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국내배송에 이어 해외배송까지 서비스 역량 강화에 나선다. CJ대한통운과 손잡고 전국 택배망을 확보한 네이버가 국내 판매자를 위한 당일·내일배송 등 배송속도전을 선언한 지 몇 달뒤 해외 판매자를 위한 물류 서비스 진출을 공식화한 것이다.
“올해 중소상공인(SME)을 위한 물류에 집중하고 특히 동대문 패션 SME의 글로벌 진출 청사진을 반드시 실현하겠다.” – 한성숙 네이버 대표, 2021.2 네이버 밋업에서
네이버가 말하는 물류 앞에는 항상 ‘SME를 위한’이라는 미사여구가 따라붙는다. SME란 ‘Small and Medium Enterprise’의 약자로 중소상공인을 뜻한다. ‘중소상공인의 물류 경쟁력 강화’를 앞세운 이유는 네이버가 기존 사업자와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네이버는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네이버로서는 어떻게 물류로 돈을 벌 수 있을지 먼저 고민했을 일이다.
네이버의 물류는 크게 3가지 키워드로 요약될 수 있다. ‘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Micro Fulfillment Center, MFC)’와 ‘크로스 보더 이커머스(Cross Border E-Commerce, CBEC)’가 만드는 ‘공급망물류금융(Supply Chain Logistics Finance, SCLF)’이다. MFC 전략이 국내용이라면 CBEC는 해외용이다. 네이버가 물류로 돈을 번다면 이 세가지에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동대문, 패션, 그리고 해외
네이버는 CBEC 첫 무대로 한국 패션의 중심지 ‘동대문’을 꼽았다.
“동대문 물류 스타트업인 브랜디, 신상마켓 등과 제휴를 맺고 패션 판매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물류 과정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겠다. 이를 위해 제품 셀렉션과 코디, 큐레이션 등 제품 경쟁력에만 집중할 수 있는 ‘동대문 스마트 물류 솔루션’을 제공하겠다. 동대문 스마트 물류 시스템을 크로스보더 방식으로 진화시켜 글로벌에 진출하고자 하는 패션 SME의 사업 확장까지 연결하는 것이다.” - 네이버 밋업에서
CBEC 시장은 ‘현대판 향신료 무역로(Modern Spice Routes)’와 비교될 정도로 성장이 가파르다. 페이팔에 따르면 2020년 CBEC 시장은 전 세계 3,000억 달러(355조 원)로 추정된다. 이중 중국은 CBEC가 국가 전체 수출의 20% 내외를 차지할 정도이다.
2020년 국내에서 해외로 해외 직접 판매된 온라인 거래액은 5조 9,613억 원 규모다. 국가별로는 중국, 미국, 일본 순으로 판매 비중이 높았고, 상품별로는 화장품, 의류(패션) 순이다.
네이버가 왜 동대문 의류시장의 해외시장진출을 눈여겨 봤을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여기에 네이버는 자회사 라인과 야후재팬의 경영통합 이후 스마트스토어 일본 진출에 대한 기대가 크다. 라인은 일본뿐안 아니라 동남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플랫폼이기 때문에 물류는 이커머스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CBEC는 국제물류 시장의 큰손
문제는 배송과 통관이다.
예를 들어보자. 장난감을 가득 실은 컨테이너를 중국에서 미국까지 수출하는 경우라고 가정해보자. 일단 중국과 미국까지 원거리 이송이 필요한데, 선사가 제공하는 서비스 노선에 따라 한국이나 홍콩을 경유하기도 한다. 한 번의 수송에 여러 나라를 거쳐야 하다 보니 그 운송 과정에 수많은 서비스 제공자가 관여한다. 아무리 큰 기업이라 할지라도 자체 인프라와 조직만으로 화물을 세계 각국의 목적지까지 운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국제 물류 과정을 꼼꼼히 살펴보면, 한 회사는 포장만을, 다른 회사는 화물 하역만을, 또 다른 회사는 통관만을 담당한다. 여기에 트럭, 해운, 항공, 철도 운송 업체들이 운송 단계별로 또 참여한다. 하나의 컨테이너가 국경을 넘어 최종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과정에는 수많은 ‘연결’이 필요하다.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CBEC는 국제물류 시장의 큰손이다. 아마존, 알리바바 등 초대형 이커머스 고객사의 등장은 국제물류 시장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이커머스 기술 및 비즈니스 모델의 고도화가 과거 특정 국가 내 유통에 제한적으로 활용되던 이커머스를 국가 간 거래로 활성화했다.
네이버의 CBEC도 수많은 운송단계와 국가별 통관을 거치게 된다. 복잡한 단계마다 물류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네이버가 크고 작은 브랜드부터 개인, 법인할것없이 이들에게 물류 고민 없이 창업하고 성장하고 또 글로벌 진출까지 돕겠다고 선언한 것은 바로 CBEC의 핵심이 물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협업의 이유, 상품별 맞춤형 물류
네이버는 CJ대한통운 등 대형 택배사뿐만 아니라 여러 물류전문업체와 손을 잡고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 중이다. 네이버가 손 내민 라스트마일 딜리버리(생각대로, 메쉬코리아)와 풀필먼트(FSS, 아워박스, 품고 두손컴퍼니, 위킵, 신상마켓, 브랜디 등), WMS, TMS 등 물류 IT업체(테크타카)만 십여 개가 넘는다. 네이버 측은 협업을 검토한 물류 관련 스타트업만 50~60개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네이버는 현재까지 쿠팡의 자체 물류망 구축과는 달리 정반대의 선택을 하고 있다. 하지만 배송, 보관, 재고관리 등의 물류 역량을 확장하는 맥락은 두 회사가 비슷하다. 여기서 네이버가 물류 서비스 분야별로 다양한 업체와 협업 체계를 구축하고자 함은 상품별, 고객사별 맞춤형 물류를 제공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네이버의 **프로젝트꽃 1.0이 온라인 창업부터 성장까지 이끌었다면 프로젝트꽃 2.0은 SME의 스케일업에 집중할 것이다. 다양한 물류 솔루션을 제공해 규모의 성장을 돕고 더 나아가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해 나가도록 하겠다. 네이버에서는 수십만의 독립된 스토어들이 자신만의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다. 일찍 도착해야 할 생필품, 신선식품이나 고가의 가구, 명품 등 (업종에 따라) SME가 직접 자신의 비즈니스에 맞는 물류 방식을 디자인해 보는 것이다.” **프로젝트꽃은 네이버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프로그램을 지칭한다.
상품별, 판매자별 특성을 고려해 배송, 보관, 포장, 재고관리 등 MFC(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 확충에 향후 3년간 집중하겠다는 네이버의 목표는 과거 물류전문기업의 3PL(3자 물류, Third Party Logistics) 구호와 무척 닮았다.
MFC 생태계가 만드는 수익모델
네이버가 MFC를 강화한다는 말은 이를 통해 부가적인 매출을 창출하겠다는 이야기로 바꿔 말할 수 있다. 네이버는 트래픽, 호스팅, 포인트 등 이커머스 사업 전 과정에서 수익구조를 만들고 있다. 풀필먼트는 이커머스 마지막 단계의 매출이 된다. 스마트스토어는 네이버의 호스팅 서비스로 구분된다. 이 때문에 네이버는 판매 수수료가 아닌 풀필먼트 수익모델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네이버의 MFC 구축 방식은 쿠팡과 다르다. 네이버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배송 차량이나 물류센터 등 시설에 투자할 리스크를 없앴다. 여기에 다양한 물류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를 통한 협업 관계 구축도 다양한 물류 서비스 형태를 테스트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장점을 갖고 있다. 물론 네이버가 이들 협업 대상과 속궁합을 잘 맞출 수 있을지 파트너 이상의 관계로 진행될 때 봉합 여부는 또 다른 도전과제이다.
네이버가 MFC 생태계를 만드는 흥미로운 행보 중 하나가 이륜차 배달대행 시장에 대한 접근방식이다. 네이버가 CJ대한통운에 3,000억 원을 투자해 택배, 창고 등 물류 역량을 확보한 데 이어 음식배달, 마트배송 등 이륜차 배달대행업체인 생각대로를 소유한 인성데이타에 380억 원을 투자했다. 네이버는 인성데이타 투자에 앞서 2017년 이륜차 중심의 물류 스타트업 메쉬코리아에 270억 원을 투자한 바 있다.
마이크로 딜리버리 100% 활용하기
네이버의 이런 행보는 갈수록 커지는 음식배달, 마트배송 등 온디맨드 시장에 필요한 물류 서비스 제공과 관련 시장 데이터 수집이 투자 이유로 보인다. 이 경우, 네이버는 미국의 인스타카트나 배달의민족의 B마트처럼 사업모델을 확대할 수 있다.
현재 네이버는 ‘네이버 스마트어라운드’를 통해 채널링 제휴 방식으로 배달음식 정보를 제공 중이다. 마트나 슈퍼, 편의점 대형 체인이 이곳에 들어오지 못할 이유가 없다. 네이버는 이미 전통시장 온라인 플랫폼 ‘동네시장 장보기’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네이버는 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를 100% 활용할 마이크로 딜리버리 네트워크에 손을 뻗쳤다. 물류 관점에서 보면 전국을 잇는 대동맥과 동네 골목을 잇는 모세혈관을 연결하는 교두보를 마련한 것과 같다.
네이버가 인스타카트처럼 향후 구매 대행과 배달 서비스를 고민한다면 국내 대형 유통사와 파트너십을 체결해 소비자를 대신해 구매 대행 및 배송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네이버는 여기서 다양한 배송 상품을 출시할 수 있다. 현재 인스타카트는 2시간 이내 배송은 3.99달러(약 4,500원)에, 1시간 이내 배송은 5.99달러(6,800원), 35달러(4만 원) 이상 구매 시 배송비가 무료인 연회비 149달러(17만 원)의 ‘인스타카트 익스프레스’까지 다양한 배송 상품 프로그램을 제공 중이다.
네이버가 인성데이타(생각대로)와 메쉬코리아와 협업을 통해 네이버만의 마이크로 딜리버리 상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을 점칠 수 있다.
운송단계마다 ‘비용’, 물류핀테크 SCLF
한 개의 제품을 나르기 위해 물류는 운송, 포장, 보관 등 복잡한 단계를 거친다. 이때마다 비용이 발생하고, 효율적인 물류 운영을 위해 빠르고, 정확한 대금 결제는 경쟁력이 된다.
동대문 의류 상인에게 있어 택배는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온라인에 내다 팔 물건을 사들이기 위해 영세상인에게 단기 대출을 제공하는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상인은 사입한 물건을 담보(물대)로 판매 후 대금 정산이 완료되는 기간인 보름에서 한 달 정도까지를 택배사(영업소 또는 대리점)에 빌려 쓴다. 영세상인들의 경우 쇼핑몰을 운영하기 위한 운영비를 여기에서 조달한다. 택배사 입장에서 단기 대출은 동대문에서 고객사를 확보하는 영업방식이 되면서도 짧은 기간 높은 금리의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물론 이 거래 방식은 사고도 잦고 허점도 많다. 그만큼 위험 부담이 큰 분야다.
국내 택배도 이러할진대 해외전자상거래에 있어 국제물류 과정 중에 발생하는 결제와 대금 방식은 더 복잡하고 진입장벽도 더 높다. 항공, 해운 등 국제운송부터 현지 국가에서 이뤄질 통관, 운송, 포장, 보관 등 각 단계가 막힘없이 흘러가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대금 결제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런데 해외 송금은 은행 화폐 체계를 통해야 하므로 기대한 것만큼 빠르지 않다. 이로 인해 물류 시스템의 속도가 느려지고 각종 리스크에 노출되면서 국제물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네이버는 SME의 해외 진출을 돕고자 크로스보더 물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CBEC 시장은 더욱 더 빠른 배송을 위한 민첩한 서플라이체인, 그리고 결제시장을 요구하고 있다. CBEC의 화물 운송 특성은 개별 상품 단위의 소규모 배송 프로세스로 높은 물류비용과 통관이 복잡해지면서 납기가 길어지는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네이버는 MFC와 CBEC 생태계 구축에 있어 거의 모든 것에 연결이 되어 있는 물류를 통해 움직이는 상품과 고객 정보, 그리고 ‘돈의 흐름’을 꿰뚫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