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눈 아티스트들의 인터뷰 아카이빙
지금까지 진행했던 인터뷰들을 아카이빙 해봅니다 :)
사라진 매체도 있고, 찾아보기 어려운 매체도 많아서 브런치에 조금씩 아카이빙 해보려 합니다.
이승윤씨 인터뷰 부터 시작!!!
이승윤의 음악은 독립적이고 낯설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누군가가 떠오르기보다는 ‘이승윤’이라는 음악가 그 자체에 대해 깊이 고찰하게 된다. 그의 노래는 섬세한 치밀함보다는 한 곡 한 곡 살아 날뛰는 날것 같은 생명력이 파동친다. 정규 2집 <꿈의 거처>는 그의 음악을 향한 깊은 진정성, 풍성하리만큼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이 담겨있다. 자신의 꿈의 서사를 은유로 품은 가사들이 그가 얼마나 엽렵하고 탁월한 아티스트인지를 증명한다.
마침 2월 말, 서울 콘서트에서 만난 그는 광분하여 날뛰는, 예사롭지 않은 야생마였다. 전국투어 ‘도킹’의 눈부신 서막을 열고 더 넓고 새로운 우주와의 교감을 꿈꾸기 시작한 이승윤을 만나 앨범 발매와 콘서트 개최 등의 소회를 들어보았다.
전국투어라는 목표를 가림막처럼 세우고 스타트했다. <꿈의 거처>의 앨범 소개 글에도 썼듯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내 곡들 대중들이 들어줬으면 하는데 콘서트 역시 그러하다. 콘서트의 테마인 ‘도킹’이나 셋리스트 등에 매몰되지 않고 공연의 기승전결 정도만 생각하며 치밀한 세계관이나 콘셉트보다는 곡 하나하나의 생명력을 느껴주었으면 좋겠다. 관객들이 곡과 함께 호흡할 수 있길 바라며 공연을 준비했다.
사실 2집 앨범을 발매할 때 까진 내가 전국 투어란 것을 할 수 있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번 투어가 너무 감사하고 기쁘다. 큰 이벤트나 아드레날린이 엄청나게 소진되는 경험을 한 뒤에 오는 헛헛함도 없이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여운이 매우 길게 갔고, 이번 공연은 인생을 살면서 손에 꼽을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억이 희석되지 않길 바라며 계속 그 순간들을 되뇌고 있다. 한 일주일 동안 계속 누워서 그 순간들을 되짚어 봤다. 아직은 내가 삶의 주도권을 온전히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의 일들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지금은 전국 투어 이후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투어만을 집중하고 있다.
혼자 음악을 하던 시절에는 공연장이나 음악업계에 인맥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내 곡을 알리고 홍보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했다. 항상 그곳에는 먼저 주도권을 가진 무리가 있었고 나는 홀로 그 사이에 쉽사리 낄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 나를 홍보하고 음악을 알렸다고 말할 순 없다. 그렇기에 위해 함께 일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에 너무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한편으론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나를 위해 애써주는 사람들을 곁에서 보고 있다는 것에 너무나도 고맙게 생각한다.
사실 팬덤 명이란 말을 만들기가 너무 부끄러워서 계속 도망 다녔던 것 같다. ‘우주 like 썸띵 투 드링크’란 노래에서 마름모와 삐뚜루라는 단어들이 나오는데, 이게 내 현재의 태도와 가장 어울리는 것 같고 대변해 주는 것 같아 선택하게 됐다.
사실 장르가 30호 같은 건 너무 과분한 별명이다. 스스로를 높이 치켜세우거나 만족하는 것을 아직 경계하고 있다. 내가 성공했거나 완성됐다고 생각한다면 망하고 금방 무너질 것같다. 그냥 이승윤을 음악 하는 사람으로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어떤 장르나 롤을 이끌어가고 떠올려지는 사람이기보다는 이승윤은 이승윤만의 길을 가고 음악을 한다고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모두가 느끼듯 나도 질투란 것을 느끼고 그것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잘하는 것을 보고 더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를 음악으로 먼저 알고 접한 사람들은 절대 소수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나를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의 우승 캐릭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에 더욱더 음악 자체가 궁금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음악이 탄생하는 태초의 시발점이 ‘방’이라고 할 수 있다. 무대를 끝내고 나서 혼자 그 여운을 즐기는 곳 역시 방이다. 음악이란 방구석에서 문을 닫고서 나만 들어보고 끄적이고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한동안 방구석 음악가라고 불렀다.
20대 중반과 30대 초반까지 책을 엄청나게 읽었고 그것이 기틀이 됐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좋아한다. 그리고 ‘해리 포터 시리즈’는 마법 주문을 모두 외울 만큼 좋아한다. 참고로 나의 기숙사는 ‘그리핀도르’다. (웃음)
영감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다. 내가 틈틈이 하나씩 써 내려가는 것들, 버스를 기다리며 써 내려간 한 줄, 이런 것들을 차근차근 모은다. 하나하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다 메모한 문장들을 내 안에서 삼켜 두었다가 어느 날 꺼내 본다. 그리곤 ‘그때 나는 왜 이 문장을 썼을까?’에 관해 생각해보고 곡에도 반영한다. 이런 것도 영감일까?
음악을 완성하는 과정의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라이너 노트를 직접 쓴다. 최초의 시작은 아무도 나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기에 스스로 나의 곡에 대해 글을 썼다. 어느덧 글을 쓰는 작업이 곡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작업이 됐다고 생각한다. 마음의 파편들을 모아서 곡을 만든다. 0초부터 3분 44초까지 이렇게 하나하나 치밀하고 계산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라이너 노트를 직접 쓰다 보면 곡이 정리되고, 내 안에서 문법적으로 나의 음악을 완성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딱히 영화나 어떠한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는 편은 아니다. 작업을 위한 루틴도 없다. 무언가에게서 영향을 받는 편은 아닌 것 같다. 굳이 영감이란 단어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작품을 뽑아보자면 <블랙 미러>란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며 영감을 받았던 적은 있다. ‘비싼 숙취’와 ‘야생마’를 쓸 때 조금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아, 이승환을 매우 좋아한다. 그리고 엄청나게 많이 들었다. 누군가 어떤 아티스트를 좋아하냐고물으면 관성적으로 브릿팝, 콜드플레이나 오아시스, 트래비스를 이야기했던 것 같다. 떠올려보면 나는 이승환의 5집 <Cycle>과 6집 <The war in the life> 그리고 다음 앨범인 <EGG>를 가장 많이 들었다. 나는 이 시절 이승환의 음악을 많이 많이 들었고 영향을 받았다.
모든 아티스트가 음악적 진정성, 즉 퀄리티 높은 음악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3일 전에 알고리즘을 통해 이승환 영상을 보며 내가 이승환을 너무 좋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에게 이승환은 정말 중요한 존재다.
우리가 함께 음악을 하는 것은 계속 좋은 걸 만들어 내야 한다는 동의가 성립돼 있다. 그렇기에 같은 목표이기보다는 각자 받아들이는 것에서 오는 목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 둘은 언제나 작업에 대한 합의점이 맞다. 그리고 항상 더욱 애써보자고 서로를 격려한다. 이번 앨범을 우리의 목표라고 정하기보단, 우리 둘 사이 각자의 룰적인 부분을 잘 해내자는 마음으로 앨범을 만들었다.
희원이의 에너지가 좋다. 그와 함께하면 늘 120%의 결과가 나온다. 내가 홍대에서 아둥바둥할 때도, 지금의 나도 그의 그런 좋은 에너지에 영향을 받아왔다.
내 인생의 삶의 만족도를 구분 지어본다면 작년 8,9,10월 앨범을 작업할 때가 가장 높았다. 바쁘고 정신이 없어도 재밌었다.
밴드라는 형식으로 작업을 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곡을 내가 작곡했지만 결과물이라는 것은 함께 만들어냈다. 혹 각자가 만들어온 곡이 있으면 평가를 하기 보다는 그냥 함께 연주를 하면서 곡을 발전시켰다. 그때 밴드 멤버들은 서로 작사 작곡한 곡을 가져와 작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각자의 자아를 더하는 작업을 했다고 보면 된다. 그렇기에 그 시절의 음악만이 주는 느낌이 있다.
이번 앨범도 공동 프로듀서 희원이와 연주를 도와주는 친구들의 자아를 부탁해 함께 앨범을 만들어냈다. 결국 도움을 구해야한다는 점에서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기타리스트 이정원 씨와 함께 작업하며 일렉트릭 기타의 톤이나 무드에 영향을 받았고, 드러머 형과는 지금 같이 살고 있는데 그들에게서 받는 정서적, 음악적 영향이 많은 편이다. 이번 앨범을 만들며 즐거웠던, 그들과 다 함께 곡 작업을 하는 그 시간, 시간이 전부 앨범에 녹아들 수 있길 바랐다. 또한 문득 밴드 시절의 음악을 들을 때 생각나는 즐거움들이 있는데 이번 앨범에도 그 즐거움이 묻어나길 바랐다.
사실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쓰거나 하려던 말은 달라지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기존의 곡들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의 편곡이었다면, 이번 새로운 것들은 내가 할 수 있는 한계 이상의 것을 도전했다고 생각한다. ‘꿈의 거처’는 내가 할 수 있는 이상의 것들을 많이 시도한 것 같다.
무조건 후자다. 가사를 다 쓰고 제목을 짓는다. 나는 언제나 가사에서 제목을 뽑아내기 때문에 가사를 먼저 쓴다.
피아노의 복다진 씨와는 클럽 공연때부터 함께했다. 다진 씨는 내 음악적 러프함을 많이 상쇄해준다. 나의 음악을 잘 알고 잘 조절해 준다. 베이스를 연주한 송현우란 친구도 기술적으로 서포트를 잘해준다. 평소 합을 맞춰보지 못한 분들과 작업을 할 때는 그분의 잘함을 취하고 나의 러프함을 전달하는 중간 지점을 맞춰보려 노력하는 편이다.
평소에 선잠을 많이 잔다. 오늘만 한 12번은 꿈을 꾼 것 같다. 오늘은 뒤통수에 혹이 나는 꿈을 꿨다. 만져보니 말랑말랑해져서 병원을 가는 이상한 꿈이었다. 마음속에 품은 크게 꾸고 있는 꿈이 있기보다 친구들과 함께 놀이같이 음악을 계속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그리고 이번 전국 투어를 잘 마치고 싶다. 정말 잘하고 싶다.
앞으론 나가고 싶지 않다. 나는 경쟁에 취약한 편이다. 대학 가요제 때는 경쟁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음악을 하는 게 취미나 허세가 아닐까? 이제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시기에 <싱어게인>에 나가게 됐다. 경쟁을 하고 우승을 바란 게 아니라 내가 음악을 연장할 수 있는 동력, 핑계가 필요했다. 무대를 어쭙잖게 하고 툴툴거리는 건 출연한 모든 아티스트들에게 실례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더욱 열심히 하고 나를 최대한 소진하고 쏟아부었다.
예전에는 유명하다는 개념은 추상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더 유명해지고 싶진 않다. 지금 포지션이 가장 좋다. 사람들이 다 알아보진 않지만 공연을 찾아주는 사람들이 많은 지금이 좋다. 내가 부러워하는 개념의 유명한 위치의 사람들은 이런 것 같다. ‘선우정아’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선우정아의 음악을 듣지만 나 같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아직은 내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유명의 경계이자 나의 숙제다.
음악을 잘한다는 말은 너무 주관적인 내용이다. 기술적으로 표를 만들어서 무언가를 평가하기 어렵고 개인의 주관과 취향을 나누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또한 시장에서 수요가 있는 음악을 한다고 해서 그것을 낮게 치부하는 것은 비열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나는 대중이 보았을 때 보컬리스트에게 요하는 가창 스킬을 쓸 줄도 모르고, 코드 진행이나 실연으로 음악을 선보였을 때 사람들이 ‘우와’라고 놀랄 것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잘하고 싶고, 좋은 퀄리티의 음악을 만들고 싶다. 창작자로서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퀄리티를 높여야 하는 것은 의무 같다.
나는 ‘오늘만 산다’ 주의이긴 하다. 하지만 이번에 투어 준비를 하면서 계속해서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원래 진득하게 시간을 지니며 생각하고 음악을 만드는 편인데 이렇게 음악을 만들고 싶고 들뜬 건 오래간만에 드는 감정이다. 일단 내 앞에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으면 좋겠다. 할 이야기가 없어서 어떠한 것들을 보고 쥐어짜고 영감을 받고, 억지로 감상을 쥐어짜기보다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문장들이 흘러나왔으면 좋겠다.
원문: 인디포스트
인터뷰 조혜림
사진 마름모 제공
장소 마름모 제공
음악 콘텐츠 기획자, 하루키스트, Psychedelic rock. <중경삼림>의 영원한 팬. 읽고 듣고 보고 쓰는 것들을 좋아한다.
조혜림 인스타그램