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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랑 Mar 12. 2022

'유산한 사람'에서 '여행자'가 되어갑니다.

- 휴직 일기

절에 가고 싶어.


남편이  하고 싶은지 물었다. 유산  외출이 가능할 정도가 되었을 때다. 멍하니 있다가 '신서유기' 보며 깔깔깔 웃었고, <슬기로운 의사생활> 보며 위로를 받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문득 절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둥이들을 임신했을 , 절에서 소원을 빌어서 이루어졌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일까.





무엇을 빌어야 할지 모르겠어.

여행코스를 경주-부산으로 정했다. 첫 번째 장소는 경주의 '불국사', 두 번째 장소는 부산 기장의 '용궁사'였다. 가장 먼저 경주 토함산에 있는 석굴암에 들렸다. 본존불이 있다고 했다. 인자한 눈빛과 미소를 머금은 본존불 앞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무엇을 빌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수술실에서 차갑게 보낸 것 같아 미안하다고, 여기는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가라고 빌고 싶다가도, 영원히 우리에게서 떠나지 말고 다시 꼭 오라고, 어느 글에서 봤던 것처럼 두고 온 과자 가지고 다시 오라고도 빌고 싶었다. 또 억장이 무너지는 내 마음이 빨리 편안해졌으면 좋겠다고 빌고도 싶었다. 그 와중에 너무 많은 걸 비는 것이 욕심인 것 같고, 아이들이 아닌 내 마음을 먼저 신경 쓴다는 게 미안하기도 했다.



절 에서의 시간은 생각과 달랐다. 내 배 안에 있던 아이들이 떠났다는 걸 깨달아야 하는 가혹한 시간이라고나 할까. 괜히 절에 가자고 했나 봐. 불국사와 용궁사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절의 분위기를 만끽하는 '여행자'가 되고 싶은데, 나는 '유산한 사람'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지금처럼만
건강하게 지낼 수 있게 해 주세요.

오늘은 속리산 법주사에 갔다. 멀리서봐도 압도적인 금동미륵입상 앞에 섰다. 불상 앞에서 인사를 하고 기도를 했다. '지금처럼만 건강하게 지낼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빌었다. 무엇을 빌었는지 웃으며 남편에게 말할 수 있었고, 불상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내 배는 여전히 홀쭉하지만, 마음이 그때처럼 참담하지는 않다. 오늘의 나는 '여행자'였다. 수술을 한 지 8주가 지났고, 휴직을 한 지 3주가 되는 날이다.


남편에게 물었다. "나 많이 나아진 것 같지 않아?" 그렇다고 했다. 요즘도 가끔은 울컥한다. 핸드폰 속에 있는 초음파 사진이 눈에 걸리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누군가 '유산'을 입에 담으려고 하면 먼저 자리를 떠버린다. 그래도..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마냥 울지 않는다. 나는 요즘 마음에 거리낌이 없도록 즐겁고 행복한 생각만 하려고 한다. 내 몸에 좋은 것들을 먹고, 틈틈이 책을 읽고 운동을 한다. 주 1회 등산도 한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들이 쌓여 마음이 지난달보다는 조금 더 단단해진 것 같다. 이렇게 계속 나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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