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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랑 Dec 19. 2022

엄마, 울지말아요

-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출산을 50여 일 앞두고 있다. 1~2차 기형아 검사, 피검사, 임당 검사 등. 매 주차마다 진행되는 검사들 속에서 나의 임신이 무사히 진행되기를 빌어왔던 몇 개월이었다. 그 시간 안에서 나는 또 다른 결심을 했다. 엄마 곁으로 가겠다고. 친정 근처로 이사를 가기로. 회사를 따라 지방으로 내려온 지 어언 7년 차다. 30년 넘게 살았던 서울생활이, 지난 7년간의 지방살이로 '그리운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마침 아이도 낳을 테니 이때다 싶었다. 사정상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처분할 수는 없으니 서울로 간다 하는 것은 집/지출/관리가 두 배에 달한 다는 것을 의미했다. 고금리, 고물가 시대에 역행하며, 나는 '서울 이전'을 결심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내가 결심을 전하자 엄마는 곧장 행동에 옮기셨다. 나를 위해 집을 알아보셨고, 돈을 마련하셨고, 집을 손보셨다. 난임과 유산을 거쳐 어렵사리 얻은 아이를 품고 있는 딸을 위해, 엄마는 관절이 망가져 접히지 않는 무릎으로 당신의 집 근처를 샅샅이 살피고 다니셨다. 어디에 살게 할까? 어떤 집이 좋을까? 배부른 딸이 오가기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더 우리 집과 가까웠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게 8월이었다. 그리고 이제 연말. 거진 5개월을 엄마는 나의 안위를 위해 매달리셨다. 심지어 산모관리 자격증 교육까지 수강하시면서. 문제는 집 리모델링에서 발생했다. 도배와 벽지만 새로 하고 들어가자에서 시작한 집수리는, 싱크대도 고쳤으면 하고, 아기가 들어와 살거니 화장실도 깨끗했으면 좋겠고.. 등등으로 요구사항이 추가되며 집 전체 리모델링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엄마는 '조금 더 저렴하게 해 주겠다'는 말에, 내가 추천한 업체가 아닌 지인이 소개한 또 다른 업체와 계약을 진행했다. 그런데 그 업체는 (이제 와서 보니) 아파트 리모델링 경험이 없었고, 도급에 하도급을 주며 복잡한 먹이사슬로 운영되고 있었다. 업체가 아마추어였기에 발생하는 매 순간순간의 고민과 문제들은 온전히 엄마의 몫이었다. 당신의 의견으로 결정한 업체였고, 무엇보다 배부른 딸에게 부담을,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으리라. 


지난봄, 엄마와의 서울여행


리모델링의 끝이 보였다. 그러나 원했던 형태는 나오지 않았고, 날짜는 늘어질 대로 늘어져 나는 들어갈 집이 없는 상태에 놓였으며, 돈은 돈대로 날릴 판이었다. 그 와중에 나는 틈틈이 업체한테 왜 요구사항을 제대로 잘 말하지 않느냐 화를 내, 타 들어가는 엄마 마음에 기름을 붓고 있었다. 

 

착하게 산다고 살았는데,
뭐 하나 순탄하게 풀리지를 않네. 

오늘 오후, 일정을 논의하려고 걸었던 전화기 너머에서 엄마는 울고 계셨다. 왜 딸이 하라고 했던 업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면서, 지금 업체에게는 싫은 소리 하나 못하는지, 또 연초부터 남편은 암투병을 시작해서 매주 병원에 통원치료를 해 드려야 하고, 이혼한 아들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며.. 리모델링에서 시작한 스트레스는 엄마 인생의 여러 사건들을 슬픔의 울타리로 몰고 있었다. 왜 이렇게 당신은 박복하냐며.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쉽게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엄마한테 '인생에서 발생하는 고통에는 총량이 정해져 있데.'라는 시시한 말을 던졌다. 유산했을 때 내가 붙들고 의지했던 말이라며. 내가 너무 무심했나 보다. 내가 너무 엄마한테 의지했나 보다. 내가 너무 했나 보다.. 엄마는 요즘 자주 우셨다. 전화기 너머에서,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요즘 부쩍 지금까지의 당신을 되돌아보며 어렵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마음이 어지럽다. 출산을 50여 일 앞둔 지금, 나는 엄마를 생각한다. 나를 품었던 엄마, 나를 위해 온전히 희생해온 엄마, 지금도 내 생각만 하고 있는 엄마, 그리고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엄마.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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