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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식이 Dec 2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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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말 다른 느낌

사건의 발달: 9월 말의 화창한 금요일 아침, 9시 10분 전, 커피를 사서 들어가겠다는 일념으로 촐랑촐랑 뛰어 커피숍으로 들어가다가 넘어져 크게 다쳤었다. 그런데 그날이 우리 회사에 할머니들 보러오는 의사 아저씨가 마침 왕진 오시는 날이라 회사로 급히 들어가 진료를 받았는데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다며 콜드팩을 하라고 하셨다. 그게 한국에서 결혼식을 하러 출국하기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매일 발이 코끼리 발처럼 부어서 얼음 찜질을 하면서 결혼식/여행 준비에 눈코 뜰 새 없는 날들을 보내다 출국을 했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시부모님과 시누이가 함께 한국에 가는 거라서 더욱 정신이 없었다. 그 짧은 이주간의 일정안에 일본도 가고 속초도 가고 전주도 가야했다. 발은 매일 코끼리였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10센티의 하이힐을 신고 결혼식도 잘 마쳤고(아드빌 2알의 위력), 3박 4일간 일본에 가서도 열심히 걸어다녔으며(기온에서 은각사까지 걸었다), 속초도, 전주도 다 클리어 했다. 숨 가쁜 일정이 거진 끝나가고 떠나기 마지막 날 처음으로 한 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엄마는 아무래도 내 코끼리 발이 이상하다며 나에게 집 앞 정형외과를 가보라고 했다. 요리 조리 만져보시던 선생님이 엑스레이 한번 찍자 하셨고 잠시 뒤 나는 또각 뽀개진 내 다리뼈 사진을 마주했다. 골절이었는데 모르고 계속 걸어다녀서 잘 안맞게 붙기 시작했다고 하루빨리 수술을 해야한다고 하셨다. 수술이라는 말에 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밖에서 기다리던 신랑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그는 정말 사색이 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겁 매우 많음 주의)



- 고난 속 쟁취한 내 남자. 놓치지 않을거에염.




가족들과 상의한 결과 수술을 받더라도 일단 캐나다로 돌아와서 받자는 결론이 나서 엉엉 우는 엄마를 뒤로 하고 출국을 했다. 회사에 얘기해서 당분간 출근을 못 한다고 하였고, 회사에 왕진 오는 의사 쌤의 오진에 의한 일이었으니 회사도 뻘쭘했던지 걱정말고 푹 쉬라고 했다. 돌아오자마자 방문한 병원에서는 붙고 있는 뼈를 다시 부러트려서 수술을 하게 되면 오히려 더 안좋을 수 있다며 일단 붙고 있는대로 놔두고 보자고 했다. 수술을 안해서 다행이었다. 회사는 일단 10월 말의 다음 의사 선생님과의 예약까지 쉬기로 했다.


꿀맛같았던 2주간의 휴식 후 다시 선생님을 만나 회사로 돌아가야 할텐데 버스타고 지하철 타는게 가능할까 질문을 하니 잘 낫고는 있지만 대중교통으로 출근하기엔 아직도 한 달은 무리라고 하셨다. 나는 목발을 짚든 택시를 타든 어떻게 해서라도 회사에 돌아가려고 했는데 남편이 너무나 완강히 안된다고 했다. 그러다가 다시 한번 다치면 평생 장애 올지도 모른다고 절대로 안된다고 했다. 하지만 난 한국인으로 태어나 자란 사람이라 을의 주제에, 내 입으로 한달 더 쉰다는 말을 회사에 한다는 것이 상상도 되지 않았다. 회사에서 절대 곱게 보지 않을거라는 생각에 가시 방석에 앉아있는 것만 같았는데 남편이 정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안된다고 했다. 회사냐 남편이냐의 갈림길에서 남편의 의견을 따르기로 하고 회사에는 대역 죄인이 된 심정으로 한달간 더 쉰다는 내용의 이메일과 의사 쌤의 노트를 첨부해서 보내었다.


그렇게 삼주 여를 더 쉬고 이제 더 이상은 안되겠어서 회사에 출근을 하기로 했다. 원래는 조금 일찍 돌아가는 대신 일주일에 2~3번만 출근하고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겠다 하려고 했는데 내가 없는 동안 내 몫까지 떠안아 많이 힘들었던건지 내 매니저가 내가 돌아가는 날과 맞춰 갑자기 병가를 내었다. 무슨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난 정말 죄스러운 마음으로 재택근무의 재 자도 못꺼내고 매일 출근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매니저가 없는 동안 일 분담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부서와 인사과와 ED까지 함께 회의를 하였다. 그 와중에 부서 디렉터가 먼저 내 출근 시간에 대해 러시 아워에 출근하는건 힘들 수 있으니 출퇴근 시간을 좀 조정해 보면 어떻겠냐고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싫은거 정말 못 숨기는 동료 하나가 그렇게 되면 매니저도 없고 코디네이터(나)도 없는 시간에는 누가 책임을 지냐고 버럭댔다. 내 편에서 얘기해주는 디렉터와 그거에 맞서 얘기하는 그 동료의 모습에 난 참 마음이 불편했고 눈치가 보였다. 매니저가 아파서 못 나오는 것도 다 내 책임인 것 같았다.


그렇게 길었던 회의가 끝나고 난 정말 이보다 더 쭈구리일 수는 없는 마음이 되었다. 얼굴도 분명 퍼그같이 쭈글해지고 불쌍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내 문제 때문에 신경 썼을 HR디렉터, 크리스에게 이멜을 보냈다. 성격 좋은 사람인데 회의 시간 내내 표정이 좀 굳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미안. 내가 본의 아니게 그간 힘들게 하였구나. 그러자 바로 답장이 왔다.

"넌 잘 못 한게 없어. 내가 화나는 건 자기들 필요할 때는 뭐든 요구하면서 팀으로서 서로 도와야 할 때는 나몰라라 하는 사람들 때문이야." 라고.   


그 이메일 한 두줄에 쫄보같던 내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마치 그가 회사 대표로 말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하고. 퍼그였던 얼굴도 삽살이 정도로 돌아왔다. 동료의 똥 씹은 표정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집에 와서 신랑에게 오늘 있었던 일과 크리스에게서 받은 이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얼마나 그게 나에게 큰 의미였는지, 얼마나 오늘 하루 내게 힘이 되었는지도. 그러자 왠지 뚱하게 듣고 있던 신랑이 "그거 다 내가 말 한거잖아. 너가 잘 못한거 아니라고. 회사에 정당하게 요구하는 거라고. 내가 얘기할 때는 귓등으로 듣더니만."



그러게. 그랬던 것도 같네.

......... (긁적긁적)



그래서...뭐, 오늘 저녁은 나가서 먹는다고?

나 요리 못해. 알지 나 발 다쳐서.



어 나 요리 발로 하잖아.




으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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