고. 그것이 나의 난임 휴직기간  번째 목표다.


몸을 건강하게 회복할 것이다.
행복하게 지낼 것이다.
끝간 데 없이. 아주아주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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